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일본의 가락시장 도요스, 유통 시스템은 정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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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본의 가락시장 도요스, 유통 시스템은 정반대?

■기획취재-농산물 유통과 전통주의 미래, 일본서 엿보다
폐쇄형 시설로 적정온도·위생관리 철저
소분·포장까지 '가공 패키지' 자체 보유
"신뢰 두터워" 정가·수의매매 비중 90%
디지털 전환 움직임 없어 한국과 상반

  • 승인 2025-12-03 11:29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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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 청과동에서 농산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동해를 사이에 둔 지리적 특징으로 음식과 문화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 등락과 함께 안정적 먹거리 공급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유통시스템 개편을 통한 국가적 공동 전략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도일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관한 4박 5일간의 일본 현장 취재를 통해 현지 농산물 유통 전략을 살펴보고, 한국 전통주의 새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의 정가 거래 전략

2. 한국 농협 벤치마킹한 JA 하다노 직매장

3. 국산 전통주의 현 위치와 '사케의 매력'



일본 현지 농산물 유통 전략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자체 가공시설 구축 등으로 폐쇄형 시설 운영을 차별화하고 있고, 경매보다 정가와 수의거래 유도부터 직접 보고 사는 문화가 이채롭게 다가왔다.

▲상인 대상 '폐쇄형 시설' 특징… 자체 가공시설 갖춰 차별화

11월 26일 오전 5시, 짙게 깔린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도요스(豊洲)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도매업자와 거래 참가자 등이 하나둘 모여들며 대화를 나눴고, 물건을 가득 실은 터릿 트럭(소형 운반차량)은 바삐 오가며 새벽녘 적막을 깨웠다.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은 2018년 10월 11일에 개장한 수도권의 주요 시장이다. 앞서 1935년에 개설된 세계 최대 수산시장인 츠키지 시장의 전통을 이어받아 2배 가까이 규모를 넓혀 이전했다. 수산과 청과, 식육, 화훼 등의 신선한 식료품 등을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지역 유통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도요스 시장의 전체 면적은 40만 7000㎡로 한국의 가락시장보다 조금 작지만 비교적 큰 규모다. 청과물의 50%와 수산물의 40%가 도매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 중 일본산 청과는 약 70%에 달한다.

수산 중도매장동과 수산 도매점, 청과동, 관리시설동으로 구성된 도요스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형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 특성에 따른 구역별 적정 온도관리는 물론 외부 공기, 해충, 먼지 유입을 차단해 위생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단순 공간의 의미를 넘어 상인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것도 한국의 도매시장과는 차별화된다.

또한 시장 옥상에 설치된 도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과 외기 냉방 시스템으로 에너지 절약에 선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스나가 토모키 과장 대리는 "도요스 시장은 설계부터 효율적 물류를 고려해 만들어졌다. 적재 공간은 물론 가공부터 소분, 포장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한 가공 패키지 시설도 자체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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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 수산 도매점에 참치가 길게 놓여져 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경매보다는 '정가·수의거래' 활발… 한국 도매시장과 대조적

오전 5시 30분 정각, 기자가 찾은 수산 도매점에선 힘찬 외침과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견학자용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구호와 규칙적으로 끊어치는 박수 소리에 눈과 귀가 사로잡혀 있을 즈음, 가격이 결정되고 순식간에 거래가 성사됐다. 도매업자와 매참인들간 얼마나 많은 눈빛이 오갔을까. 나무 갑판 위에 길게 늘어놓은 육중한 참치 몸뚱이엔 색색의 메모지가 증표처럼 붙여졌다. 이곳에선 하루 7번 참치와 새우, 성게 등의 수산물의 경매가 이뤄진다고 한다.

수산물 중도매업자가 모이는 중도매장동으로 넘어가는 통로는 4층 한곳 외엔 모두 폐쇄돼 오염물 유입 등 위생 관리에 용이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곳에서 취급되는 수산물은 하루 1182t, 연간 3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물의 3층엔 식당이나 잡화 판매점 등이 입주해 일반인들도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옥상에는 시민들을 위한 녹지공원이 조성돼 현대화와 더불어 시민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점도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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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 수산 도매점에서 참치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이어 방문한 12만 8000㎡ 규모의 청과동엔 팔레트(Pallet·상품적재용 깔판) 위 농산물·과일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품목별로 규격화된 상자 안에 싱싱한 농산물은 터릿에 실어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다. 도매업체 3개소가 참여하는 청과점은 경매로만 하루 849t, 33억 7200만 엔 상당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청과동에 있는 농산물은 대부분 정가·수의 거래로 갈 곳이 정해져 있지만, 신규 산지 농산물이나 '반짝 입고 상품'은 경매를 통해 팔린다. 시장 한편엔 마련된 저온 창고는 채소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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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 청과동 내 소포장된 사과. /사진=이은지 기자
도요스 시장의 눈에 띄는 특징은 경매에 비해 정가·수의 매매 비율(90%)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곳 도요스 뿐 아니라 지역의 11개 중앙 도매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것은 경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한국의 도매시장과 상반되는 현상이다.

정가·수의 매매는 출하자와 구매자가 1대 1로 협의해 미리 판매가격과 수량을 정해 거래하는 방식으로, 경매와 달리 미리 정해진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져 가격 변동성 완화과 거래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정부가 올해 9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대책을 발표하고 예약형 정가거래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거래 비중은 낮은 편이라 정책적 지원과 현장 인식 개선이 과제로 남아 있다.

▲직접 보고 사는 문화, 디지털 전환 움직임은 '아직'

일본에서 정가·수의 매매가 활발히 이뤄지는 배경엔 거래의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이 고려됐다. 야마코시 마사히로 과장은 "정가·수의 매매는 거래 물건이 미리 정해져 얼마에 팔지 가격만 정하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다. 오히려 경매하면 얼마에 팔릴지 몰라 더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매참인들이 좀 더 싸게 사기 위해 경매에 참여하기 때문에 생산자로선 정가·수의 매매가 더 돈을 많이 남긴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 가격은 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데, 도매 법인과의 오랜 거래를 통한 데이터가 축적돼 기본적으로 '신뢰'가 형성돼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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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 청과동 전경. /사진=이은지 기자
일본 도매시장의 거래방식에서 '디지털 전환' 움직임이 뚜렷이 없다는 것도 한국 시장과는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화훼 등 특수 부분을 제외하고선 상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다만 공동배송장 시범 운영 등 온라인 거래 전용 물류 기지화 추진 노력을 이어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은 현재 도매유통의 6%(1조 원) 수준인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규모를 2030년까지 50%(7조 원 규모)로 확대할 방침이다.

양국은 매매 형태나 온·오프라인 거래 방식 차원에서 상반된 유통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가격 안정'과 '유통비용 절감'이라는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시대 흐름과 현실 상황에 맞춘 농산물 유통시스템 개편안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속>
일본 도쿄=이은지 기자 lalaej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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