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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조 운영위원장 |
최근 강릉시는 극심한 가뭄으로 제한 급수를 실시하고 있고, 전국에서 소방차가 동원되어 식수를 긴급 공급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 같은 시기 군산에는 폭우가 쏟아져 큰 수해가 발생했다. 작은 한반도 안에서도 지역별로 전혀 다른 양상의 기상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미리 알기도 어렵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는 물을 다스리고 활용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왔다. 15여 년 전 추진된 4대강 사업은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표면적으로는 보를 설치해 수량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실제로는 녹조 발생 등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을 불러왔다. 본질은 토목사업을 통한 토건업자의 이익과 공동체적 가치 보존 사이의 충돌이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지만, 강의 건강성을 회복하기는 커녕 새로운 문제를 양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한 댐 건설이 여러 곳에서 시도됐다. 하지만 많은 지역 주민이 이를 반대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주민의 필요에 따라 추진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강행됐기 때문이다. 주민 입장에서는 기후변화 대응보다는 토건업자의 이해와 연결된 사업으로 비쳤고, 결국 지역사회와 행정간 불신만 깊어졌다.
한국 지속가능발전 목표(K-SDGs)가 강조하는 물관리의 핵심은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공평한 식수 공급,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참여 보장'이다. 지금까지 물관리는 주로 행정과 관료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물을 저장하고 분배하는 과정에 지역사회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물관리의 길이다.
과거 4대강 사업 당시 주민 참여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행정이 주도한 사업설명회는 사실상 '밀어붙이기'였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남겼다. 금강 유역에 설치된 세 개의 보는 실제 효용성이 낮아, 이후 보령댐과 예당저수지에서 추가 용수를 끌어오는 후속 사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취수지점은 정작 보와 무관한 지역에서 설정됐고, 언론은 이를 '보를 통한 용수 확보'인 것처럼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불신과 갈등만 증폭시켰다.
오늘날 충청 지역의 세종보에서는 환경단체가 1년이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보 처리 방안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하는 동안, 행정과 주민, 환경단체 간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지역사회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다양한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 세종보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의 댐과 보, 저수지 문제를 다룰 때도 이런 협의체는 필요하다. 물은 특정 기관이나 행정의 소관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삶과 직결된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물관리는 단순히 더 많은 댐을 짓거나 거대한 토목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참여가 보장되면 갈등을 줄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 지금의 위기, 가뭄과 홍수, 기후변화라는 복합적 과제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하는 관리'다.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생명선이다. 행정의 효율성만을 앞세운 관리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는 지역 주민과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물의 저장과 배분, 이용과 보전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직면한 불확실한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강과 깨끗한 물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최병조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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