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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재균 팀장 |
시민의 참여를 권리와 의무로 명시한 대전광역시 시민참여 기본조례를 무시한 대전시의 결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 미개최 결정은 단순히 하나의 행정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을 넘어 시민참여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부정한 최악의 결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전광역시 시민참여 기본조례는 시민을 시정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정책에 능동적인 주체로서 참여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전시는 조례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정당하게 청구된 시민참여 토론회 등을 실현한 적이 없다.?
대전시에 각 토론회 개최를 요구한 1,000여 명의 시민들은 그저 단순히 서명만 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서명 하나하나에는 대전시의 일방적인 행정에 대한 깊은 우려, 시민참여의 가치 수호,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가 행정에 온전히 반영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시민참여 토론회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번의 토론회를 여는 것에 만족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재 대전이 가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과제를 시민과 함께 해결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시민참여 기본조례 토론회 청구 과정에서 대전시의회도 대의기관의 책임을 저버린 최악의 선례를 남겼다. 행정자치위원회는 시민들의 정당한 토론회 개최 요구를 무시한 채, 시민사회 3조례 폐지안을 단 한 번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가결했다. 시민 참여는 정책 결정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공론의 장이 열리는 순간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도 시의회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시민의 대변자여야 할 시의회가 오히려 시민의 입을 막고 졸속으로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2022년 주민참여예산 축소에 대해서도 시민의 서명을 받아 토론회를 청구했지만, 역시 열지 않았다. 이후 토론회 및 공청회 등의 성사 기준을 대폭 강화했던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이 정작 시민들이 그 높아진 기준을 충족하자마자 서둘러 시민사회 3조례를 폐지했다는 사실은 시의회의 태도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자의적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민을 존중하는 민주적 의회가 아니라, 이장우 시장을 비호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대리인일 뿐이다.
그리고 공무원들로 구성된 시정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사실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시민들의 숙의와 참여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을, 시민이 아닌 공무원들이 비공개 회의에서 결정하는 방식은 시민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행태다.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시의 '조정' 대상이 되어 밀실에서 결정된다면, 이는 시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구태의연한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2022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지방정부연합(UCLG) 총회에서 채택된 '대전선언'은 지방 정부의 미래를 위한 협약으로, 시민 참여적이고 책임 있는 체계적인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과 투명한 예산 책정, 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학계와 시민사회, 지역 커뮤니티를 참여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특히 내년이면 대전광역시장이 UCLG 의장이 되는 해다. UCLG 의장이라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대전시는 시민 참여라는 기본적인 약속부터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란 시간에 퇴행만 거듭하고 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대전시정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하고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것이다. 시민과의 진정한 소통에 나서야 하며, 시민사회의 요구를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는 것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길이다. 시민 없는 시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길 바란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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