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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식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본부 팀장 |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자료를 접하는 바이어들의 눈길을 오래 붙잡는 것은 결국 '이 기업만의 이야기'와 '신뢰의 흔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접한 자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본질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고, 이는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스토리의 부재다. 50년 넘게 한약재만 다뤄온 기업, 30년 이상 홍삼 생산에 집중해 온 기업조차 안내자료와 포장 등에서 고유한 스토리를 드러내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 납품 실적도 해외 바이어에게는 신뢰 자산이 될 수 있지만,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기업의 역사가 차별화된 스토리를 담지 않아 평범한 자료가 된 것이다. 기업이 가진 역사와 노하우를 스토리화하는 작업이야말로 브랜드 구축의 첫걸음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브랜드가 '조선미녀'다. 전통 한방 성분과 조선시대 미인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토리로 해외 젊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유럽·호주·인도 등 100여 개국에 월평균 200만 개 이상이 수출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B2C와 B2B를 혼동한 마케팅이다. 현장에서 만난 기업들의 자료를 보면, 일반 소비자를 기준으로 한 성분과 기능 설명에 초점을 맞춘 자료는 있었지만 정작 바이어 설득용 자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외 바이어는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나 외형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 공급 능력, 현지 시장에서의 유통 가능성, 사후 관리 신뢰성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바이어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마지막 문제는 지속성 없는 홍보, 즉 디지털 자산 관리의 부재다. 영상과 안내자료 같은 일회성 제작에 집중하면서, 홈페이지와 SNS는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최신 정보가 없는 채널은 바이어에게 곧 '비즈니스 활력 부족'으로 읽힌다. 반면 한 건강기능식품 기업은 신제품 출시와 전시회 참가, 현지 광고를 SNS로 꾸준히 공유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전시회 바이어 방문이 늘었고, 기존 파트너 철수 위기 속에서도 관계를 이어온 다른 바이어가 새 파트너가 돼 연간 100만 달러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수출 마케팅은 단순히 '좋아 보이는 홍보'가 아니라 바이어를 설득할만한 이야기와 신뢰를 담아야 한다. 기업은 자신만의 역사, 전문성, 실적을 스토리화하고, 디지털 자산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정부 지원사업 역시 단순 홍보자료 제작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이어 관점의 전략·관계 구축 컨설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해외 바이어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결국, 스토리와 신뢰에 있다. /정형식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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