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강병수 상임대표 |
그러나 도시를 계획할 때면 큰 공간부터 이야기한다. 세종에서는 환상형 도시구조와 6개 생활권을, 대전에서는 원도심·둔산·유성의 발전과 도시철도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중요하다. 다만 그 계획이 시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장을 보고 아이를 돌보며 이웃을 만나는 '동네'까지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1929년 미국 도시계획가 클래런스 페리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공원과 생활편의시설을 걸어서 이용하는 '근린주구'를 제안했다. 통과교통은 외곽으로 돌리고, 동네 안에서는 일상과 보행을 보호하자는 구상이었다. 오늘날의 '15분 도시'도 이와 맞닿아 있다. 집 가까이에서 교육·의료·장보기·문화·여가를 누리자는 것이다. 핵심은 시간보다 삶에 있다.
필자가 연구했던 미국 오스틴은 이를 구체적인 계획으로 옮긴 사례이다. Bouldin Creek, South Congress 등 근린별로 주민과 함께 주택, 교통, 공원, 토지이용 문제를 다룬다. 미래토지이용도(FLUM)에는 주거지를 지킬 곳과 상업·혼합용도를 배치할 곳을 담는다. 도시의 비전을 주민이 의견을 보탤 수 있도록 '우리 동네 지도'로 만드는 것이다.
세종은 이러한 근린계획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6개 대생활권 아래 인구 2~3만 명 규모의 기초생활권을 두고 학교, 공원, 상업시설, 복합커뮤니티센터를 배치했다. 생활시설을 가까이 모으려는 노력은 소중한 출발이다. 이제는 시설 사이를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살펴야 한다. 지도에서는 가까워도 넓은 도로를 건너거나 아파트단지를 돌아가야 한다면, 아이와 노인에게는 먼 길이 된다. 세종은 끊어진 보행로를 잇고 누구나 편하게 건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복합커뮤니티센터도 주민이 동네의 불편을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전에는 서로 다른 동네의 삶이 쌓여 있다. 둔산·노은·관저·원도심은 형성 과정도 생활 모습도 다르다. 근린계획도 그 차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둔산에서는 학교·공원·상업시설을 안전한 보행로로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원도심에서는 골목과 전통시장의 정취를 살리면서 빈집, 주차, 보행안전 문제를 풀어야 한다. 둔산의 노후계획도시 정비도 재건축과 용적률을 넘어,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주민자치이다. 어디가 위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는 매일 그 길을 걷는 주민이 잘 안다. 유모차 앞을 막는 턱 하나, 횡단보도에서 느끼는 불안, 쉴 의자가 없어 겪는 어려움은 도면만으로 알아내기는 어렵다. 주민의 경험이 계획에 담길 때 도시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것이다.
주민자치도 문화강좌와 행사를 넘어 동네의 변화를 함께 결정하는 공간자치로 넓어져야 한다. 주민이 '우리 동네 15분 지도'를 그리며 필요한 길과 시설을 찾고, 행정은 공간데이터와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계획수립부터 사업 우선순위와 실행평가까지 참여한다면, 계획은 함께 책임지는 동네의 약속이 될 수 있다.
우리 도시계획에는 도시 전체의 구상과 개별 개발사업을 잇는 동네 단위의 계획이 부족하다. 세종은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기초생활권별 계획을 만들고, 대전은 특성이 다른 동네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작게 시작하더라도 주민이 변화를 체감하고, 그 경험이 다른 동네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좋은 도시는 거대한 건축물과 넓은 도로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혼자서도 안심하고 학교에 가고, 노인이 쉬엄쉬엄 걸어 공원에 닿으며, 이웃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에 주민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도시는 크게 계획하되, 삶은 가까이에서 살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도시의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오늘도 집을 나서 걷는 그 길, 우리의 '15분 동네'에서 시작된다.
/강병수 세종충청발전연구회 상임대표.충남대 명예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송익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