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결혼식, 의례에서 이벤트로 변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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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결혼식, 의례에서 이벤트로 변모하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 승인 2025-06-11 16:53
  • 신문게재 2025-06-12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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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평론가.
결혼은 언제나, 한 시대의 감각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의례였다. 한국의 결혼은 의례와 연출, 전통과 소비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독자적 문화를 만들어냈다.

조선시대 결혼은 가문 간의 유대를 강조하는 중요한 사회적 행사였다. 결혼 절차는 엄격한 예법을 따랐다. 사주단자의 교환은 신랑과 신부의 궁합을 점치는 핵심 절차로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결혼은 감정적 결합이 아니라 운명적 연합이라는 철학을 반영하였다. 신부는 붉은 비단 장옷을 입고 이마와 볼에 연지곤지를 찍어 화려한 장식을 더 했으며, 신랑은 품위를 강조하는 예복을 착용하여 가문의 권위와 전통을 나타냈다. 혼례식 공간에는 장수와 행복을 상징하는 십장생 병풍이 배치되고, 청사초롱이 혼례를 밝히며 화합과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더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혼수 문화가 점차 사치스럽게 변하며, 사대부 중심의 과도한 소비가 문제시되었다. 1482년 한성부 우윤 한간은 사치스러운 혼수로 비판받았고, 1502년엔 사헌부가 규제를 요청했다. 이는 혼수가 단순한 결혼 준비물이 아닌, 신분과 위상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준다. 조선 왕실은 혼수의 사치를 막기 위해 특정 품목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예물과 침구에 고급 견직물 사용을 제한하고, 금은보석이 장식된 갓끈과 장신구 사용을 금지한 조치는 결혼이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조선시대의 혼수 규제는 결혼의 본질을 지키려는 사회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현대 결혼식은 과거와 달리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 작은 결혼식 등 다양한 형식이 등장하면서 결혼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결혼 산업의 발달로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시각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현대 결혼식과 전통 혼례는 공간 연출의 미학과 상징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현대 결혼식은 대부분 실내에서 진행되며, 조명과 꽃 장식, 무대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신부 입장로(버진로드)에는 조명이 집중되고, 미디어 연출이 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전통 혼례가 자연 속에서 가족과 가문의 결합을 강조했다면, 현대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감각적 연출을 통해 하나의 이벤트로 완성된다.

이벤트화된 결혼식 문화는 외형적 기준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고, 준비 과정 전반이 점차 표준화된 상품처럼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웨딩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다. 초기 계약금은 낮지만 사진 원본 구매비, 드레스 피팅비, 메이크업 추가 비용 등이 더해지며 전체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결혼식장의 규모, 하객 수, 신혼여행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하고, SNS에 공유되는 사진과 영상이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부추긴다. 결혼이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치러지는 중요한 행사라는 점을 감안할때, 과거와 현대 모두 외적 요소를 중시하는 경향은 유사하지만, 오늘날 그 강도는 훨씬 더 높아졌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을 설계해 나가기로 선택하는 일이다. 그 의미에 걸맞은 산업의 책임도 요구된다. 최근에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투명한 비용 구조에 대한 문제 제 기를 반영하여, 주요 예식장과 대행 업체의 서비스 가격이 한국소비자원의 '참가격' 등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결혼서비스업의 범위와 기준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기 위한 '결혼서비스업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결혼을 둘러싼 문화와 산업의 풍경은 이미 크게 달라졌다. 결혼이 시대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그 주변 산업 역시 그 의미와 책임을 함께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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