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정년 연장에 대한 짧은 단상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정년 연장에 대한 짧은 단상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 대표노무사

  • 승인 2026-02-01 10:58
  • 수정 2026-02-09 10:48
  • 신문게재 2026-02-02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박범정11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 대표노무사
최근 필자가 자문하는 기업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정년'이다. 요즘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올리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자, 기업들은 정책의 방향보다 먼저 "우리 업종·규모·임금체계로 감당 가능한가"를 되묻는다.

작금의 저출산·초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정년은 한 세대의 복지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설계의 문제다. 같은 제도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충격의 크기는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기업 현장에서 만난 세 가지 장면이 이를 보여준다. 첫째, 직원 280명 규모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3교대 라인에서 50대 후반 숙련자가 품질과 안전을 지탱한다. 정년연장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연공급 구조에서 65세로 '일괄' 늘리면 60세 이후 5년이 고정비 급증으로 직결된다.

이 회사는 정년 60세를 유지하되 퇴직 후 1년 단위 촉탁계약직 재고용(최대 63세)으로 숙련을 남기고, 야간·고강도 공정 대신 주간 품질·교육·예방점검 직무로 전환했다. 임금도 호봉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설계해 비용과 안전을 함께 관리했다.

둘째, 직원 70명 식품·물류 사업장인 B사는 청년 채용이 번번이 실패하자 외국인 노동자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 여기서 정년을 65세로 올리면 생산성보다 인건비 부담이 먼저 커지고 신규채용 여력은 더 줄 수 밖에 없다. 이곳은 '풀타임 연장'이 아니라 정년 이후 재고용을 시간선택·부분근로로 열어 상황에 맞춰 주 3~4일, 특정 시간대 근무를 허용하고, 나머지 구간을 청년·신입직원이 채울 수 있도록 공정을 쪼갰다. "사람을 오래 쓰기"보다 "버틸 수 있게 일의 형태를 바꾸기"가 먼저였던 셈이다.

셋째, 150명 규모 IT서비스 업종인 C기업은 정년보다 '직무의 수명'을 더 두려워한다. AI가 고객응대, 문서·기획, 단순 개발업무까지 대체하며 5년 뒤 직무가 남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정년 논의와 별개로 직무·역량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하고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재교육·직무전환 트랙을 운영했다. 고령자 고용의 핵심은 연령이 아니라 이동 가능한 통로였다.

정년연장이 임금체계개편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연공급은 안정적이지만 정년이 길어질수록 기업 부담이 커진다. 임금피크제가 '대안'으로 쓰였으나 최근 판례 흐름은 정당성을 엄격히 따져 단순한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 삭감' 교환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직무 재설계, 합리적 평가기준, 투명한 전환절차가 없으면 노사 갈등만 증폭 될수 있다. 노동자는 생계와 존엄을, 사용자는 비용과 지속가능성을 말한다. 둘 다 옳다. 다만 우량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획일적 정년연장이 '일자리 막힘'으로 체감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사오정·오륙도의 불안을 줄이려다 이태백의 절망을 키워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해법은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서 '현장 맞춤'으로 찾아야 한다. 특히 업종별 위험도·생산성, 청년채용 여력, 고령자의 건강과 직무적합성까지 함께 보는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결론은 명확하다. 정년 60세 법을 65세로 일괄 상향하는 방식은 현장 격차를 무시한 거친 칼이다. 법은 숫자를 고정하기보다 '65세까지의 고용기회 보장'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업종·규모별로 선택 가능한 메뉴를 넓혀야 한다.

예컨대 첫째 정년연장에 따른 직무급 전환 방식, 둘째 정년은 유지하되, 촉탁 계약직 재고용 방식, 셋째 단계적 연장에 따른 시간선택·부분근로 확대 등 세 가지 방식을 기업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대신 선택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차별 금지, 임금·처우의 합리성, 건강·안전, 전환교육 지원 같은 최소 기준과 정부의 사업장 정년 연장 전환비용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인간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오래 일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건강하게 일하고 존엄하게 전환하며 일과 여가의 균형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년의 답은 책상 위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박범정 태평양노무법인 (대전) 대표노무사

획일적 정년연장보다, 현장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제도, 그 선택권을 법이 보장하는 방식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태평양노무법인 박범정 노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2. [현장취재]정민 한양대 명예교수 에 대해 특강
  3. 아산시 영인면행복키움, 지역복지네트워크 업무 협약 체결
  4. 천안시체육회-더보스턴치과병원, 체육인 구강 건강 증진 업무협약
  5. 아산시, '10cm의 기적' 장애 체험 행사 진행
  1. [숏폼영상] 도심 한복판에서 숲속 공기 마시는 방법
  2. 백석대, 건학 50주년 기념 기독교박물관 특별전 '빛, 순간에서 영원으로'
  3. 아산시립도서관, '자연을 담은 시민의 서재' 진행
  4. 남서울대, 제2작전사령부와 국방 AI 협력 업무협약 체결
  5. 천안시, 성고충상담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헤드라인 뉴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대전 유성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유성온천’입니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과거 유성온천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행차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유성온천은 과연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을까요? 유성온천의 기원은 무려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한 온천과도 같은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유성온천 탄생의 전설을 전해드립니다. 금상진 기자유성온천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한..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2026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고초를 겪고 있다. 팀 내 주축 선수들의 기량 저하가 핵심 원인으로, 특히 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을 정도로 불안정한 투수진은 한화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2일 KBO에 따르면 한화는 올 시즌 11승 17패 승률 0.393의 성적으로, 리그 10개 구단 중 8위에 올라있다. 최근 10경기 성적은 3승 7패로, 이달 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 패하며 3연패 수렁에 빠진 상태다. 중위권과는 2경기 차로 뒤처진 상황이며, 9·10위권과는 단 0.5..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전투가 벌어진 장소를 전쟁유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쟁 시설 조성에 동원된 인력과 그 과정도 유적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 일본의 영역이었으므로 지배를 강압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준비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그의 저서 '한반도의 일제 전쟁유적 활용, 해법을 찾아'에서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 전쟁유적은 일본 침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의 역사에서 피해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며 "피해자성이란 피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