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나의 '학생 생활지도' 타이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나의 '학생 생활지도' 타이틀

당진 고대중학교 노창엽 교사

  • 승인 2024-06-27 11:12
  • 신문게재 2024-06-28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20240628_당진_고대중 교사 노창엽
노창엽 교사
1989년 9월 1일, 내가 교단에 들어선 첫 날이다.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운 좋게 근처 학교로 발령이 났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교외생활지도'.

고향 사람이니, 재학생들을 괴롭히는 학교 밖 불량배나 일탈 학생들을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나의 교직은 그렇게 '교육 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역할로 시작됐다. 교사는 전근 시 꼬리표가 따르기에 이후로 35년이 흐른 지금까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학생 생활지도'가 나의 타이틀이 됐다.

나의 운명이 된 이 업무는 그저 책상머리 앞에서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그래서 되지도 않는 일이었다.

이 때 문득 발령 전에 만난 인생 선배의 조언이 생각났다. 교사는 학교에서나 제자들의 졸업 후에도 쉼터가 될 수 있는 교사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 주변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돈도 없고 수목 지식도 없으니, 인맥과 자기 노동으로 묘목을 모으고 길러 두서없이 나무를 심었다. 꽤나 큰 굴착기를 갖고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큰 둠벙도 만들었다. 정자도 두 채나 지었는데, 자재는 대개 학교와 교회에서 리모델링 공사로 버리는 것들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챙겨 놓았다가 재활용했다. 그리고 20여 년 후에 적어도 내 눈에는 근사한 숲 하나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공간이 됐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부모 이혼 후 외갓집에 맡겨진 아이였다. 이 학생은 첫날부터 삐딱한 행동으로 선생님들을 당황하게 했으며 덩치와 포스도 만만치 않아 순진한 시골 아이들이 한껏 긴장해 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그 전학생과 어느덧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이 일상 탈출을 모의하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을 나의 '오픈카'(트럭을 나는 그렇게 불렀다)에 강제로 태워 집으로 달렸다.

멋모르고 납치된 아이들에게 내가 심은 나무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려주며 각자의 이름이 붙은 이유와 의미를 설명했다. 마침 나는 약용식물관리사 자격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산에 자라던 더덕, 마, 산양삼, 익모초 등 다양한 약초에 대해 알려주고 직접 채취해 기르던 닭을 잡아 백숙을 끓여 먹었다.

그 때 삐딱이 전학생이 갑자기 익모초와 산양삼을 호주머니에 넣길래 "왜 그러니?" 물었다. 그 아이는 "저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고생하시는 데, 선생님께서 익모초즙이 더위 먹지 않게 한다고 하니, 뜯어다 즙내서 드리려고요"라고 했다. 그 아이는 원래 그런 심성의 아이였던 것이다.

질병이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 치료하듯, 아이들의 일탈 행동에도 그 배경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단순히 학습이나 생활지도에서 시간표에 따라 지식을 전달하고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진과 마음을 진단해 지치고 다친 본연의 능력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쉼터와 숨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무사히 졸업했고, 취업하여 사회인으로 자기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설령 나의 제자 누군가가 졸업 후라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힘들어 할 때는 A/S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만든 숲은 나의 제자들이 어떤 이유로 삶이 힘들 때나 빚쟁이에 쫓길 때 또는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쉬어 갈 쉼터가 되길 바란다.

이제 정년을 1년도 채 남겨놓지 않았다.

돌고 돌아 다시 첫 학교로 돌아왔고 이곳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됐다. 누군가는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내 지역에서의 평생 평판이 붙어 다닐 내 마지막 교직이기에 한편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안전 지도하기, 교통편이 어렵거나 강제 전학 온 아이 등교시키기, 5년 째 결식 학생 도시락 배달, 다양한 준거집단 활동으로 자신감 불어넣기,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시키기 등을 통해 힘들지만, 행복한 동행을 해왔다.

올해 초에는 50여 명의 이 작은 학교가 '대한민국 녹색기후상'을 수상해 동네가 들썩였다.

"선생님, 내년에도 이거 할 거예요?"라고 아이들이 물으면, 대답한다 "그래, 나는 늘 너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당진 고대중학교 노창엽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 명학산단, 삼성 8조 투자 본격화…"물 늘리고 땅 넓히고"
  2. 대전 서대전육교서 오토바이 교명주 충돌… 40대 운전자 숨져
  3. 갤러리아 타임월드 매각된다?... 지역 유통업계 '술렁'
  4.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5. 더블유렌트카, '2026 예당호 모터 페스티벌' 성료
  1. 조합이냐 신탁이냐… 정비사업 어떤 방식이 좋을까?
  2. "김 원초 광천산 아니어도 '광천김'" 대법, 지역서 쌓은 명성 인정
  3. [사설]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민심의 경고'
  4. 미래대응기금 교부세 축소 불안 대전 자치구까지 확산
  5. [포토] 한국타이어, 금산 스마트 버스승강장 설치 기부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추석 차례상 어디서 장볼까… 시장이 마트보다 8만원 저렴

추석 차례상 어디서 장볼까… 시장이 마트보다 8만원 저렴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준비 비용을 아끼려면 전통시장이 가장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는 물론 온라인플랫폼과 비교해도 전통시장의 가격 경쟁력이 두드러졌다. 15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9월 첫째 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온라인플랫폼의 추석 제수용품 28개 품목 가격을 비교한 결과, 4인 기준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이 평균 35만 2553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대형마트는 43만 2062원, 온라인플랫폼은 37만 367원으로 전통시장보다 각각 7만 9509원(18.4%), 1만 7814원(4.8%) 높았다. 품목별 가격 차..

김민석 첫 대전 방문…민주당 `원팀` 대전 현안 해결 나서야
김민석 첫 대전 방문…민주당 '원팀' 대전 현안 해결 나서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16일 내전(來田) 하는 가운데 산적한 지역 현안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전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7명 모두 민주당 소속으로 집권여당을 전폭 지지해 준 지역 민심에 보답하는 김 대표의 통 큰 정치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이번 방문으로 대전시가 이재명 정부 집권 중반 신 성장엔진으로 도약하기 위한 당 차원의 전폭 지원을 견인하는 변곡점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 따르면 김 대표는 16일 대전시청을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뒤 대전시와 예산정책협의회를 갖는다...

이 대통령 `연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 밝힐까…추석 앞둔 18일 대국민 기자회견
이 대통령 '연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 밝힐까…추석 앞둔 18일 대국민 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이 추석을 앞둔 1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연다. 취임 후 일곱 번째 회견으로,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후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어떤 발언을 쏟아낼지 주목된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수석은 1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일정을 밝혔다. 민생·경제와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기타 등의 분야로 세분화하던 기존 기자회견과 달리 이번에는 정치·외교와 정책·경제 2개 분야에 대한 질의를 받는다. 모두발언과 질의응답, 마무리 발언까지 90분간 진행하겠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사랑의 송편 나눔’…명절 꾸러미 한가득

  •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대전 동부소방서, 추석 앞 화재안전 점검

  •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대한민국의 情을 보냅니다’

  •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대전서남부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