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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강용식 한밭대 초대 총장(신행정수도 상임추진위원장)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像미술회전, 19일부터 24일까지 작품 전시
이동훈 선생 대전사범 제자로 기념사업회 운영위원 활동, 국제효운동본부 총재로 효와 인성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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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6-12 18:09 수정 2019-06-17 15:46 | 신문게재 2019-06-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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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가 아니라 8전9기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신행정수도 최초 제안자인 강용식 신행정수도 상임추진위원장(한밭대학교 초대 총장, 행복도시 자문위원장)이 그림 전시회를 열게 돼 화제다.

대전사범 시절 이동훈 선생의 애제자였던 강용식 총장은 노후의 취미생활로 학창시절의 재능을 발휘해 그림 그리기에 전념, 계룡산을 비롯해 외국의 폭포 그림 등을 작품으로 내고 관람객들을 만나게 됐다.

19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열리는 像미술회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스승 이동훈 선생의 작품과 더불어 대전사범 제자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작품 등을 두루 전시하는 이번 像미술회전은 19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개막식을 갖는다. 이번 그림 전시회의 초대장을 건넨 강용식 총장을 만나 86년 생애를 살아오기까지의 굵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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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이번에 그림전시회에 참여하시는데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나요?

▲제가 대전사범 다닐 때 대전사범학교가 당시 6년제였는데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특차입학했지요. 이동훈 선생님이 미술선생님이셨는데 저에게 미술에 재능이 있다며 미대에 진학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홀어머니에 외아들이었던 저는 서울의 미대를 진학할 형편이 못돼 충남대 건축학과로 진학했지요. 현직에서 물러난 후 취미 생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치매 예방에도 좋고, 잡념도 사라지고, 서서도 작업할 수 있고, 여러 모로 좋습니다. 이번에 이동훈 선생님의 대전사범 제자들이 모여 像미술회전을 갖는데요. 제9회를 맞는 동안 늘 현직에서 바쁘게 사느라 못 참가하다가 이번에 처음 참여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동훈 기념사업회 운영위원도 하고 있고 대전사범중학교 총동창회장도 맡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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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농촌체험마을 찬샘마을에서 태어나셨다죠?

▲예. 지금 찬샘마을이라 불리는 동구 직동에서 태어난 저는 세 살 때 부친을 여의고 서당에서 조부와 백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웠습니다.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등을 일찌감치 마스터해 동네에서 신동이 났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한복디자이너셨고 바느질을 하셔서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당시 30리 길을 걸어 동명국민학교를 다니다가 대전 은행동으로 이사 와서 서대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제가 1회 졸업생이 됐습니다.



-대전사범에서 이동훈 선생님을 만나신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서대전초등학교 졸업 후 각 학교의 수재들이 모이는 대전사범에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그당시 유명한 선생님들이 많으셨습니다. 미술은 이동훈 선생님, 음악은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어머니의 넓은 사랑’ 등 100여 곡의 찬송곡을 작곡한 구두회 선생님, 국어는 시인 한성기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이동훈 선생님은 칭찬을 많이 해주시며 제 재능을 사랑해주셨죠. 미술대학은 형편상 가지 못했지만 건축가협회 대전지회장 당시 전국건축미술대전을 대전에 유치해 전시했고, 한국건축가협회 대전충남지회장과 대한건축학회 대전충남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대한건축학회에서 회장을 역임한 인사들로 구성된 참여 이사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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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들이 무엇인지요.

▲예. 한밭대학교가 삼성동에 있었는데 제가 총장을 맡으면서 유성 덕명동으로 이전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이전하는 과정에서 7전 8기 아닌 8전 9기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정부에서 예산이 없다며 이전에 대한 승인을 안해줘서 1년 동안 계속 문교부를 찾아가 건의했습니다. 전국총장협의회에서도 한밭대학교 이전에 대한 당위성을 계속 설명하니까 그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정원식 장관이 대학 부지만 구하면 이전 승인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사려고 하니 마땅한 땅이 없어 72군데를 돌아다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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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감정 평가를 통해 한밭대 부지를 사게 됐죠. 거기가 그 당시 9만 2000평이었는데 땅이 부족해 주변 사유지도 매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나오는 돈이 일반 회계로는 터무니 없이 부족해 도저히 땅 값을 지불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김영삼 대통령을 중앙데파트 커피숍 등에서 만나 ‘대학이전특별법’을 건의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후 대학이전특별법이 생겨 130억에서 150억원의 예산이 나와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만 존재했던 한시적인 이 법 덕분에 한밭대학교가 지금의 덕명동에서 개교 92주년을 맞으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거죠. 대학 이전을 하고 보니 외국대학의 경우처럼 재정이 튼튼한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도 나오는 걸 보고 한밭대 학술문화연구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이 되었습니다. 초대 총장 겸 초대 학술문화연구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사비 5000만원을 들여 종자돈을 만들었는데 3년 전에 100억원 이상을 돌파했습니다. 뿌듯했죠. 또 대전공업대학이 13개 학과였는데 제가 한밭대 초대 총장 재임시에 12개 학과를 신설해 종합대학으로 승격시켰습니다. 한밭대학교를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는 주역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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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국 국립대학총장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고, 전국산업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제도를 만들어 대학 발전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때 한밭대 상징물을 소나무와 독수리와 백목련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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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시절은 대전충남충북지구를 모두 관할했는데 한국로타리 문화재단에 내는 기부금이 전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실적을 올렸습니다. 믿음과 진실, 봉사정신으로 살다보니 이뤄진 성과였습니다. 그 당시 저의 총재 표어가 ‘사랑과 봉사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였답니다. 로타리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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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남대학교 서명원 총장님 시절 총동문회장을 할 당시에 공과대학이 교육대학으로 편입됐는데 공과대학을 부활시키기 위한 추진위원장을 맡아 공과대학을 부활시켰습니다. 백마동상을 세우는 일도 추진했습니다. 사람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파티를 하면서 3600만원을 걷어들여 학교에 백마동상을 세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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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대학에서 총장 퇴임 후 대전시개발위원회 회장을 역임하셨지요?

▲예. 제가 학교 퇴임 후에는 대전시개발위원회 회장을 하면서 대전시 발전을 도왔습니다. 신행정수도 건설과 더불어 매장과 화장 비율이 50대 50인 상황에서 장례문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연구했지요.

2001년에는 유성관광호텔에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해야 된다'는 주제로 각 시도에서 교수 1인씩을 참여시켜 세미나를 했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충청권에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건의했습니다. 대선 공약 설명회 덕분에 노무현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80만 표를 얻고 대통령에 당선됐죠. 그 후에 신행정수도 상임추진위원회 위원장 임명장을 받았고 행복도시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행정수도 위치 선정을 어디에 하느냐를 두고 각 시도에서 서너명씩을 참석시켜 충청권 4개 지구 중 어디가 좋은지를 탐색했습니다. 지금 현 위치가 접근성이 좋다 하여 결정된 것입니다. 당초 건의는 충청권에서 행정수도를 건설하려면 금강 유역이나 대전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제1의 방안인 세종시가 채택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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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때는 16명의 각계각층 인사가 모여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를 통해 세종시 수정안과 원안에 대해 다뤘죠. 이때 전문가는 저 혼자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 원안을 고수한 사람 역시 저 혼자뿐이었고 원안 고수의 당위성을 설명하느라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MB 정부 시절 정말 많은 박해와 고통을 받았죠. 그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세종시가 탄생해서 감개무량했답니다.

한밭대 이전 시절은 너무 바빠 운동할 틈이 없었습니다. 학교 이전 전까지 다리 뻗고 잘 틈이 없었습니다. 항상 오그리고 잤죠. 행정수도 원안이 통과되기 전까지도 그랬습니다.

한밭대 이전과 행정수도 이전은 저의 업적 중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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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현재 국제효운동본부 총재로 활동 중이신데요. 이에 대해 들려주실까요?

▲평생 동안 봉사 정신으로 살다 보니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인덕이 많았지요. 효에 대한 정신을 새기기 위해 동구와 대덕구에 큰 비석을 세웠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자는 표어를 널리 전파하고, 제가 태어난 직동 찬샘마을에서는 효 교육과 인성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와서 비석을 읽고 글을 적게 하는 것 자체가 효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인성교육과 효도교육을 하면서 취미생활로 이동훈 선생님께 배웠던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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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의 신념을 소개해주실까요?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입니다. 제 로타리 총재 시절 표어이기도 했지만 저의 가치관이자 좌우명이자 인생관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밭문화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한밭문화회는 대전시문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이제 나이들이 70, 80이 되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거나 바쁘거나 회비 부담이 있거나 작고하거나 해서 못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출석률이 아주 저조했는데 이 모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제 자비를 많이 들였죠. 봉사정신으로 유사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운영이 잘 되더군요. <문화한밭> 잡지를 매년 발간해 지금 26집까지 나왔습니다. 70대, 80대가 그 정도 하면 상당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칭찬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희생과 봉사 정신 없이는 못하는 거죠. 제 리더십의 비결도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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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이 사회에 꼭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효도교육과 인성교육을 열심히 하고, 찬샘마을에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저는 정의롭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봉사 정신과 정의로움과 믿음을 갖고 살면서 덕을 쌓고, 그림 그리기와 효도교육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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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리를 다쳐보니 건강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합니다. 노인들은 감기와 낙상을 주의해야 됩니다. 감기가 심해지면 폐렴이 되고 낙상하면 고관절을 다치게 되죠. 건강이 제일입니다.

봉사정신과 정의감이 저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을 사랑합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이 분단돼 있고, 동서갈등이 너무 심하죠.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에 이용당하고 무시당하고 사는데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전만 해도 리베라 호텔과 아드리아호텔이 문을 닫고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우리 민족이 중국에게 버림받고 미국에게 천대받는 대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도록 남북이 하나되어 통일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편법과 증액화가 고질병인데 대기업과 외국인 기업 때문에 중소기업 상인들이 죽어갑니다. 대기업이 과감하게 봉사정신을 갖고 서민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희생정신을 발휘해야 경제도 살아납니다. 대기업은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서민경제가 살아날 수 있도록 각 도시는 직장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일자리를 늘려야겠죠. 그러나 결혼을 하려면 아이 교육비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납니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시키고 기술교육을 시켜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들에게는 일정의 상금을 주고 저출산 문제 대책을 담은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가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도 자성해야 됩니다. 스웨덴의 국회의원들처럼 검소하게, 겸손하게 자전거 타고 일반 서민들처럼 출근하는 모습을 배워야겠습니다.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비서만 7,8명이죠. 싸움을 하려면 링 위에 올라가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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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저더러 정의로운 선비라고 합니다.

한밭대 이전과 세종시 건립은 저의 의견이 없었으면 어려웠을뻔 했습니다.

한밭대 이전에 도움을 준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들의 실정을 잘 헤아릴줄 알았습니다.

베트남은 개혁 개방, 관광에 있어서 공감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나라의 기술력과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해 슬기롭게 하나가 되어야겠습니다.

대북관계에 있어서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입니다.

많은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정의와 봉사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학자로 남고 싶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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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식 초대 한밭대 총장(신행정수도 상임추진위원장)은 누구?

▲1934년 대전 동구 직동(현 찬샘마을) 출생. 서대전 초, 대전사범, 충남대 건축학과 56학번으로 충남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석사과정까지 충남대에서 마치고 전북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1년간 연구했고 충남대 대학원에서 명예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밭대 1호 박사이기도 하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충남대 총동창회장을 맡기도 했다. 한밭대 교수 시절 초대총장으로 8년 간 연임하면서 한밭대를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고, 삼성동에서 덕암동 유성캠퍼스로 이전시켰다. 12개 학과를 신설해 종합대학을 만들었고, 대학원을 신설하고, 학술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산학연 협동 전국 최우수대학으로 성장시켰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과 대전MBC 시청자 위원장을 역임했다. 국제효운동본부 총재, 대전지방법원 조정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세종특별자치시 명예시민, 세종시 예총 명예회장, 국무총리실 세종시 민관 합동위원, 한밭대 명예총장, 세종시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과 대전시로부터 교육부문 문화상을 받았다. 대한건축학회 참여이사로 기술상을 수상했고, 서울 63빌딩에서 자랑스런 충청인대상을 받았다.

한밭문화회 회장, 전 신행정수도건설 상임추진위원장 위원 및 추진위원, 자문위원장, 전국산업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 국제로타리 3680지구 총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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