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한강의 노벨문학상,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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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한강의 노벨문학상, 그 이후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11-17 17:09
  • 신문게재 2024-11-18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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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 교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올해 노벨문학상에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선정 이유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제시했다. 비극적 역사의 상처에 대한 비판, 투쟁을 넘어서 그것을 시적 서정으로 공감, 승화하는 새로운 소설 문법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쌍십절(雙十節)의 날짜와 같아서 한국 문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문학은 그동안 근대 이전에는 중국의 변방 문학이고, 근대 이후에는 유럽의 주변 문학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그런 평가가 가당치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류 문화의 붐과 함께 한국 문학이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서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 관심의 중심에 한강의 소설이 있었고, 우리나라 작가들이 맨부커상을 비롯한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다른 상들과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 혹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파장이 큰 뉴스였다. 수상자 발표 이후 며칠 동안은 모든 언론 기관들이 앞장서서 특집 기사를 내고,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저마다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강의 작품집들이 불티나게 판매되면서 절판 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한강의 작품집을 사기 위해 유명 서점 앞에서 많은 사람이 오픈런 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출판 시장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의 문학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강 문학과 관련된 각종 독서 모임이나 학술 모임, 문예지 특집 등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강 이후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차분하게 후속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정책 차원에서는 문인들에 대한 충분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예술 정책은 장기간에 걸쳐 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현 정부는 문화예술 정책의 슬로건으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원을 확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축소 또는 폐지된 것들이 적지 않다. 제2의 한강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문화예술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



제2의 한강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 국민이 독서 생활을 활성화해야 한다. 독서 인구는 문학 발전을 위한 저변 역할을 한다. 축구 강국인 브라질 국민이 축구를 사랑하는 것처럼, 문학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이 양질의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암기 위주,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 독서는 창의적인 사고와 개성적인 감각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학교에서는 독서 교육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리모콘 대신 책을 들어야 한다.

한국 문학의 번역을 더 활성화하는 일도 제2의 한강 배출을 위해 필요하다. 한강의 이번 수상에서 번역이 차지한 역할은 매우 컸다. 현재 한국 문학의 외국어 번역 작업은 국가 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민간 기관인 대산문화재단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역할을 해 왔지만, 이제는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특히 한국문학번역원은 시대적 요구에 비해 그 조직이나 예산의 규모가 부족한 편이다. 한강 소설의 영역에 큰 공헌을 한 데보라 스미스 같은 인물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립 번역대학(원)을 설립하는 일도 생각해 볼 만하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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