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한국 최고 노포(老鋪) 구단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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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한국 최고 노포(老鋪) 구단의 설움

  • 승인 2026-04-02 09:40
  • 수정 2026-04-22 23:26
  • 신문게재 2026-04-02 18면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최고(最古)'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게는 남다르다. 대전을 연고로 푸른 잔디 위를 누비는 '코레일FC'는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랜 뿌리를 가진 구단이다. 1943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축구단'으로 창단해 해방 이후의 혼란기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공을 놓지 않았던 이들은, 수차례의 개편과 재창단을 거치며 83년간 대한민국 실업 축구와 K-3 리그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왔다. 이 유서 깊은 노포(老鋪) 구단이 최근 2026시즌 K-3 리그 우승 시 K리그 2(프로 2부)로 승격하겠다는 도전장을 내밀며 축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원대한 포부 이면에는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해 타향살이를 전전하는 구단의 서글픈 현실이 짙게 가려져 있다.

코레일FC의 설움은 역설적으로 대전시가 야심 차게 추진한 '스포츠 랜드마크' 건설 계획에서 시작됐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새 보금자리인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를 짓기 위해 기존 홈구장이었던 한밭종합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코레일FC는 하루아침에 떠돌이 신세가 됐다. 도시의 축제 공간을 새로 만든다는 명분 아래, 80년 역사를 품은 축구단의 터전은 포크레인 날 끝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 코레일FC가 임시방편으로 머무는 곳은 대전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이다. 말이 좋아 보조구장이지, 이곳의 관중석은 고작 500석 남짓이다. 이는 K-3 리그 최소 기준인 1,000석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프로연맹이 요구하는 K리그 2 승격 조건인 1만 석 규모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초라한 수준이다.

이러한 행정의 공백은 결국 실질적인 '징계'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코레일FC는 이번 시즌 관중석 규정 미달로 인해 홈경기 중 한 경기를 타지에서 치러야 하는 초유의 페널티를 받았다. 연고지 팬들과 안방에서 호흡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셈이다. 대전시는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 건립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는 당장 생존과 승격을 다투는 구단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2026시즌 코레일FC가 기적처럼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해도, 규격에 맞는 경기장이 없다면 승격의 꿈은 서류 심사 단계에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대전 권역에서 프로연맹 규정을 충족하는 구장은 대전하나시티즌의 홈구장인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유일하지만, 한 구장에 두 개의 프로팀이 상주하는 것은 운영상의 제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축구단만이 아니다. 한밭종합운동장을 함께 쓰던 육상 종목 선수들 역시 대체 구장인 충남대 운동장에서 더부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나름의 시설 보완에 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변변한 휴게 시설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들은 불편함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서남부스포츠타운의 예상 준공 시기는 2029년이다. 지역 체육계에서는 실제 인프라가 완벽히 갖춰지는 시점을 2030년 이후로 보고 있다. 앞으로도 최소 3~4년을 더 떠돌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코레일FC의 연고지 변경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거론되고 있다. 80년 전통을 가진 지역의 자산이 타 지자체로 이전하게 된다면, 이는 대전 체육계와 시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손실이자 행정의 수치가 될 것이다.

대전시가 진정으로 '스포츠 명품 도시'를 지향한다면, 구단이 피땀 흘려 쟁취한 성과를 행정적 결핍으로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 행정의 핵심은 특정 종목의 화려함이 아니라 모든 종목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다. 80여 년을 버텨온 구단에 지금 필요한 것은 10년 뒤의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다. 당장 내년 시즌, 팬들의 함성을 받으며 정당하게 승격의 꿈을 꿀 수 있는 온전한 '집'이다.
금상진 뉴스디지털부 부장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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