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물과 같은 세상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물과 같은 세상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7-1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이다. 자유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권리나 의무, 신분 따위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아야 한다는 조문이다. 우리 모두 평등을 지향하지만,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완전한 평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이나 다름도 인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추구하는 권력, 부, 명예의 크기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특정 계층으로 분류된다. 정체성이나 특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강약, 우열로 가린다. 가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적대시한다. 어느 한 쪽 편이 되고 다른 한쪽은 배척한다. 그런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무리도 있다. 상호존중이란 시대적 흐름이 붕괴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향 중 하나는 존중과 배려를 통한 조화로움이다. 우열이나 대립이 아닌, 어울림, 조화인 것이다.



세상에 널리 회자된 노자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춰보자. 도덕경 8장에 나오는 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물처럼 땅을 좋게 하고, 마음을 쓸 때는 물처럼 그윽함을 좋게 하고, 사람을 사귈 때는 물처럼 어짊을 좋게 하고, 말할 때는 물처럼 믿음을 좋게 하고, 다스릴 때는 물처럼 바르게 하고, 일할 때는 물처럼 능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좋게 하라. 그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물은 낮은 곳, 빈곳으로 흐른다. 다툼과 해함 없이 세상과 사람에게 이로움을 준다. 뿐인가? 웅덩이가 있으면 반드시 채우고 지나간다(盈科後進). 《맹자(孟子)》〈이루 하(?婁下)〉와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말로, 소홀하거나 건너뛰지 않는다는 의미다. 점진적으로 부단히 나아간다. 또한, 서로 만나면 부둥켜 않는다. 제 몸 던져 희석되어 새로운 하나로 재탄생한다. 때로는 거센 물살이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얕은 곳으로 함께 임한다.



사회현상 또한 물과 같다. 다만, 바라보는 시점이 다른데서 오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이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부자와 빈자가 서로의 적인가? 삶에 대한 철학, 임하는 자세가 다를 뿐이다. 아무도 빈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도 아니다. 오히려 부자는 가난의 스승이요 미래다. 어느 날 도달할 수 있는 꿈이자 준비과정인 것이다. 부자가 적으로 보이는 순간 영원히 가난하자는 멍에가 된다. 영구히 빈자로 살겠다는 선언이다. 가붕개(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자신은 가붕개가 아니란 의미가 담겨있다. 당신은 변함없이 가붕개로 살라는 저주로 들린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면 안 되는가? 궤변이거나 갈라치기일 뿐이다. 오늘날 세계적 갑부 대부분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설령 어렵더라도 길 터주는 게 우선이지, 변화에 대한 욕구마저 차단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물과 같은 자연의 순리를 가로막는 일이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우열은 없다. 다름, 정체성과 완성도가 있을 뿐이다. 조선 영정조시대 선비문화라 할 창작활동에 중인이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한다. 그것이 잘못된 일인가? 선비문화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가? 그런 주장이나 비판이 옳은 것인가? 더구나 고저개념에 의해 선비문화가 고급문화라면, 중인과 평민은 변함없이 저급문화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가? 저급문화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문화예술이든 누구나 즐길 권한과 자유가 있다. 편협한 의도로 왜곡시키거나 차단하지 말자. 부족한 곳, 빈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퍽 자연스런 일이다. 물론, 근원이 약해 흘러가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 비호감이란 장애물에 막힐 수도 있다. 그 또한 자연이다.

물이라고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승천의 꿈이 있다. 하늘 높이 올라야 완벽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우리에게도 이상이 있다.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부단히 변화를 추구한다. 공감 가는 새로운 것에 매료된다.

세상엔 꿈이 있어야한다. 더 많은 사람이 꿈꾸게 하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길 터주는 것이 국가시스템과 정치의 역할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해운대 겨울밤 별의 물결이 밀려오다 '해운대빛축제'
  2. 2026학년도 수능 이후 대입전략 “가채점 기반 정시 판단이 핵심”
  3. [2026 수능] 국어 '독서'·수학 '공통·선택' 어려워… 영어도 상위권 변별력 확보
  4. [2026 수능] 황금돼지띠 고3 수험생 몰려… 작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어려워
  5. [2026 수능] 분실한 수험표 찾아주고 시험장 긴급 수송…경찰도 '진땀'
  1. 더민주대전혁신회의 "검찰 집단항명, 수사 은폐 목적의 쿠데타적 행위"
  2. 이한영, 중앙로지하상가 집중점검… "실효성 있는 활성화 대책 필요"
  3. 대전경찰청, 14일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 경기 앞두고 안전 점검
  4. [2026 수능 스케치] "잘할 수 있어"… 부모·교사·후배들까지 모여 힘찬 응원
  5. ‘수능 끝, 해방이다’

헤드라인 뉴스


 ‘노잼도시’의 오명을 벗고 ‘꿀잼대전’으로

‘노잼도시’의 오명을 벗고 ‘꿀잼대전’으로

한때 '노잼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대전이 전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 각종 조사에서 대전의 관광·여행 만족도와 소비지표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도시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학도시의 정체성에 문화, 관광, 휴식의 기능이 더해지면서 대전은 지금 '머물고 싶은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실시한 '2025년 여름휴가 여행 만족도 조사'에서 대전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9위를 기록..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대흥동의 '애물단지' 메가시티 건물…인공지능 산업으로 부활하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설립을 앞둔 대전 중구 대흥동의 애물단지인 메가시티 건물이 기피시설이란 우려를 해소하고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미래 첨단 산업 및 도시재생과의 연계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용갑 의원(대전 중구)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를 만나 대전 중구 대흥동에 인공지능 산업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요청했다고 14일 밝혔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메가시티 건물은 2008년 건설사의 부도로 공사가..

축구특별시 대전에서 2년 6개월만에 A매치 열린다
축구특별시 대전에서 2년 6개월만에 A매치 열린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14일 오후 8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볼리비아의 친선경기가 개최된다. 13일 대전시에 따르면 이번 경기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본선을 향한 준비 과정에서 열리는 중요한 평가전으로, 남미의 강호 볼리비아를 상대로 대표팀의 전력을 점검하는 무대다. 대전시는 이번 경기를 통해 '축구특별시 대전'의 명성을 전국에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는 계획이다. 대전에서 A매치가 열리는 것은 2년 5개월 만의 일이다. 2023년 6월 엘살바도르전에 3만9823명이 입장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 시험장 확인과 유의사항도 꼼꼼히 체크 시험장 확인과 유의사항도 꼼꼼히 체크

  • ‘선배님들 수능 대박’ ‘선배님들 수능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