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어설픈 책상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어설픈 책상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 승인 2025-09-17 17:01
  • 신문게재 2025-09-18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81301000989700041421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20평이 조금 안 되는 작업실 한쪽에 2평 남짓한 방이 하나 있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1층 상가에는 이처럼 조그만 방이 딸린 게 보통이다. 최근에 지어지는 상가주택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방식이다. 살림도 하고 장사도 하는 게 보통이던 시절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조그만 곳을 공부방으로 꾸몄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철재 프레임 위에 두께 2센티 소나무 집성목을 올려 맞춤한 책상을 만들었다.

길 건너 목재상에서 재단해 기아 카렌스 좌석을 모두 젖혀 실어 간신히 옮겨왔다. 소나무 집성목 판재 표면을 사포로 다듬고, 투명 바니쉬를 네 번이나 정성스레 칠해 마무리했다. 세 번 칠하고 그만둬야 했다. 왠지 부족할 거란 의심 때문에 한 번을 더 칠한 탓에 군데군데 얼룩이 생기고 바니쉬가 흘러내려 주름이 생겼다. 바니쉬가 너무 두껍게 칠해진 탓에 키보드를 두드릴 때 팔 안쪽이 책상 상판에 쩍 달라붙는다. 여름철 습도가 높고 더워지면 바니쉬가 녹진해진 느낌마저 든다.

어설프게 만든 책상의 왼쪽에 고급 LED 탁상 조명을 올려놨다. '서울대 도서관에 납품하는 고퀄리티 조명'이라는 문구에 혹해 30만 원이 넘는 조명을 덜컥 샀다. 빛에 민감한 눈을 가진 탓에 맞춤한 탁상 조명을 찾기 위해 꽤 애썼더랬다. 30년 넘게 하얀 석고를 다루느라 시력이 망가졌다. 카메라 렌즈가 백색의 피사체에 초점을 잡는 게 어려운 것과 같다고 누가 그랬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눈이 편한 탁상 조명을 사들이게 됐다. 집이고 공부방이고 탁상용 스탠드가 여기저기 있다. 비싼 값에 산 엠씨스퀘어 탁상 조명은 전원 아댑터와 분리된 채 구석에 처박혀 있다. 아까워 버리지도 못한다.

최근 어설픈 책상에 새로운 식구를 들였다. 8년간 써온 아이맥이 자주 멈췄다. 컴퓨터가 갑자기 멈추면 직전의 데이터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경우는 저장공간의 데이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이맥을 공장초기화하고 50만 원에 당근했다. 그리고 큰돈 들여 맥스튜디오와 모니터를 장만했다. 최소 5년 동안은 안심하고 쓸 수 있을 게다. 맥으로 도면을 그리고 3D 모델링하고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고 편집한다. 지금 이글은 율리시스라는 글쓰기 전용 앱에서 쓰고 있다. 일본산 해피해킹 키보드를 10년 동안 쓰고 있었다. 무선 겸용 하이브리드 모델이 당근에 올라와 또 유혹에 넘어갔다.



마우스는 전용 패드 위에 올려있다. 데스크탑 컵퓨터는 한 번 사면 10년 가까이 쓴다. 그에 비해 마우스는 수명이 짧다. 손목에 병이 생기는 것만큼 마우스도 고통받고 쉽게 고장 난다. 민감한 조작이 어려워지면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로지텍 마우스도 간당간당한다. 마우스 바로 옆에 교보문고 디퓨저가 놓여있다. 이 디퓨저에는 교보문고가 직접 개발한 시그니쳐 향수로 'The Scent of Page'라는 제품이다. '책의 향기'하는 뜻이 있다. 디퓨저 스틱을 두 개 꽂아놓은 공부방에 책의 향기가 깊게 배어있다.

머피의 법칙처럼 이번에는 온 힘을 내어 A4 용지를 뱉어내던 복합기가 말썽이다. 언제부터인지 복합기와 컴퓨터 간의 통신이 잘 안된다. 복합기가 컴퓨터를 꺼도 함께 꺼지지 않고 출력을 못 한다. 강제로 껐다 켜야 비로소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들인다. 스캐너 기능도 멈춰버렸다. 이것저것 검색해 보니 애플 실리콘을 탑재한 컴퓨터와의 호환 문제라고 한다. 결국 복합기도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어설픈 책상은 조명과 컴퓨터, 마우스, 복합기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멀쩡하다. 아마도 10년 뒤, 어설픈 책상 위에 강력한 AI를 품은 고사양 컴퓨터가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부연 대전예술편집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2.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3.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4.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5.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1. [대입+]] 2026 수시 충청권 의대 지원자 46% 감소… 역대 최저치
  2. 박재형 세종충남대병원장 취임 "더 큰 도약"
  3. 일본 찾은 김진동 세종상의회장… 한-일 경제계 협력의지 다져
  4. 대전 학교폭력 4년 연속 늘어… 2025년 1차 실태조사 결과 발표
  5. 밝은누리안과병원 이성준 원장, 유럽 백내장굴절수술학회서 임상 연구 발표

헤드라인 뉴스


제4인뱅 인가 무산에 충청 지방은행 설립 `꿈` 뭉개져

제4인뱅 인가 무산에 충청 지방은행 설립 '꿈' 뭉개져

충청권의 오랜 숙원인 지방은행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소호은행(KSB)이 '제4인터넷은행' 인가를 받지 못하면서 충청권 기반 금융 생태계 조성에 기대를 품었던 지역민들의 박탈감을 높였다. 금융위원회는 17일 정례회의를 열고 소소뱅크, 소호은행, 포도뱅크, AMZ뱅크 등 4곳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불허했다. 제4인터넷은행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한국소호은행(KSB)은 대전시와 협약을 맺고 대전에 본사를 두고, 지역 특화 사업 발굴 및 정책자금 연계를 통해 지역 금융 정착을 도울 계획이었지만, 결국 정부 인가를 받지 못..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RISE 재구조화, AI 인공지능 활용 등 교육 분야 주요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학문별 대가로 선정된 교수에 대한 정년 제한을 풀고, 최고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6대 국정과제를 위한 25개 실천과제(공동주관 1개 국정과제, 3개 실천과제 포함)를 최종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현해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에 나선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이재명 새 정부가 오는 12월 30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청사 개청식을 예고하면서,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를 위한 동반 플랜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수년 간 인구 정체와 지역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시에 전환점을 가져오고, 정부부처 업무 효율화와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해졌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산술적 대응은 당장 성평등가족부(280여 명)와 법무부(787명)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셈법으로 빠져 나가는 공직자를 비슷한 규모로 채워주는 방법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