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가면 씌우기, 쓰기 그리고 찢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가면 씌우기, 쓰기 그리고 찢기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 승인 2024-01-17 17:05
  • 신문게재 2024-01-18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KakaoTalk_20240117_095255173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한국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이청준은 1977년 '예언자'란 중편소설을 발표했다. 당시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폭압적으로 사회를 짓누르고 있을 때였다.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삼권분립은 말뿐이었고 한 독재자의 발언이 곧 법이고 심판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진 않았지만, 이청준 역시 그 상황에서 권력의 린치를 당한 처지였다. 1969년에 벌어진 동백림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서 카페 사장 홍 마담과 문제적 고객 예언자 나우현과의 긴장 관계가 긴장 축을 이루고 있다. 서울 중산층 지역 평범한 카페를 인수한 요즘 말로 '걸크러쉬'인 이 새 카페 사장은 제법 먹물들에 해당하는 지역 단골들과 종업원들에게 일정한 밤 시간부터 가면을 씌워서 분위기를 돋우는 영업 방침을 정한다. 그 덕에 장사는 성업을 이룬다. 단골 고객들과 종업원들은 '가면 씌우기'에 처음에는 어색해하지만, 곧 적응해서 모두 뻔뻔스럽게 낭자한 유흥판으로 함몰되어간다. 가면 쓰기에 삐딱했던 한 지식인(예언자 나우현)은 이런 행태에 소극적으로 거부를 행하다가 나중에는 이런 가면 씌우기에 살인 유발의 가능성을 홍 마담과 고객들에게 경고한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가면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홍 마담의 폭력이 자행되자, 나우현은 스스로를 예언의 실현을 위해 살인의 제물로 내어 놓아 죽음을 맞이한다.

홍 마담은 장사 속으로 가면 씌우기를 시작했지만, 가면의 메카니즘으로 점점 그 상황의 지배자로 군림하려는 욕망을 키우기 시작하여 폭력성을 덧입히고 지배를 위한 주구(走狗)(우덕주)를 내세운다. 그리고 이 주구에게 새디스틱한 폭력을 가함으로 카페 안에 공포감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홍 마담 스스로가 그 메커니즘에 말려들게 된 것이었다.

이청준이 아마도 70년대의 폭력적인 유신체제의 메카니즘을 우의(寓意)로 형상화 한 것이 이 작품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카페 안에서의 살인은 결국 이 카페의 폐쇄로 이질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지성인의 피살로 마무리한다. 결,국 그의 죽음은 다가올 현실에 대한 예언을 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그의 수하(김재규 중정부장)의 총에 생을 마감했다. 소설 속 예언은 현실 속에서 실현되었던 셈이었다.

소설은 가면이 "인간 본능 발산의 통로이고, 가면놀이는 마음속 추악한 본능을 떳떳이 드러내는 놀이"라 규정한다. 가면의 속성이 꼭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체제로부터의 해방감, 규정으로부터의 일탈감 등이 불러 일으키는 효과는 분명한 순기능이다. 유럽 중세때 종교적 억압에 휩싸인 대중들에게 숨통을 터주었던 사육제 소위 하비 콕스가 말하는 '바보제'는 한 예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례적, 순간적이여야 할 뿐 일상화나 습관화되어서는 안 되는 속성이다.

이 소설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연극 <씨레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극 반응은 매우 독특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그 가면 작용에서 SNS의 익명성을 읽어내고 있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폭력, 희롱, 거짓, 야유, 모멸, 멸시의 짧은 글이 곧 얼굴 감춘 마스크를 쓴 괴물 작용으로 보았던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선량한 품성의 한 유명 배우의 억울한 죽음은 보이지 않은 가면들 장난의 파국 양상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속 홍 마담처럼 요즈음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가면 쓰기를 강권하고 그래서 가면을 쓴 자들이 가면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언뜻언뜻 들기도 한다.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거짓말을 일삼는 그리고 터무니없이 채찍을 흔들어대는 그들의 행태가 가면을 쓴 듯 너무 뻔뻔스럽기 때문이다. 연극 속의 홍 마담처럼 가면을 씌우려는 자는 누구일까? 또 기꺼이 가면을 쓰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가면의 이면을 읽어내어 그것을 찢어낼 수 있을까?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민주당 대전시당 청년위원장에 이용석 출마…"청년정치에 '새로고침' 누르겠다"
  3. 태안 앞바다 5번째 침몰선 실체 드러날까…금강~한양까지 25일 '조행일록' 눈길
  4. tbn충남교통방송, '추석 교통안전 특별방송' 실시
  5. 천안도시공사, 천안추모공원 노후시설 개선으로 추모객 보행환경 편의성 높여
  1. 충남청년센터, 32개 기관 통합 협의회 개최… 정책 발굴부터 후속지원까지 한번에
  2. 충남교육청, 추석 연휴 기간 교육기관·학교 주차장 540곳 무료 개방
  3. 금성백조, 추석 맞아 복지시설에 위문품 전달
  4. 의대 입시도 지역인재 쏠림…수도권 학생 지원 문 좁아졌다
  5. 여고·등산로서 상습 신체 노출… 50대 남성 검거

헤드라인 뉴스


60년 전 대전 한가위!"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60년 전 대전 한가위!
"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1966년의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시 중도일보는 명절 당일 지면을 통해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열기와 함께 서민들이 체감했던 삶의 단면들을 다채롭게 조명했습니다. 신문 지면에 남아있는 주요 기사들을 통해 그 시절 추석 풍경을 되짚어봅니다.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뜨거웠습니다. 당시 중도일보는 歸省客 幅增 (귀성객 폭증)이라는 대형 헤드라인과 함께 大田驛 乘客 85% 急增 (대전역 승객 85% 급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열차와 버스 등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