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악신경분(嶽神驚奔)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악신경분(嶽神驚奔)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승인 2024-02-28 17:08
  • 수정 2024-02-28 19:43
  • 신문게재 2024-02-29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백남우
백남우 회장.
대전시 동구 세천동에는 세천 체육공원이 있다. 이 세천 체육공원에 들어선 국궁장을 끼고돌아서 잡목과 덤불로 뒤덮인 평지를 따라가면 작은 산자락 아래 거의 묻혀 가는 아치형의 구조물이 보인다. 이곳은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 시 만들어진 것으로 1919년까지 사용되다가 철도 선형 개량으로 폐쇄되어 100여 년간 방치된 증약 터널의 입구이다. 이 터널은 건축 당시

의 형태가 남아있어 당 시대의 구조 양식이나 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건축사적, 철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산업 유산의 가치를 지닌다. 이 터널 입구에는 '악신경분'(嶽神驚奔)이라는문구가 쓰인 액석을 볼 수 있다. 이 글씨는 한일 의정서와 을사늑약 체결에 깊이 관여한 조선침략의 원흉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곤스게(林權助)의 글씨이다.



경부선철도는 1901년 8월 영등포와 9월 초량에서 착공한 일본은 러일전쟁이 임박한 1903년 12월 28일 추밀원 회의에서 경부선철도 건설은 전투함 1척이나, 군인 1개 사단 증설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일제는 1년 내 완공하라는 경부선철도 속성 긴급칙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세천~옥천 사이 약 1㎞ 구간에 3개의 터널을 뚫어 거리를 1/2로 단축하려고, 속성

공사 구간으로 결정하자 주민들은 산신이 노하여 지역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하였다. 당시 공사 중 일본인의 한국인 주민들과 잦은 분규에도 터널 공사를 강행하였고 터널 완공 후 '악신경분'이라는 액석을 터널 입구에 매달아 놓은 것이다. '악신경분'의 뜻은 '너희들이 신령스럽게 받들던 산신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는 뜻으로 어려웠던 공사를 마친 성취감과 당시 우리의



산신신앙에 대한 비아냥 섞인 문구이다.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산을 맡아 수호하고 있다는 신령을 믿는 전통이 있었다. 산신은 농경민에게 물이나 비를 내리는 강우신이나 풍산신의 성격을 띠고, 유목민에게는 대체로 사냥감

을 풍부하게 내리는 은혜자이면서도 노여움을 내는 존재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아이를 가져다주는 신이자 그 생명을 악귀들로부터 보호하는 수호신이었다. 산신의 신체는 호상과 신선상이며, 산신에게 제사하는 일을 산제, 산신제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산신제를 지냈으며, 지금까지도 그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산을 신성시하는 우리의 의식은 천신 신앙과 관계가 깊다. 이러한 신앙과 관계되는 것이 '소도'라고 하며, '솟대'로 표시되는 신성불가침지역이다. '소도(蘇塗)'의 현재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聖地)'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신단(神壇)을 설치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제사를 올렸는데,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더라도 잡아가지 못하였으며, 후대 민속의 '솟대'가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소도에는 나무를 세웠는데 그 나무에는 방울과 북이 매달려있다. 그것은 신목이자 세계목이고 우주목이다. 방울과 북은 무당들이 의례에 사용하는 무구이다. 즉 이곳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제의를 행하는 곳이다. 기다란 나무를 세우는 풍습은 청동기 시대부터 있어 왔다. 대전 근교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인 농경문 청동기에 새 모

양의 장대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솟대 신앙은 천신신앙과 관계가 깊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어버지 한웅은 태백산 꼭대기신단수를 통해 땅으로 내려왔다. 태백산과 신단수가 자연 그대로의 '우주산'과 '우주 나무'라면 소도와 나무 장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만들어 세운 '우주산'과 '우주 나무'였다. 솟대는 천계와 이어지는 통로의 의미이며 솟대 위의 새는 셔먼의 수호령이나 외부로부터 성소를보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솟대는 신목이나 마을의 당목으로 그 우주목의 성격을 계승해 온

다. 새를 얹힌 솟대도 농경 마을의 신앙체계로 편입되면서 벼농사를 하는 마을의 안녕, 수호,풍요 등을 지켜주는 마을 수호신으로 솟대로 자리 잡는다. 정월 보름 탑제·거리제 등 행사가연중행사처럼 행해진다. 그러나 조상들이 경외시했던 신령이 깃어 살던 산들은 산책로나 둘레 산길 등으로 구석구석 등산로로 뚫려있다. 산에 깃들어 있던 산신령들은 철도개통과 더불어 놀서 달아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 주위에 아무도 범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소도와 같은 신령이 깃든 산 하나쯤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디어~맥도날드 세종 1호점, 2027년 장군면 둥지
  2. 세계효운동본부와 세계의료 미용 교류협회 MOU
  3. [날씨]대전 -10도, 천안 -9도 강추위 내일부터 평년기온 회복
  4. 세종교육청 재정운용 잘했다… 2년 연속 우수교육청에
  5. 상명대 공과대학, 충남 사회문제 해결 공모전에서 우수상 수상
  1. 건양대 "지역민 대상 심폐소생술·응급처치 교육 중"
  2. 세종시 2026 동계 청년 행정인턴 20명 모집
  3. 건양대병원, 성탄절 맞아 호스피스병동 환자 위문
  4. 천안법원, 음주운전 재범 중국인 일부 감액 '벌금 1000만원'
  5.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헤드라인 뉴스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대전 집값 51주 만에 상승 전환… 올해 첫 '반등'

대전 집값이 51주 만에 상승으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충청권을 포함한 지방은 8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2월 넷째 주(22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08% 오르면서 전주(0.07%)보다 0.01%포인트 올랐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 지방까지 모두 오름폭이 확대된데 따른 것이다. 충청권을 보면, 대전은 0.01% 상승하면서 지난주(-0.02%)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대전은 올해 단 한 차례의 보합도 없이 하락세를 기록하다 첫 반등을 기록했다...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