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문명사적 변혁과 대혼란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 속으로] 문명사적 변혁과 대혼란

하용출/미국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석좌 교수, 한국학연구소장

  • 승인 2024-07-22 16:3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하용출
한국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질문이 있다면 '한국사회가 왜 이렇게 불안한가?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가'일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국사회가 세계 어느 나라도 겪지 않은 변혁을 겪으면서 이에 따른 전례 없는 대혼란이 아닌가 한다. 대변혁의 핵심은 가장 아시아적이고 비시장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사회가 가장 서구적인 민주주의 체제 하에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국과 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실험은 역사적이고 문명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한국의 실험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고 많은 도전과 혼란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한국민주주의는 수 차례에 걸친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룬 모범적 사례이긴 하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민주주의 작동을 위한 허리 역할을 하는 각종 제도들이 민주주의 원만한 운영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중립, 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독립성, 교육의 자율성, 사법부의 탈정치화 등은 각기 수준의 차이는 있으나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한국정당들은 산업화의 유산인 지역주의에 오랫 동안 기생해 오면서 새로운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이제 시대착오적 존재로 전락했다. 보수는 산업화 성공 신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진보는 한국사회에 맞는 진보의 내용 개발에 실패하여 양당 공히 수명을 다한지 오래다. 한국의 정당은 한마디로 국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새로운 문명사를 쓰고 있는 한국의 미래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한국경제는 심각한 제도의 충돌을 겪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졸속으로 강요된 시장중심적 제도는 국가가 주도했던 이전의 제도와 갈등을 빚어 왔다. 일례로 한국의 노사관계는 각 재벌마다 달라 갈등을 전제로 하는 미국형, 노와 사의 상호 존중형인 일본형 그리고 이 중간에서 애매한 한국형 등이 복수로 병존하고 있다. 이에 더해 세계에서 유례 없이 80% 이상의 높은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한국경제를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대내·외로 급증한 위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의 개발과 실천에 실패했다. 공동체 의식의 개발과 제도화의 실패는 한국 전통의 재발견의 실패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 두레, 향약, 품앗이 등 한국 전통적 가치와 제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각자도생의 삶의 투쟁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군사부일체의 사회에서 학생이 선생님을 구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서로 잘 아는 농촌공동체 사회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무명산업사회에서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했다.

국제적 사정 역시 한국사회 불안의 심각한 요인이다. 냉전 시기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긴 했으나 미국과 소련의 세력균형으로 전쟁을 억제하여 나름대로 예측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현재 국제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이에서 소외된 러시아의 반작용, 이를 이용하여 삶을 꾀하는 핵을 지닌 북한 등 상당히 불안정한 시기에 돌입했다. 또한 국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채 서둘러 집행한 세계화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나라들의 경제와 사회를 양극화에 빠뜨리면서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비민주적 과거를 바탕으로 민주적 제도와 개방적 경제체제를 추구하는 한국의 문명사적 과업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지난한 역정이다. 이 과정에서 좌절과 실망, 갈등과 불확실성은 우리 몸에 맞는 제도를 찾아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이 커다란 도전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진행의 방향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구체제에서 생소한 민주주의를 이룩한 프랑스의 경우도 우리 못지 않은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겪고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착근하는 데는 100년 가까이 걸렸다. 경제개발을 빠르게 달성한 한국사회가 인식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 정착은 지난한 과정으로 우리만이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한국적 근대화의 문명사적 의미에 자부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대처해 나가는 일이다.

하용출/미국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석좌 교수, 한국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2. [월요논단]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허와 실
  3. "2026년 달라지는 대전생활 찾아보세요"
  4. 코레일, 환경·동반성장·책임 강조한 새 ESG 비전 발표
  5. 국가철도공단 전 임원 억대 뇌물사건에 검찰·피고인 쌍방항소
  1.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2. 29일부터 대입 정시 모집…응시생 늘고 불수능에 경쟁 치열 예상
  3. '티라노사우루스 발견 120주년' 지질자원연 지질박물관 특별전
  4. KAIST 비싼 데이터센터 GPU 대신 내 PC·모바일 GPU로 AI 서비스 '스펙엣지' 기술 개발
  5.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은 29일 대전·충남 행정통합과 관련 '형식이 아닌 실질적 특별시 완성'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이날 주재한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특별시) 관련 핵심 특례 확보에 행정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조직권·예산권·세수권 등 실질적 특례가 반드시 법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시장은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법안이 가장 중요하다"며"형식적 특별시로는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렵다"면서 충청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방정부 모델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각..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 통합 흐름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역 정치권과 공직사회도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대응안 마련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강준현 세종시당위원장(을구 국회의원)이 29일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날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세종이 충청 메가시티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호재"라고 말했다. 최근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 배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행정수도 상징성 약화' 우려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새해 경영환경에 대한 대전지역 중소기업들의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대전세종지역본부(본부장 박상언)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2026년 대전지역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전지역 중소기업 30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5.2%가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16.3%로,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기업(8.5%)보다 두 배가량 많아 내년 경영 여건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