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황금빛 유년의 기록'

  • 문화
  • 문화/출판

[맛있는 책읽기]누구나 가슴 속에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황금빛 유년의 기록'

  • 승인 2017-01-05 11:08
  • 신문게재 2017-01-06 12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나의 아름다운 정원

▲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지음 / 한겨례 / 2002 刊
▲ 나의 아름다운 정원/심윤경 지음 / 한겨례 / 2002 刊
작가는 누구나 가슴 속에 환하게 간직하고 있을 황금빛 유년의 기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 동구는 삼층 집정원에 몰래 들어가 호젓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희부연 겨울 햇살이 안개처럼 정원을 두르고 있었다. 조심스레 정원으로 들어서자 정원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처럼 감싸 돌았다. 이곳에 가져다 놓으면 뭐든지 다 아름다워지는 걸까?

잘 살펴보면 삼층집 정원이라고 해서 값비싼 고급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모퉁이에는 흔해빠진 수수꽃다리 꽃도 있고, 전혀 쓸모없이 억세기만 해서 산에서 마구 뽑아버린다는 아카시아 나무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것이건 귀한 것이건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는 다 같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삼층 집 정원의 아름다움은 추운 날씨나 하늘을 찢는 번개도 끄떡없이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것이지만 시멘트 한 줌, 어느 난폭한 손목의 돌팔매질 한 번이면 곧바로 상처 입을 수 있는 여린 것이기도 하다

성장에는 아픔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 현실의 논리로는 굳이 옳다 할 필요가 없지만 소설의 논리로는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소설은 가볍게 읽어 내릴 수만은 없는 그만의 무게를 가진다. 현실의 대처와 극복, 성장으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패턴에도 불구하고 성장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인공에게 따르는 '아픔'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픔이라는 것은 종류나 강도는 다르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따라서 성장소설은 인물이 갈등을 해결해가는 과정 안에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투사하기 쉽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물은 어리디 어린 소년 한동구이다. 동구는 곧 어릴적 나이며 지금 바삐 살아가는 우리이다. 어릴적 동생을 떼어놓고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면서 누릴 수 있는 재미난 유년 시절로 동구를 따라 들어가본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더없이 착한 동구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좋지 않다. 그의 불행은 조금씩 어쩔 수 없는 가족관계에서 시작된다.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지독한 갈등,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를 방관하거나 일방적으로 할머니 편을 들어 어머니에게 상처 주는 아버지의 무심함에 동구의 예민한 감성은 늘 상처받는다.

게다가 자신은 귀한 4대 독자이지만 폭언을 일삼고 며느리 구박을 당연시하며, 동구 엄마의 기를 살리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심술은 늘 동구를 구박의 대상으로 여기며 초등학교 3학년생이 난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장애까지 떠안고 있어 이래저래 기가 죽어지내는 신세다. 그러던 중 6살 터울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난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의 미움을 사 한복자라는 이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뻔했던 영주는 타고난 귀염성과 영민함으로 순식간에 한씨 집안의 웃음덩어리가 된다. 딸이라는 큰 핸디캡을 가지고도 어느 모로 보나 어리숙한 동구보다 뛰어난 영주는 얼음장 같은 집안의 분위기를 단숨에 녹여버린다.

동생의 존재는 동구에게 있어 성장과 갈등의 시작이다. 오빠는 3학년이 되어도 글을 읽지 못하는데 3살에 이미 글을 깨우쳐 주위를 놀라게 한 동생. 그 존재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열등감을 안겨 준다. 이러한 어린 동생에 대한 동구의 이중적 심정과 갈등은 천사 같은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는 동구를 더욱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동구의 삶에서 동화처럼 행복하고 이상적인 완벽한 가족간의 화해와 화합의 순간은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동구의 참된 성장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동구의 기억 속에 남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인해 그의 유년이 조금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소설에서 독자는 어린 소년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군부독재와 민주 항쟁이라는 정치적 혼돈기는 소년의 시점 안에서 그럭저럭 흘러가 버린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자 우리 소설의 중요한 화두였던 '1980'은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과하면서 평범한 이웃의 모습과 삼촌, 박 선생님의 입을 통해 역사적 사건이 삶의 일부가 된다.

1980년, 주인공에게 글을 가르쳐주던 박 선생님은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여름방학이 지나도록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세상과의 유일한 창이었던 박 선생님과의 이별, 뒤어이 찾아온 갑작스런 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광기 등 소설은 극적인 사건과 함께 위기를 맞고 노루벌로 할머니와 동구는 떠나면서 결말로 치닫는다.

그리고 1981년, 마지막 기록을 끝으로 작가는 누구나 가슴 속에 환하게 간직하고 있을 황금빛 유년의 기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동구의 눈에 비친 그 혼란의 시대는 옆 동네에 사는 덩치 큰 고시생 주리 삼촌과 어마어마한 탱크를 볼 수 있었으며, 선생님이 바지를 다려 입었다는 것만으로 비난을 들어야 했던 수상한 시대일 뿐이다. 이처럼 소년의 시점은 미숙한 시선으로 현상의 겉모습만 비춰 볼 뿐이지만 가끔씩은 어른들이 보는 세상보다 더 정확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본질을 꿰뚫는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이상적인 여교사의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이한 결말이 소설의 긴장을 다소 떨어뜨릴 순 있지만 전통적인 소설 문법에 매우 충실하게 쓰여 쉽게 읽혀지며, 주인공의 섬세한 내면 심리와 감정이 적절히 녹아 있어 재미를 준다. 또한 해학적이면서 서정적인 문체로 독자를 웃고 울리는 완급 조절도 뛰어난 소설이다.

진창구 대덕구평생학습원 사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연축지구 개발 탄력받나… 공공기관 유치 준비 주목
  2. 가을 제철 수산물 가격 들썩… 꽃게·전어 두 배 급등
  3.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4. 중도일보 김원식 회장·김현수 대표이사 부자(父子) 아너 소사이어티 탄생
  5. 대전 택시 기본요금 11월부터 4800원… 3년 만에 인상
  1. 잇단 산하기관 잡음… 세종시 관리·감독 문제 도마 위
  2. 온통대전, 카드 없이 QR코드로 결제한다… 정부 지원율 변화도 관심
  3. 죽동중·성남중 설립 목소리 커지는데…대전교육청 '해법 찾기' 고심
  4. 충남농기원, '다단 수경 재배 기술' 개발…부추 생산성 강화 기대
  5. 장원토건, 대전시 '매출의 탑' 500억원 부문 선정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이재명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전 지역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이전 대상 기관들의 대전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후발 혁신도시 우선 배치 여부도 아직 안갯 속이기 때문이다. 대전은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메카이며 국토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과학기술 및 균형발전 성과를 영호남, 강원 등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크다. 이재명 정부가 대전에 관련 공공기관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27일 중도일보..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전국 고용센터별로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 인력의 업무 편차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 1명이 관리하는 참여자 수가 전국적으로 최대 11.5배 차이가 났으며, 충청권 내 13개 고용센터에서도 최대 5.9배 격차를 보였다. 27일 본보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당진)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고용센터별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기준 전국 102개 고용센터의 상담인력은 총 792명으로, 상담사 1명당 평균 126.2명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대전 내 대체 시설 확보를 위한 대전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충남과 세종까지 국정자원 유치에 나선 가운데 당초 제안한 2개 후보지 외에도 추가 부지를 발굴하며 대전 내 재설립을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전시의 이같은 행보는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신규 기관 유치뿐 아니라 기존 기관 붙잡기에도 힘을 쏟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7일 대전시에 따르면 허태정 대전시장은 이날 민선 9기 자치구 상생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구를 방문해 국정자원 본원의 대전 내 재설립 필요성을 강조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 ‘울긋불긋’ 대전 도심 ‘울긋불긋’ 대전 도심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