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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번 여행은 수경이와 오고 싶었다. 아키코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 사우디 생활이 익숙하다 못해 조금 나사 풀린 8개월째 접어드는 어느 날이였다. 이슬람력으로 9월인 금식의 달, 라마단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한 낮의 온도가 평균 40도를 넘나들며 점점 무더위를 더해갔다.
건설 공사 현장의 기름 탱크가 터지면서 화상을 입은 환자가 병원으로 실려 들어 왔다. 엠블란스 몇 대가 병원 응급실 앞에 진을 치고, 병원 대기팀이 환자들을 응급실로 옮겼다. 나와 수경 간호사, 압둘라 닥터 칩도 대기팀에 뛰어들었다.
"살려줘! 살려줘!"
목소리만 들어도 화상환자 중에 한국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서 한국인 화상 환자의 손목을 잡고 핏줄을 찾았다.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화상으로 달아오른 피부에서 진물이 흘렀다. 수경 간호사는 가위로 환자의 피부에서 옷을 벗겨내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눈은 떴지만 눈물은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이었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환자는 몸부림치며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했다.
"가만있어야 해요. 몸을 움직이면 우리가 손을 못 대요."
나까지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화상환자를 진정시키고 응급조치를 끝내야 했다.
"Sorry. Here morphine injection"
압둘라 닥터 칩이 모르핀 주사를 들고 뛰어왔다.
환자들은 응급조치를 마치고 화상병동으로 옮겨졌다. 수경 간호사는 삼일 째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방에서 속옷을 챙겼다. 라만 청소부 아저씨와 오후 근무 시작 전에 병원 인근의 한국인 마트에 들렀다. 그녀가 좋아하는 해태 연양갱을 사주고 싶었다. 한국인 마트는 주로 한국 남자 직원들이 애용했다. 여자 직원들은 물건이 필요하면 남자 직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가게는 크지 않지만 선반에 한가득 물건을 재워 놓았다. 해태와 롯데 과자가 많고, 라면 종류부터 생필품까지 골고루 갖췄다.
나이 들어 보이는 한국인 아저씨가 귀한 손님이 왔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떻게 큰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한국 근로자들도 몇 명 실려 갔다면서요."
그는 물건 값을 계산하며 나에게 물었다.
"괜찮을 거예요. 지금 치료하고 있긴 한데…."
"살아야 될 건데. 이 가게에 가끔씩 오는 친구들인 것 같아서…. 젊은 친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아휴,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더 안쓰러워서."
"저희들이 잘 돌볼 게요, 염려 덕분에 다들 무사할 거에요."
나는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서둘러 나왔다.
수경 간호사는 2교대로 일을 했다. 낮 타임과 밤 타임. 나와 근무시간이 맞아 함께 통근버스로 돌아갈 때는 꼭 연양갱을 나에게 하나 주었다. 피로회복제라며….그녀는 연양갱을 나처럼 씹어 먹지 않고, 빨아 먹었다. 오래 오래 먹으면서 차창 밖을 내다봤다.
"근무는 어때?"
오히려 내가 그녀의 근무 상태를 물었다.
"한국에서 3교대 근무 할 때 보다는 낫지…."
그녀는 창 밖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머, 저 모래먼지 봐!"
멀리서 모래폭풍이 밀어 닥쳤다. 그녀는 연양갱이 모래 먼지에 덮일까 손으로 감쌌다. 뻔히 차창이 막을 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화상병동 간호실에서 수경 간호사를 찾았다. 그녀는 한국인 화상환자 병실에 붙어산다고 간호사들이 일러줬다. 간호부장이 한국인 환자들과 의사소통이 잘돼야 된다며 수경 간호사를 붙박아 놓았단다. 나는 물건을 간호실에 맡기고, 그녀가 있는 화상병실로 가보았다. 환자 붕대를 갈아주고 막 나오는 수경 간호사를 문 앞에서 마주쳤다.
"너 아직, 눈에 붓기가 안 빠졌네. 괜찮아."
"내가 무슨 걱정이고, 환자들이 걱정이제."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지금 한국인 한 명은 화상병동 중환자실에서 생사가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그나마 이 방에 있는 환자들은 상태가 호전되었다며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녀는 한국인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외국인 닥터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았을 테다. 아마 그녀가 한국말로 위로해 주고, 살 수 있다고 안심시켰을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로 그녀를 데려갔다. 햇볕을 등지고 그녀와 같이 앉았다.
"차마 환자들 놓아두고 못 가겠데. 밤에 발작도 하고, 많이 고통스러울 거야. 어제 한 분은 밤에 엄마가 보인다고, 엄마 따라간다고 소리치더라. 한국에 가서 죽을 거야, 하는데 그만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어."
그녀는 두 손을 얼굴에 모으고 훌쩍훌쩍 울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간호부장이 먼발치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중환자실 한국인 환자, 사망했어!"
수경 간호사는 일어서다 휘청했다. 나는 그녀를 붙잡으며 빨리 부축했다.
"회사 관계자들 하고 대사관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 수경 간호사는 일단 기숙사 가서 눈 좀 붙이고 내일 나와. 수고했어."
이 간호부장은 고인을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귀환시키는 게 급선무라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경찰이 찾아오면 사망 경위서를 함께 작성하고, 사망확인서, 진단서, 시신 반입증명서류를 챙겼다. 그녀는 여기 경찰이 하는 대로 놓아 두었다가는 속 터져서 못산다며 일일이 전화하고 쪼아댔다. 대사관 직원에게도 수시로 연락해서 가족 연락 사항과 시신을 운반할 항공화물 회사를 체크했다. 고인의 회사 관계자들에게 관을 준비시키고, 장례 관계자에게 시체를 방부처리 시켰다.
그녀의 일처리에 일부 직원들은 아직 사건조사 중인데 성가신 일이 생길까봐 서두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는 슬픈 일은 빨리 잊는 게 좋지 않냐며 오히려 간호부장을 응원했다. 그녀는 한국인 직원들에겐 직장 롤 모델이었다. 특히 간호사들에게는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사무실 앞을 지나칠 때면 왠지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녀가 사무실 안에 있든 없든….
한국인 화상환자를 돌보던 수경 간호사가 탈이 나버렸다. 고열이 났다.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다 차도가 없자 화상병동에 입원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1인실을 택했다. 설사와 구토 증세도 보였다. 그녀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는 소식에 나는 병실을 방문했다.
수경 간호사는 영양제를 맞으며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여기 처음 왔을 때, 너의 말이 큰 힘이 되었는데, 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그녀의 수척해진 얼굴을 살짝 만져줬다.
"사막에서는 아프면 안되겠제. 더 외로울 거야. 저기 봐, 창틀에 모래만 차곡차곡 쌓이고…."
"사람들 속에 있어도 아프면 마찬가지야. 자기만 서럽지 뭐."
둘이 이야기 하고 있는 중에 이 간호부장이 문안 차 들렸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수경 간호사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숙였다.
"혈액검사, 세균검사, 바이러스 검사는 이상 없네. 아마 피로 때문인 것 같아."
이 간호부장은 검사결과를 알려주러 왔나 싶었다.
"저도 큰 병 아닌 거 알고 있습미더. 말 맞다나 그냥 피곤했어예. 그냥…."
"그냥 이라니…, 무슨 말이야."
이 간호부장은 할 말이 있으면 꺼내보라는 제스처를 했다.
둘 사이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환자가 죽어가는 데 눈물 한 방울 안나던가예. 한국 환자가 살려달라고 밤새도록 소리 지르다 죽었는데, 한 번 고개 숙여 눈물 훔쳐 줄 수 없던가예."
"수경 간호사, 나도 속으로 울 줄 아는 사람이야! 내가 운다고 뭐가 달라져."
"알지예, 티 안 내는 분인 거. 저번에 한국 간호사들. 비밀연애사건으로 걸렸을 때, 그 애들 사정은 듣고도 묵살해 버리고, 외국 닥터들 빼내주기 바빴지예."
"그 애들 사정도 봐 준거야. 당장 돌려보내면 수치스러울까 봐."
"수치! 그 애들 강제로 도장찍었습미더. 감옥에 가둬버린다고 협박해서…."
수경 간호사의 말에 이 간호부장은 흥분했는지, 손을 벌벌 떨었다.
"수진이 너, 너 나가 있어!"
내가 참견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는 병실을 나와서 문 밖에 서 있었다. 둘은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며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그 후 사정은 모르겠지만 수경 간호사는 계속 시름시름 아팠다.
이집트 카이로
나와 아키코, 마호멧은 열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로 돌아왔다. 마호멧이 사우디로 돌아가야 했다. 아키코는 마호멧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는지, 하루만 시간 내서 기자 대피라미드를 같이 보자며 졸랐다.
마호멧은 별 관심 없다며 단 칼에 거절했다.
"아키코, 난 돌무덤을 보러 온 게 아니야. 미스 수진이 걱정돼서 온 거야. 자밀 아저씨에게 부탁할 테니 편하게 갔다 와. 난 미스 수진하고 따로 가고 싶은 데가 있어."
아키코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는 옆에서 그만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대 피라미드를 돌무덤이라고 하다니. 내 버킷리스트의 한 줄인데.'
그 뒷말에서는 온 몸에서 닭살이 돋았다.
'미스 수진이 걱정돼서 온 거야.'
아키코는 자밀 아저씨 차에 타고는 손을 흔들었다.
"수진, 마호멧 씨, 고마웠어요. 아마 일본 가서도 잊지 못할 거예요. 평생 간직할 거에요."
아키코는 눈물을 보였다. 그녀가 떠나는 걸 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수경 간호사가 사우디를 떠날 때처럼…. 사실, 이 번 여행은 수경이와 오고 싶었다. 아키코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사우디인들이 낮 시간 동안 대부분의 상점 문을 닫고 금식을 지키는 라마단 기간 동안, 수경 간호사는 병원에서 화상환자들을 돌봤다. 그녀는 시름시름 아팠고 점점 더 여위어 갔다. 하루는 빈혈로 병원 복도에서 쓰러졌다. 그녀가 오히려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더 지켜볼 수가 없어 그녀에게 휴가를 받으라고 말했다.
"나 그냥 한국에 돌아갈까? 더는 못 견디겠어. 그냥 외롭고 답답하데이."
"외국 생활이 꿈이었잖아."
"이정도 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지. 왜 선배들이 비밀연애하는 지 알겠더라. 스트레스를 못 푸는 거야."
나는 그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간호부장님은 뭐라고 해?"
"건강해야 남도 돌보지, 그러지 뭐. 차마 돌아가라는 말은 못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수경 간호사는 국제전화로 부모와 상의했다며 귀국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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