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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초고를 끝내고 롯데백화점의 영화관에 갔다. 그동안 궁둥이 붙여 글 쓰고 드로잉하느라 고생한 것에 대해 작은 상을 스스로 주기로 했다. 많은 영화관 중에 롯데시네마를 택한 이유는 빵집 때문이다. 사실 영화보다 튀김 소보로 한입 베어 무는 게 더 큰 상이라 여겼다. 영화를 보고 나서 빵 굽네가 점령한 백화점의 1층으로 내려갔다. 보통 고급 명품관이 즐비한 백화점 1층과는 사뭇 다르다. 썰렁한 명품관과는 다르게 빵집앞은 빵을 고르러 들어가는 줄과 고른 빵을 계산하기 위한 줄이 마치 거대한 우로보로스(꼬리를 물고 있는 신화 속 뱀) 같았다.
먼저 들어가는 줄에 놀라고 계산 줄에 기겁한다. 쟁반을 받쳐 든 것은 애교다. 전용 카트까지 등장했다. 줄 설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최근 두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입구 컷을 스스로 해버렸다. "대전 사람들은 성심당 빵을 오히려 못 먹어요. 성심당 투어를 온 외지인들에 밀렸어요." 요즘 대전 사람들이 입 밖으로 자주 내뱉는 말이다. 서울 갔다가 기차로 돌아오는 길에 대전역에서 부추빵과 튀김 소보로를 소박하게 사 들고 귀가하던 때가 불과 10년 전이었다. 지금은 빵집 근처로 갈 생각조차 하질 않게 되었다. 긴 줄을 만드는데 한몫할 생각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안 먹고 만다!" 속으로 말하고 냄새 맡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성심당 튀김 소보로를 먹었다. 1981년이다. 춘천의 소양강 댐에 근무하던 둘째 누님이 대전으로 내려왔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던 시절이었다. 서울에서 여상을 졸업한 세련된 누님은 이것저것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동생들에게 베풀었다. 그중의 하나가 성심당의 튀김 소보로였다. 4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름진 냄새를 기억한다. 불량 기름에 구운 호떡도 황송해서랬는데 소보로가 거북 등처럼 딱딱하게 튀겨진 단팥빵은 향긋하고 고급진 기름 냄새를 풍겼다. 한입 베어 물자 딱딱하게 튀겨진 소보로와 부드러운 빵, 달디 단 단팥 앙금이 절묘한 맛을 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갓 튀겨낸 맛을 느꼈더랬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 몇 개를 먹었는지, 배가 불렀는지 기억에 없지만 처음 한 입은 똑똑히 기억한다. 기름 향과 맛을! 안되는 줄 알면서 가끔 성심당 근처를 기웃거리는 것은 그때 그 냄새와 맛 때문이다. 대전에서 50년을 살았으니, 성심당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드나들었을 것이다. 먹어 치운 빵도 헤아릴 수 없을 테지만 처음 맛봤던 튀김 소보로의 맛만을 오롯이 기억한다. 성심당 케익부띠끄에서 아무리 맛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내어놓아도 튀김 소보로만 못하다. 가끔 아내가 성심당을 들러 빵을 사 온다. 집안 가득 튀긴 빵의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슬금슬금 종이백을 열고 종이로 심플하게 포장한 튀김 소보로를 꺼내 먹는다. "옛날 맛이 아니네."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사 온 성의를 생각해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행여 입 밖으로 꺼냈다간 앞으로 국물도 없을 테니까.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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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바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