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탐욕(貪慾)의 시대, AI의 그림자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탐욕(貪慾)의 시대, AI의 그림자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5-10-21 09:37
  • 신문게재 2025-10-22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현 프리즘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방에는 낡은 라디오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며 소리를 조정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에게 라디오를 켜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벌써 반세기가 넘는 이야기다. 그때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전원을 켜고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며(그때는 주파수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으나) 소리를 조정하는 그 단순한 작업이 뭐가 그리 어렵다 했는지.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인공지능 앱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에 그저 놀랄 따름이다. 결국, 어떤 일을 처리할 때면 할머니의 모습처럼 다시 아이들을 찾게 된다. 심지어 필자는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조만간 인공지능은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으로 예측된다. 전통적인 기업들도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고, 혁신적인 기업들이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국가 간 외교나 경제 활동, 심지어 개인의 선택에도 실용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 사회가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자본주의를 채택했으므로, 새로운 기술인 인공지능은 시장에서의 효율성과 경쟁을 통해 물질적 번영을 달성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더욱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사회적 책임(CSR)이나 ESG 경영(환경, 사회, 지배구조)과 같은 명분을 중요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윤 추구를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의 특성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가속화될 것이다.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은 막대한 자본 투자를 해야 하며, 자본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자본을 소유한 개인에게 부가 집중될 것이다. 이렇게 집중된 부는 다시 자본 투자로 이어지며, 더욱 심각한 부의 집중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경제적 부의 집중은 자본의 희소성을 유발하고, 더 많은 자본을 확보하려 과도한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탐욕'이라 부른다.

국립국어원의 국어사전에 정의된 탐욕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이다. 기본적으로 욕심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이라는 수식어에 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시작됐지만, 현대 사회는 이러한 욕망이 과도하게 증폭되어 '탐욕'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 주위의 평범한 이웃들은 더 가지고자 하는 이유를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평생 써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을 보면, 부족이 탐욕의 근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며, 자신의 위치를 타인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라는 말이 이를 대변한다. 명품 소비, 고급 주택 소유 등 타인이 가진 것을 자신도 가져야 한다는 심리는 끝없는 소비와 소유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이러한 심리는 무한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환경에서 개인이 끊임없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성공을 증명하도록 압박한다. 더 나아가, 물질적 성공이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척도가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탐욕을 더욱 정당화할 수 있다.

'욕심'을 가지되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탐욕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뇌가 보상과 쾌감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 속의 도파민 회로는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거나 쾌락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어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며, 이러한 도파민 시스템은 끊임없이 '더 많은' 보상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선을 넘는 과정이다.

현대 사회에서 탐욕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인간 본성과 현대 사회 시스템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 이러한 '탐욕'의 제어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강한 규제와 감독도 필요하겠지만, 사회문화적 전략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 사회 예측을 반영한 기업 윤리 교육, 미디어 담론 관리, 사회적 규범 형성, 개인 및 사회적 '탐욕'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공감 교육 등이 그것이다. 김성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청주서 국내 최초 고고학 대박… 운천동서 고려 ‘청석탑’ 온전하게 나왔다
  2. 담양군,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최우수상·우수상 석권
  3. 전쟁 끝났는데 홀짝제 풀리나…차량 2부제 완화 여부 관심
  4. 서산, 123년 전통한옥, 복합문화예술공간 '해미담'으로 재탄생 된다
  5. 충남대 통합 찬반투표 앞두고 쟁점 재점화…17일 대토론회
  1. [현장의 사람들] 불길이 남긴 흔적 쫓아 원인 밝힌다…대전동부소방서 곽맹걸·이태규·김재능 화재조사관
  2. "우주에서 본 지구, 협력이 답이었다" 우주인 이소연 박사 대전ISS서 강조
  3. 성남 원도심, 대규모 정비사업 본격화…도시 균형발전 시험대 오른다
  4. 가축방역 최전선 '공중방역수의사' 처우 개선 '첫 단추' 끼웠다
  5. 충청권 의료현안 정조준 복지부 국립대병원 육성안…상경진료·치료가능 사망률 효능 주목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반도체 패키징 벨트 `호남 투자론`에 제동 우려

충청권 반도체 패키징 벨트 '호남 투자론'에 제동 우려

<속보>=충청권을 중심으로 추진되던 반도체 후공정 투자 구도에 변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역 사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본보 6월 11일자 1면 보도> 더구나 국가균형발전 기조 속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호남권 반도체 투자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충청 정치권에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투톱의 충청권 기존 투자 계획 이행은 물론 신규 투자 등을 위해선 지역 정치권의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7일 지역 정·관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충남 천안·온양을 첨단 패키..

대전의 아들 황인범 월드컵서 아시아 유일 베스트일레븐 선정
대전의 아들 황인범 월드컵서 아시아 유일 베스트일레븐 선정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눈부신 경기력을 뽐낸 '대전의 아들' 황인범이 월드컵 선수들 중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며 활약을 인정받았다. 글로벌 축구 콘텐츠 매체인 '매드 풋볼(MAD FOOTBALL)'은 월드컵 조별리그 A~H조 1차전 중간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했다. 황인범은 4-3-3 포메이션으로 선정된 베스트일레븐에서 미드필더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아시아권에선 유일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남은 미드필더 두 자리는 자말 무시알라(독일), 페드리(스페인) 등이다. 황인범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청년이 미래-2편]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대전시가 잇는 청년들의 인연
[청년이 미래-2편]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대전시가 잇는 청년들의 인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서 만날 기회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도 일상 속에서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비대면 문화와 개인화된 생활방식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접점이 감소한 데다, 학업과 취업 준비, 바쁜 직장 생활 등으로 인해 관계를 형성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한, 온라인 중심의 만남이 늘면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만남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데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갈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대전시가 마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