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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초지공원에서 진행된 산내디딜방아뱅이 액막이놀이 재연행사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
이웃 마을을 찾아간 부녀자들은 상여에 디딜방아를 훔쳐 메고 상여꾼처럼 구슬픈 소리를 내며 돌아왔다고 합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한 뒤에는 가져온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우고 방아 가랑이에 여인의 속옷을 걸었습니다. 그 위에 붉은 팥죽을 뿌리거나 황토를 칠한 뒤 제를 올렸지요. 의식이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함께 음복을 하고 밤새 놀이를 벌였는데, 이렇게 하면 역병을 몰고 오는 역신이 기이한 모습을 보고 길을 잃고 마을을 피해 간다고 믿었습니다.
왜 하필 디딜방아였을까요.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어 사람을 먹이고 생명을 이어 주는 농기구였습니다. 풍요와 생명력을 상징하는 그 방아를 거꾸로 세운 것은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일상의 규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세상을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지요. 역신도 사람처럼 길을 찾아온다고 믿었던 선조들은, 마을 어귀에 펼쳐진 이 낯선 풍경 앞에서 역신이 길을 잃고 지나쳐 버리기를 바랐습니다. 여기에 평소 부정하다고 여겼던 여인의 속옷을 걸고 나쁜 기운을 없애는 붉은 팥죽과 황토를 사용하면서 역병이 물러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재난 앞에서 세상의 질서를 잠시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회복하려는 상상력은 인류가 오래도록 공유해 온 신화적 사고였지요. 자신보다 강한 재앙을 만났을 때, 인간은 그것을 힘으로 이기려고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속이고 달래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며 위기를 극복하곤 했지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인간을 멸망시키려던 여신 세크메트를 붉게 물들인 맥주로 취하게 만들어 분노를 잠재웠고, 인도에서는 천연두와 열병을 다스리는 시탈라 여신에게 차가운 음식과 물을 바치며 병이 물러가기를 기원했습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재앙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돌려 대응했다는 점에서는 산내 공주말의 상상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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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초지공원에서 진행된 산내디딜방아뱅이 액막이놀이 재연행사 모습. 길놀이하고 빈 상여를 들고 이웃마을에 가서 디딜방아를 훔쳐서 싣고오며 상여소리하고 마을에 가져와 거꾸로 세워놓고 제 지낸 후 칼을 땅에 꽂고 소지 올리면서 마무리한다. 이후 축제처럼 함께 먹고 즐긴다. 사진=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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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초지공원에서 진행된 산내디딜방아뱅이 액막이놀이 재연행사 모습. 길놀이하고 빈 상여를 들고 이웃마을에 가서 디딜방아를 훔쳐서 싣고오며 상여소리하고 마을에 가져와 거꾸로 세워놓고 제 지낸 후 칼을 땅에 꽂고 소지 올리면서 마무리한다. 이후 축제처럼 함께 먹고 즐긴다. 사진=한소민 소장 |
전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공주말 사람들이 이웃에 디딜방아를 가지러 갈 때 덕산과 송촌, 소룡골 사람들은 이를 알고서도 모른 척해 주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방앗간에 여벌의 디딜방아를 준비해 두었다고 하지요. 밤중의 도둑질은 서로를 속이는 범죄가 아니라 이웃 마을이 같이 힘을 합쳐 진행한 하나의 의식이었습니다. 전염병은 어느 한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공주말이지만 내일은 어디가 될지 몰랐기에 사람들은 재앙을 막으려는 마음으로 서로를 도왔습니다. 재난 앞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의 연대가 디딜방아뱅이 속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의식이 부녀자들 중심이 되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매일 디딜방아를 밟아 곡식을 찧고 가족의 끼니를 마련하던 여성들은 위기의 순간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제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돌보던 손이 마을을 지키는 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가장 일상적인 노동이 가장 신성한 의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재앙 앞에서도 절망하기보다 세상을 새롭게 상상하고, 잠시 질서를 뒤집어 다시 질서를 세우려 했던 산내 공주말의 디딜방아뱅이. 그 오래된 이야기 속에는 두려움 앞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낸 인간의 상상력과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지켜 주었던 공동체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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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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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