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흑해, 신화의 도시 토미스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흑해, 신화의 도시 토미스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 승인 2024-07-03 17:09
  • 수정 2024-07-03 21:56
  • 신문게재 2024-07-04 19면
  • 한은비 기자한은비 기자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한 낯선 도시에 발을 딛는 것은 그 순간 그곳의 총체적인 공기를 온몸으로 흡입하는 일이다. 그 시간이 길지 않은 몇 시간이더라도, 많은 것을 세밀히 보지 않더라도 그 장소에 대한 생동하는 인지력을 얻게 된다. 도시 안에서 혼자 터벅터벅 걷기. 시장 안의 분주한 움직임에 섞여보기. 이런 것들이 흡입의 느낌을 더해준다. 도시와 관련한 사전 감흥과 기대가 준비 되었다면 발길은 훨씬 풍성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필자가 이번 여름 루마니아의 흑해 서쪽 연안 도시 토미스로에 딛은 발길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대전 연극과 인연 맺은 루마니아 한 소도시에서 매년 열리는 '바벨' 국제공연예술제에 올해 극단 <새벽>이 '만리향'을 갖고 참가했는데, 그들의 활동과 동유럽의 연극축제를 참관할까 어렴풋이 생각하다 인상 깊게 읽었던 한 독일소설 속의 도시 토미스가 루마니아의 해안도시 콘스탄챠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여행을 최종 결심했다.

토미스는 고대 로마제국을 대표하는 대시인 오비디우스(BC43-AD17)의 도시이다.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51세의 그는 70세의 아우구스트 황제(BC 63-AD 13)의 특명에 따라, 원로원의 어떤 토의도 또 어떤 사법절차도 없이 당시 세계의 끝 흑해 연안 토미스라는 벽지(僻地)로 유배되었다. 이후 로마제국 안에서 그의 모든 흔적은 지워졌다. 그는 자전적인 시에서 유배 원인을 '시'와 '실수' 때문이었다고 표현했다. 제국 창건자로서 사회규범을 엄정히 세우려던 존엄자 아우구스트 황제는, 자유분방한 사랑의 기법을 감미로운 시어로 담은 연작시집 <사랑의 기술>을 펼쳐 여인들 마음을 들뜨게 만든 시인이자 딸 쥴리아 연애하고 손녀 쥴리아를 부추기는 바람둥이 오비디우스를 마땅치 않아 했을 것이다.

갑자기 유배 죄인이 된 오비디우스는 <메타모르포세(변신)>라는 대서사시를 상당 부분 썼던 터였는데, 유배지에서 이를 완성했다. 작품에 뜨거운 자부심을 가졌던 그는 그때의 심정을 "나는 이제 한 작품을 끝내나니 오로지 나의 육체만을 지배할 뿐인 죽음은 이제 언제든 나의 여생을 끝내도 된다. 나는 나의 작품과 영속하겠고 별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이며, 나의 이름은 그 어느 것도 파괴하지 않으리라"고 토로했다.



필자 마음에 각인된 오스트리아 현대 소설가 란스마이어의 출세작 <최후의 세계>는 "태풍. 그것은 밤하늘 높이 떠있는 새들의 무리였다. 떠들썩하게 요란을 떨며 점점 다가오다가 갑자기 거대한 파도로 변하여 배를 덮치는 태풍. (...) 태풍. 그것은 토미스로 가는 여행이었다." 라는 서술로 시작된다. 이 감흥을 담은 내 발이 디뎌진 곳.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의 이복 여동생 콘스탄챠 이름이 덧입혀진 신화의 도시 토미스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필자 마음속엔 태풍이 담겨있었다.

토미스 맞은편 흑해 동쪽 연안에 콜키스 왕국이 있었다. 이 나라 보물 황금양피를 훔치려 그리스 신화 제1세대 영웅 이아손이 그곳을 찾았다. 왕국의 메데아 공주는 이아손과의 사랑에 빠져 부친을 배신하고 그와 함께 보물을 훔쳐낸 뒤 추격한 남동생을 속임수로 도륙한 후 해상 도피 중 잠시 토미스를 들렀다. 그리스에 도착한 메데아는 처절한 배신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오, 잔인한 사랑의 광기여!

토미스 바닷가 언덕 광장 오비디우스 석상이 서 있는 곁 카페 골목은 흑해 북쪽 해안의 인접국가 우크라이나에서의 벌어지고 전쟁과는 무관하게 - 오, 멍청한 전쟁의 광기여! - 평온한 이른 저녁의 서늘함 속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젊은이들이 오비디우스가 떠난 2000년 후에도 여전히 신화의 비밀을 간직하고 사랑을 호흡하고 있었다. 문득 백마강 낙화암 서사가 머리를 스쳤다./송전 한남대 명예교수·연출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하나은행, 대전 지역 소상공인에 총 450억 원 지원
  3. 민주당 '세종시의원' 연이은 징계 수순...요동치는 정가
  4.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5.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1.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2. 대전시의회 조원휘 "일류 경제도시 대전, 더 높이 도약할 것"
  3. 대전대 RISE사업단, 출연연 연계 산·학·연 협력 공동팀 선정
  4.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5.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