[우난순의 식탐] 여수 통장어탕 묵어 봤으요?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여수 통장어탕 묵어 봤으요?

  • 승인 2023-12-27 10:15
  • 수정 2023-12-27 14:29
  • 신문게재 2023-12-28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여수
나는 여행지를 음식으로 기억한다. 부산 돼지국밥, 제주도 몸국, 통영 꿀빵·물메기탕 그리고 여수는 갓김치. 갓김치의 강렬한 첫맛을 못잊어 여수에 갈 때마다 향일암부터 찾는다. 올 겨울 첫 북극한파라더니 여수도 만만찮았다. 중무장을 했는데도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향일암엔 돌산 갓김치를 담가 파는 집이 즐비하다. 한 곳에 들러 일단 맛을 봤다. 군침 도는 양념에 버무린 알싸한 갓김치를 먹자 밥 생각이 났다. 막 지은 뜨거운 밥에 갓김치를 얹어 먹으면 두 공기는 뚝딱이겠는데? "밥은 읎고 이거랑 잡솨봐." 주인 아주머니는 툭툭 썬 따뜻한 두부를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두부랑 갓김치도 꿀맛이었다. 2kg을 샀다.

향일암과 바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잔잔하게 꿈틀거리는 바다 물결이 몸을 잔뜩 부풀린 복어 배처럼 하얬다. 저 멀리 남해 금산이 보인다. 여수와 남해가 이렇게 가까웠나? 동백꽃 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눈이 사선을 그으며 날린다. "여수는 눈 보기 힘든디. 꽤 춥네요잉."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두런거렸다.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목을 빼고 버스를 기다렸다.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저녁은 통장어탕을 먹기로 했다. 버스 기사가 권한 음식이다. 여수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통장어탕을 추천했다. 어둑한 거리를 물어물어 국동에 있다는 식당을 찾아갔다. 알고보니 그 곳은 통장어탕을 파는 골목이었다. 투가리에 나온 통장어탕 국물을 떠먹었다. 노란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 진하고 고소했다. 장어는 고단백 생선이다. 장어를 통째로 썰어 배추 우거지를 넣고 푹 끓인 것이 영락없이 보양식이다. 장어를 통째로 썰어 넣었다고 해서 통장어탕이라고 버스 기사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뼈에서 떼어낸 살점이 부드럽게 씹혔다. 추어탕은 질리도록 먹었지만 장어탕은 처음이다. 추위에 언 몸이 녹작지근해졌다. 저번에 L 선생님은 '하모'는 양식이 안되는 자연산 장어로 여수와 고흥 앞바다에서 잡히는 훌륭한 보양제라고 알려줬다. 한번 먹어봐야 할텐데.

생김새가 뱀 같아서 뱀장어라고 하는 장어는 사실 그다지 친밀감이 들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본 영화 '양철북'엔 집채만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서 어부가 뱀장어를 낚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미끼가 말대가리였다. 낚싯대를 건져 올리자 말대가리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뱀장어가 꿈틀거리며 막 쏟아져 나온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괴기스럽고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가 압도하는.



장어는 힘이 세다. 웬만한 장정이 손으로 움켜쥐어도 빠져 나가기 일쑤다. 장어가 스태미나에 좋다고 하는 이유다. 평생 여러 여자를 '섭렵한' 피카소가 그린 그림 중에 '뱀장어 스튜'가 있다. 역시 먹는 걸 좋아하는 난봉꾼 피카소는 마지막 여자 자클린이 요리해준 뱀장어 스튜가 고마웠던 모양이다. 늙은 피카소는 그림에 이런 헌사를 붙였다. '… 이 그림을 바침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다음날, 자고 일어나 보니 짙푸른 하늘 아래 국동항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항구를 꽉 채운 고깃배가 장관이다. 배 이름이 다채로웠다. '헤밍웨이'라는 배 선장도 모히토를 좋아할까. 늙수그레한 아저씨 몇 명이 양철통에 장작불을 피우고 굴을 구워 먹길래 다가가 "야, 굴이다"를 외쳤다.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가 구운 굴 껍데기를 벌려 내게 내밀었다. 나는 손으로 알맹이를 집어 먹었다. 이렇게 맛있을 수가! 짭쪼롬하고 쫄깃했다. "어디서 왔으요?" 아저씨는 굴을 까주고 나는 날름날름 집어먹고. 바닷가 사람들은 인정이 많다. 물의 도시 여수(麗水). 원래 뜻과는 다르게 여수(旅愁)가 떠오른다. 객지에서 느끼는 우수. 막연한 그리움 같은. 음식과 사람들. 벌써 그립다.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의정부1동 입체주차장 운영 중단
  2. 파주시, ‘마장호수 휴 캠핑장’ 운영 재개
  3. 천안 삼은1번가 골목형상점가, '길거리 오픈축제' 개최
  4. 2025 K-축제의 세계화 원년...날아오른 국내 축제는
  5. 충남도의회 "학교급식 종사자 체계적 검진 지원"
  1. [기획] ㈜아라 성공적인 글로벌화 "충남경제진흥원 글로벌강소기업1000+ 덕분"
  2. 대전 특성화고 지원자 100% 넘었다… 협약형 특성화고 효과 톡톡
  3. [사설] 특성화고 '인기', 교육 내실화 이어지나
  4.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5. "대전하천 홍수량 5~8% 늘어"vs"3년 만에 과도한 상향 아닌가" 갈등

헤드라인 뉴스


"트램·공공어린이 재활병원 국비 대거확보" 대전시 현안 탄력

"트램·공공어린이 재활병원 국비 대거확보" 대전시 현안 탄력

대전시가 이재명 정부의 2026년도 예산안에서 트램 등 핵심 사업에 필요한 국비를 대거 확보하면서 주요 현안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트램을 비롯해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웹툰클러스터 예산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마지막 날인 이날 4조 3000억원을 감액하고, 감액 범위 내에서 증액해 정부안인 728조 원 규모로 전격 합의한 것과 관련해 언급한 것이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 광역단체장인 이 시장은 주요 현안 예산 반영 여부를 여의도..

원·달러 환율 1460원대 중후반 고착화… 지역 수출기업들 `발동동`
원·달러 환율 1460원대 중후반 고착화… 지역 수출기업들 '발동동'

#. 대전에서 수출기업을 운영하는 A 대표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원·달러 환율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환율이 10~20원만 변동해도 회사의 수익 구조가 즉각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A대표는 "원자재 대금 결제에 적용되는 환율이 중요하다 보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환율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업 경영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 중후반에서 움직이면서 지역 수출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원자재를 사들여 수출하는 구조를 가..

李 “숨겨진 내란 어둠 밝혀 진정 정의로운 국민통합 문 열어야”
李 “숨겨진 내란 어둠 밝혀 진정 정의로운 국민통합 문 열어야”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곳곳에 숨겨진 내란의 어둠을 온전히 밝혀내서 진정으로 정의로운 국민 통합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12·3 비상계엄 1년을 앞두고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52차 국무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해 12월 3일 우리 국민들이 피로써 쟁취해 왔던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 질서가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며 “그렇지만 국민의 집단 지성이 빚어낸 빛의 혁명이 내란의 밤 어둠을 몰아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환하게 빛나는 새벽을 열었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위대한 빛의 혁명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 대전도시철도 1호선 식장산역 착공…첫 지상 역사 대전도시철도 1호선 식장산역 착공…첫 지상 역사

  • 대전서 개최된 전 세계 미용인의 축제 대전서 개최된 전 세계 미용인의 축제

  •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