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박경리 선생의 삶과 작품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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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박경리 선생의 삶과 작품을 생각해 본다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 승인 2019-04-02 14:32
  • 신문게재 2019-04-03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호택(연세소아과 원장)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통영에 있는 박경리선생 기념관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로터리 동기총재로 지금은 진주 문화원장으로 활동하시는 김길수 총재가 초청해 주시고, 통영 토박이 김갑종 총재가 문화해설사를 자청해 주셨다.

생전에 원주 사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통영 시장이 '고향으로 돌아오시라'고 삼고초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절친인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신 뒤에는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증언해주어 만들어진 기념관이라고 한다.

대하소설 '토지'가 워낙 유명해서 나에게는 어린 시절 서희가 간도로 떠났다가 결국 조준구에게 복수하는 장면까지만 읽었기에 소설의 결말도 알지 못하면서 다 읽은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게 한 어른이었다.

그런데 소설로 유명하신 분이면서 시(詩)에서도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기념관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 걸 보니 아직도 공부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기념관에 전시된 싯귀 몇 개만 읽고서도 물 흐르듯이 풀어가는 당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재주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살고 간 삶의 궤적에 대해 얘기를 들으니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 중략-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 나가는 듯 했다.>는 구절로 이어지는 '어머니'라는 시는 평소 불효자라고 생각지 않았던 나에게도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통영에는 유난히 훌륭한 문인이 많았다. 유치진, 김춘수 등 역사적인 문인들이 통영 출신이라고 한다. 김춘수 시인은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유치진 극작가는 부친이 '유악국'을 운영하셨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삶이 고달팠다고 하는데, 이런 성장 과정이 당신들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일 것이다. 사람이 누구나 잘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잘 살아야 한다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지만 만약 박경리 선생이 '손에 물 묻히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집안에서 성장했다면 '토지'라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의 시에서 표현했듯이 여행도, 노는 것도, 쇼핑도 취미 없어 틈나면 바느질만 하셨다는 박경리 선생이 성장 과정에 다양한 취미를 접할 수 있었다면 '김약국집 딸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세상에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들 보기에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남에게 말 못할 고민 몇 가지는 갖고 산다. 얘기하지 않으니 모를 뿐이다.

그래서 탁석산 박사는 자신의 저서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인생이(인간이 아닌) 공평하다'는 평등 의식이 있다고 했다.

요즘 삶이 팍팍하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손님 없어 본 적이 없었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 마음 답답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고, 새옹지마이다. 행운이 악운과 종이 한 장 차이이고, 화(禍)와 복(福)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향하고 있고,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모습들을 지금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은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 것이라고 한다. 어려울 때 견디는 인내를 배우고 여유 있을 때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며 겸손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씩 기운 빠지고 늙어가면서도 삶이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도 이렇게 노래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김호택 삼남제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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