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농가가 생산·출하·판매까지… 소비자 "믿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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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농가가 생산·출하·판매까지… 소비자 "믿고 삽니다"

■기획취재-농산물 유통과 전통주의 미래, 일본서 엿보다
매일 아침 직접 키운 채소 직접 진열하고
재고 관리까지 모든 과정 농가가 책임져
유통 마진 줄여 가격 투명성·안전성 확보
농산물 아이스크림 인기… 귀농인 육성도

  • 승인 2025-12-04 10:13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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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가나가와현 하다노시에 있는 JA(일본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지바산즈'. /사진=이은지 기자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동해를 사이에 둔 지리적 특징으로 음식과 문화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 등락과 함께 안정적 먹거리 공급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유통시스템 개편을 통한 국가적 공동 전략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도일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관한 4박 5일간의 일본 현장 취재를 통해 현지 농산물 유통 전략을 살펴보고, 한국 전통주의 새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의 정가 거래 전략

2. 한국 농협 벤치마킹한 JA 로컬푸드 직매장

3. 국산 전통주 현주소와 일본의 '사케'



온라인 먹거리 시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한국과는 다르게 농가 주도 농산물 직거래로 유통 마진과 농가 수익을 동시에 챙기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 도쿄 가나가와현 하다노시에 있는 JA(일본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지바산즈(地場産's)다.

11월 26일 오후 3시에 찾은 지바산즈는 이른 시간임에도 진열대 곳곳이 비어있었다. 매장 내 고연령층의 손님들은 꼼꼼히 상품을 살피며 여유롭게 장을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 농부들의 손에 들려온 농산물은 '신뢰'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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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 가나가와현 하다노시에 있는 JA(일본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내 상품이 완판돼 진열대 곳곳이 비어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이웃 농가가 직접 키워 더욱 신뢰… "값싸고 싱싱해"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온 지역 주민 미토메(59) 씨는 "이곳에서 산 야채는 가격도 싸고 싱싱해 열흘도 거뜬히 간다. 지역 농가가 농약도 덜 쓰며 밭에서 직접 일궈 더 믿음이 가기도 한다. 호박 같은 경우는 일반 슈퍼에선 500엔 정도 하는데 여기선 절반 가격이다. 일본 물가가 올라서 힘든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지바산즈의 연매출은 11억 2000만 엔, 내점객 수는 53만여 명이다. 등록 출하 농가 614명 중 절반인 300명이 상시 출하 중으로, 연매출 100만 엔 이상 출하자도 143명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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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하라 요시노리 하다노 지바산즈 점장이 사무실에서 가격 라벨 인쇄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농가 책임 유통구조, 시장경쟁 유도하며 먹거리 품질도 UP

지바산즈는 상품의 가격 책정부터, 진열, 재고 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농가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농가는 매일 아침 직접 생산한 상품에 생산자와 품목, 원산지, 가격 등을 새겨진 라벨을 직접 붙여 판매대에 올린다. 상품이 팔릴 때마다 농가에 메일을 전송돼 판매량과 재고 체크가 이뤄진다. 농가가 매일 직접 재고 수거를 하고, 수거되지 않는 상품을 다음 날 아침 모두 폐기되는 과정을 거친다.

생산과 출하·판매·회수까지 농가가 책임지는 이러한 유통 구조는 자연스러운 가격 경쟁을 유도하면서도 주민들에게 신선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가격 투명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먹거리 안전망을 강화했다. 다양한 유통경로를 활성화시켜 시장 질서를 지키는 거래 방식은 우리 정부가 유통구조 개선대책으로 추진하는 직거래 활성화 방안과 궤를 같이한다.

로컬푸드 직거래의 단점으로 지목되는 가격 불안정성과 품질·재고 관리에 대한 우려도 불식하고 있다.

키타하라 요시노리 하다노 지바산즈 점장은 "농가들은 상품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기보단 오히려 낮게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점장이 가이드를 준다"며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제공을 위해 매월 296개 성분의 잔류농약 검사를 펼치고,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라벨에도 기입하는 등 품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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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일본 도쿄 가나가와현 하다노시에 있는 JA(일본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지바산즈' 매장 한쪽에 한국 농협 코너가 마련돼 있다. /사진=이은지 기자
▲한국 최초 로컬푸드 직매장서 노하우 배워… '한국농협 코너' 눈길

지바산즈의 이러한 직거래 방식은 전북 완주군의 '용진농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2년 국내 최초로 개장한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역 농가가 직접 농산물을 생산, 출하, 소포장하고 진열, 재고 관리까지 맡고 있어 지바산즈와 매우 닮아있다. 용진농협은 농산물 직거래 콘서트 대상 수상 등 다양한 수상 이력을 보유하며 우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매장 한쪽에 마련된 '한국농협 코너'를 통해서도 우리 농협과의 돈독한 협력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농협의 경우 100%의 국산 제품만 판매하도록 하고 있지만, 식문화 교류 차원에서 한국 상품만 판매하는 단독 코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협동조합간 연계성과 한국 농협과의 협력 관계 등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붙이고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다. 노력한 만큼 매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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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산즈 직영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파는 흙마늘 아이스크림. /사진=이은지 기자
▲농산물 아이스크림 가게 직영 운영… 귀농인 멘토링도 호응

제철 농산물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하다노 직매장만의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전략이다. 2022년 4월 직영점으로 오픈한 아이스크림 가게는 계획하고 만들기까지 무려 4년이나 걸렸다.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직원의 아이디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주말에 타 지역에서도 가족 단위로 찾아올 정도로 명물로 자리잡았다. 배, 쌀, 흑마늘, 땅콩, 살구가 들어가 색도 맛도 다양하다. 실제 기자가 맛본 흑마늘 아이스크림은 달콤함과 짭짤함이 어우러지며 감칠맛이 돌아 자꾸만 손이 갔다. 가격은 350엔으로 비교적 착하다.

지바산즈는 시민 농업교실을 운영하며 귀농인 육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키타하라 요시노리 점장은 "2년 코스의 시민 농업교실을 수료하면 농가가 직접 2년간 멘토링을 지원한다.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여기 하다노 직매장에서 출하할 수 있다. 하다노시의 예산이 투입돼 연간 2만 엔 정도의 수업료만 지불하면 교육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속>
일본 도쿄=이은지 기자 lalaej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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