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다문화] 울과 담장이 있는 추억 속 골목길

  • 다문화신문
  • 공주

[공주다문화] 울과 담장이 있는 추억 속 골목길

  • 승인 2025-04-06 11:19
  • 신문게재 2024-11-03 16면
  • 충남다문화뉴스 기자충남다문화뉴스 기자
4-6. 박진희 기자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중략)

민족의 애창곡인 '봉선화(鳳仙花)'의 노랫말이다. 1920년 홍난파가 곡(曲)을 쓰고, 5년 후 김형준이 작시(作詩)하여 탄생한 한국 가곡이다.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이 노래는 애절한 곡조와 중의적 의미를 더해 한민족만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녹아 있다. '울타리'나 '펜스(fence)'로 대신할 수 없는 첫 소절의 '울(柵)'이라는 한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온다.



며칠 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돌담풍경마을'에 다녀왔다. 상신리는 큰 웅덩이가 있어 신소(莘沼)라고도 불리는 부락이다. 고개를 들면 계룡산 봉우리들이 눈에 차고, 발길 닿는 곳마다 경쾌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마을 어귀에는 장승과 솟대, 선돌이 서 있고, 마을 주산에 산신당을 모시고 매년 일정 시기에 마을 단위의 제를 올리는 토속신앙이 남아 있다. 근래에는 계룡산도예촌과 농촌체험휴양마을이 조성돼 타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상신리 돌담풍경마을은 큰 샘을 중심으로 100여 호가 모여 살던 동네를 말한다. 그림처럼 예쁜 사계절 풍경과 산천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다 담장을 올린 옛집들이 곱게 어우러져 있다. 서울의 덕수궁 돌담길처럼 세련되고 정갈한 느낌은 없다. 낮은 담장 너머로 집안 세간살이가 드러나는 상신리 돌담풍경마을 골목길을 걷노라면 오래 살아온 고향의 포근함이 전해진다. 봄에는 빈 나뭇가지에 용쓰듯 새싹이 올라오고, 여름이면 담장 위로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담장 너머 키 큰 감나무에 붉은 감이 매달린 가을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상신리 돌담길은 잔설과 찬바람을 견디는 나목뿐인 한겨울에도 금세 친근함을 느낄 만큼 매력적이다.

더러 흙담이나 돌담 대신 대나무로 울타리를 친 허름한 가옥도 보인다. 일 나간 주인 대신 홰치는 닭들과 충직한 멍멍이 한 마리가 집을 지킨다. 해바라기하던 고양이 한 마리는 낯선 이와 시선이 마주쳐도 놀라거나 황급해하지 않는다. 남의 동네 길모퉁이에서 만나는 익숙한 풍경에 갑갑하던 숨통이 트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가가호호 활짝 열렸던 대문은 굳게 닫히고,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을 쌓은 주택이 늘어갔다. 급기야 높은 담장 위에는 무시무시한 쇠꼬챙이와 사금파리, 조각낸 유리 조각이 촘촘히 박히기까지 했다. 봉선화가 줄지어 피던 싸리나무 울타리, 동네 코흘리개들의 스케치북 대용이던 담벼락이 사무치게 그립다. 하시절(何時節), 급변하는 세태에 힘겹게 순응하며 살다가 아스라이 어른거리는 우리네 소박한 풍경에서 삶의 쉼표를 찍어 본다.
박진희 명예기자(한국)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지킨 참전영웅들…어린이 위로공연에 '눈물'
  2. 아산시, 취약지역 하수도시설 일제 점검
  3. 아산선도농협, 고추재배농가에 영농자재 지원
  4. 아산시,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개선 적극 추진
  5. 천안시의회 권오중 의원, "교통약자 보호 및 시민 보행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1. 천안시, 제77회 충청남도민체육대회서 주택안심계약 홍보
  2. 천안시의회 정도희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마을행정사 운영에 관한 조례안 본회의 통과
  3. 천안법원, 신체일부 노출한 채 이웃에게 다가간 20대 남성 '벌금 150만원'
  4. 천안시의회 유영채 의원, '전세피해임차인 보호조례' 제정… 실질 지원과 안전관리까지 법제화
  5. 여름휴가와 미래 정착지 '어촌' 매력...직접 눈으로 본다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대표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집권 초부터 PK 챙기기에 나서면서 충청권 대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진정성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자칫 충청 홀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대목인데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 또는 개헌 등 행정수도 완성 로드맵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가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와 장대교차로 입체화 추진 예정지 등 주요 사업지를 찾아 현장점검을 벌였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현장, 교육위원회는 서남부권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찾았는데, 을 찾았는데, 이번 현장점검에 직접 나선 조원휘 의장은 "앞으로 민선 8기 주요 사업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13일 유성구 일대 교통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았다. 먼저 유성복합터미널 BRT(간선급행버스체계)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는 유성구..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힘입어 경기 당일 주변 상권들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야구장 중 주변 상권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다. 15일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개막 후 70일간 야구 경기가 열린 날 전국 9개 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13%, 2024년 25%, 올해 31%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141만 명의 데이터 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