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5장-유성온천, 하늘을 감동시킨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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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5장-유성온천, 하늘을 감동시킨 모성애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3-11 15:00
  • 신문게재 2026-03-12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온천은 예로부터 동물의 인도로 발견되었다는 설화가 많지만, 유성온천은 전쟁에서 다친 아들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모성애가 하늘을 감동시켜 발견되었다는 특별한 유래를 지닙니다. 학이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본 노모가 그 물로 아들을 완쾌시킨 이 전설은 단순한 물리적 효능을 넘어 전쟁의 비극을 사랑으로 극복한 숭고한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깃든 유성온천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관련 지명과 함께 전해지며 고단한 영혼을 감싸주는 따뜻한 치유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을 치료한 유성온천
학의 날개를 치료한 유성온전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제공
대지의 뜨거운 숨결인 온천은 예로부터 하늘이 내린 신비였습니다. 물이 치유의 매개체로 쓰인 예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자를 살려낼 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졌으나,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이후 그의 탄생지인 에피다우로스는 치유의 성소가 되었고, 병자들은 이곳에 머물며 기도를 올리고 성스러운 샘물에 몸을 씻어 건강을 되찾았다고 전해집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온천은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최고의 치유였습니다. 그렇기에 온천에는 저마다 설화가 전해집니다. 부산 동래온천에는 다친 학의 이야기가 있고, 충주 수안보온천에는 다친 황새나 용이 상처를 치유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울진 백암온천 또한 사냥꾼이 쫓던 사슴이 따뜻한 물에 상처를 담그는 모습을 보고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일본의 도고온천 역시 다친 백로가 스스로 상처를 고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데서 기원하며, 영국의 바스(Bath) 온천에는 나병에 걸려 왕좌에서 쫓겨난 블라두드 왕자가 뜨거운 진흙 물에서 피부병을 고치는 돼지들을 보고 자신의 병을 고쳐 신분을 되찾았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온천의 발견은 대개 영험한 동물의 인도로 시작되지만, 유성온천은 조금 특별합니다. 단순한 우연이나 동물의 발견이 아니라, 간절하고 지극한 모성애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었으니까요.

유성온천호텔 전경
유성온천이 발견된 때는 백제시대라고 알려져 있다. 사진은 유성온천호텔 초기 모습. /대전 유성구 제공
유성온천 이야기는 백제 말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성 땅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심 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치열해지자 전장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노모는 매일 아들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꿈에도 그리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신라군의 포로가 되어 모진 고초를 겪어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요. 어머니는 지성으로 아들을 보살폈지만 좀처럼 차도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약을 구하러 집을 나서던 노모의 눈앞에 화살을 맞은 학 한 마리가 고통스럽게 울며 내려앉았습니다. 학은 눈이 녹아 고여 있던 따스한 물 웅덩이에 다친 날개를 적셨고, 신기하게도 사흘 만에 상처가 아문 듯 힘차게 날아올라 갔습니다. 이를 본 어머니는 그 물을 정성껏 길어 와 아들의 상처를 씻기고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고 아들은 점차 기운을 되찾게 되었지요. 감격한 어머니는 그곳에 움막을 짓고, 자신들처럼 아픈 사람들이 와서 마음껏 몸을 씻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유성온천 전설은 이처럼 모성애가 만들어 낸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안동 도산온천처럼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가 온천을 발견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하지만, 유성은 그 시대적 배경이 매우 구체적이고 비극적입니다. 백제 말엽, 유성 일대는 신라와의 국경이 맞닿은 치열한 전투현장이었습니다. 전쟁터로 끌려간 외아들을 기다리던 노모의 마음은 당시 전란에 짓밟힌 모든 백제 유민의 고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유성온천 초기
1920년대 유성온천호텔 앞 거리 풍경.한적한 도로와 1대 뿐인 차량이 요즘의 유성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 /대전 유성구 제공
백제가 패망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마주했을 때, 노모는 절망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논길과 산길을 누비며 약을 찾아 다녔지요. 이 강인하고도 지극한 사랑이 하늘을 감동시켰고, 그 응답으로 '학'이라는 전령이 내려와 치유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성온천만의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이야기들이 단순히 동물을 보고 온천을 발견했다는 결과에 집중한다면, 유성온천 전설은 어머니가 직접 그 물을 길어 날라 아들의 상처를 씻기고 간호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손길이 온천수의 물리적 효능에 모성이라는 영적인 치유력을 더한 셈이지요. 학이 울었던 자리는 '명학소(鳴鶴所)', 학이 내려앉은 자리는 '학하리(鶴下里)'라는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대전의 땅 위에 그 신화적 흔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성온천 전설은 단순한 온천의 발견을 넘어서,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을 죽음에서 구했다는 지극한 모성애를 담고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를 모성이라는 인륜의 힘으로 극복해낸 기적의 서사지요. 전쟁의 상흔마저 녹여낸 어머니의 사랑은 이제 유성의 땅을 흐르는 온천수가 되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고단한 영혼들을 다정하게 감싸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신화로 말이지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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