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일본의 대재앙과 동북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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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일본의 대재앙과 동북아 공동체

[시론]민찬 대전대 교수

  • 승인 2011-03-16 16:46
  • 신문게재 2011-03-17 21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조선 시대의 소설 '최척전'의 여주인공 옥영은 자신의 남편인 최척을 스스로 선택한 여인이다. 왜구가 침략해 피신하던 중 남편과 헤어진 옥영은 남장을 한 채 포로의 몸이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다. 일본에 간 옥영은 무역상인 일본인 돈우를 따라 중국과 안남 등지를 돌아다니던 중 명나라로 끌려간 최척을 이역 땅에서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다. 중국에 터전을 잡은 부부는 아들 몽선을 낳고 명군으로 조선에 참전한 중국인 위경의 딸 홍도를 며느리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된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후금이 침입하자 최척이 명군으로 참전하면서 가정의 평화가 깨져버린다. 최척은 조선군으로 참전한 큰아들 몽석을 만나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조선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옥영은 수소문 끝에 최척이 조선으로 탈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자신도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방법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 아들 몽선의 거듭된 만류가 있었지만 옥영은 동중국해 바다에 배를 띄워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긴다.

실제로 중국과 조선은 바람과 조류의 도움을 받아 바닷길이 가능했다.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도 조선 중엽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그보다 100여 년 전에는 제주도에 관리로 파견된 최부가 갑자기 부친상을 당하여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던 중 폭풍우에 표류하여 보름 동안 천신만고 고생을 하고 중국 절강성에 표착한 적도 있다. 최부는 왕명을 받아 이 경험을 '표해록(漂海錄)'으로 남겨 둔 바도 있거니와 조선 시대에는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는 필리핀, 말레이시아까지 표류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 동해안과 일본 열도 및 오키나와 열도로 둘러쳐진 서해와 동해 및 동중국해를 동아지중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해는 한반도와 홋카이도 섬으로 좁아지며 북쪽으로 닫혀 있다. 서해는 발해만으로 바다가 막혀 있다. 제주도 아래로는 오키나와 열도가 동서로 이어져 대만까지 연결된다. 이렇게 사방이 땅으로 막혀 있고 그 안에 형성된 바다가 동아지중해인 것이다. 지중해라고 하면 육지 속의 바다를 일컫는 표현으로서 지금까지는 유럽에 있는 지중해만 생각해왔는데 한반도 주변에도 이렇게 지중해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동아지중해이고 동아지중해의 한 가운데에 꽃봉오리처럼 솟아 있는 땅이 한반도다.

이 바다는 신라시대에는 해상왕 장보고의 활동무대였다. 그 이전 가야시대에는 허황옥이 배를 타고 건너왔으며 고려신화에 나오는 작제건이 또한 배를 타고 건너간 바다이기도 하다. 바다를 그 옛날의 고속도로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바다를 건너 사람들이 이동했고 물자와 문화도 옮겨 다녔다. 우리나라에 벼가 들어오고 비단이 들어온 길도 역시 바닷길이었다. 육지가 둘러싼 바다라는 조건 덕택에 지중해는 사방이 탁 트인 바다와는 항해의 조건이 달라 그만큼 순조로운 항해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순조로운 항해 덕분에 오늘날 유럽의 문명이 높은 수준을 이룩했거니와 한ㆍ중ㆍ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 3국의 국가 수준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동아지중해의 덕을 본 측면이 큰 것이다. 초기 백제 시절 비류의 세력이 해상을 통해 일본에 진출했던 사실, 가야와 일본의 교역, 불교의 전래,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및 김수로왕 신화 속에서 찾아지는 바닷길 등은 바다를 통한 문명의 교류가 우리가 단순히 추측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고 또 빈번했음을 알게 해 주는 사항들이다. 바다를 통한 교류와 교역의 한 가운데에 우리나라가 있었던 셈이다.

일본에 대재앙이 들이닥쳤다. 사진으로 보는 천재지변의 참혹함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전 사고까지 잇따르고 있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시시각각 전해오는 일본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웃나라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즈음, 이미 언론을 중심으로 전국민적인 일본 돕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정당이나 기업 가리지 않고 모금 대열에 합류하는가 하면 한류 스타들도 이미 성금을 쾌척했고 엊그제는 정신대 할머니들까지 추모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과거사 반성에 미적대고 독도 문제가 불거져 아쉽기는 하지만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의 고사를 떠올리면서 일본의 재앙과 함께 동북아 공동체를 다독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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