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61화. 백성과 유리됐다면 왕조 500년 지탱은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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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61화. 백성과 유리됐다면 왕조 500년 지탱은 가능했을까?

'징벌적' 누진제가 말이 안 되는 까닭

  • 승인 2018-08-0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늘도 폭염의 기세는 대단하다. 그래서 "덥다!"는 말이 이제는 차라리 고루할 정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더욱이 열대야까지 협공하는 날의 연속이다. 따라서 '가마솥 더위엔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조차 앞으론 '한여름 폭염엔 코끼리 뿔도 녹는다'라고 고쳐야 할 판이지 싶다.

날씨가 이처럼 너무도 덥다 보니 무얼 해도 도무지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더욱이 필자처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장인이라고 하면 그 피로감은 더욱 가중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쉬는 날에는 마치 시체처럼 널브러져 아무 것도 못 하는 즈음이다.



어제도 쉬는 날이었지만 침대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건, 아내의 '진정성 있는' 하소연 때문이었다. "남들은 이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외국으로까지 피서를 간다는데 우린 허구한 날 선풍기 바람에만 의존하면서 오늘도 폭염과 싸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끔찍하네!"

그 말을 듣고도 계속하여 잠이나 잔다는 건 우이독경(牛耳讀經)에 더하여 심지어는 직무유기의 파렴치한 남편이겠다 싶었다. "여보, 그렇다면 꿩 대신 닭이랬다고 오늘은 우리도 피서의 일환으로 영화나 보러 갈까?"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내였다. 샤워를 마친 뒤 대전복합터미널 동관에 위치한 모 영화관으로 갔다. 요즘 흥행 1위라는 <신과 함께-인과 연>을 관람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모 작가의 웹툰이라더니 내용 역시 만화스러웠다.

영화를 본 뒤 극장을 나오니 찜통더위는 여전히 극성스러웠다. 근처의 식당에서 매콤한 아귀찜에 소주를 한 병 같이 마셨다. 먹을 땐 몰랐는데 식당 밖으로 나오자 더 더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손에 든 부채는 여전히 부산했다.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새 더위를 먹었는지 다시금 기진맥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에어컨 좀 틀어!" 전기료 폭탄을 의식하여 망설이는 아내였지만 그보다 시급한 건 '우선 살고 볼 일'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말미암아 일사병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8월 3일 현재 무려 35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에어컨은 이제 국민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임계점의 가전 필수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가정용 전기료에 대한 누진제 폐지를 검토조차 않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인 "사람이 먼저다."는 구호가 무색하고 어색할 지경이다.

이런 까닭에 과거 조선왕조에서는 한여름에 백성을 위한 폭염관리를 어찌 했는가를 살펴볼 개연성이 대두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마침맞게 문화체육관광부 발행의 주간 정부기관지 <공감 464호> '[이슈를 품은 역사 이야기] 폭염과 부채 단속'에 나와 있었다.

그럼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조선시대 임금은 폭염이 계속되면 특별히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상은 형조가 관장하는 전옥서(典獄署)를 비롯한 감옥에 갇힌 죄인들이었다. 감옥은 폭염에 매우 취약해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감옥의 위생 점검을 철저히 실시하고 구류하는 인원수를 조정하기도 했다. 이어 죄가 가벼운 사람은 방면했는가 하면 국법에 따라 빙고에 보관한 얼음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는 '죄인도 백성'이라는 인본주의 사상이 그 바탕이 된 때문이었다.

조선(朝鮮)왕조는 1392년 조선 건국으로 시작되어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518년의 장구한 역사를 마감했다.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으로도 불리는 경술국치는 1910년 8월 22일에 조인되어 8월 29일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일방적인 위력에 의해 이루어진 합병조약(合倂條約)이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천하의 매국노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다. 조약의 공포는 8월 29일에 이루어져 대한제국은 그로부터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국권피탈(國權被奪), 혹은 경술국치(庚戌國恥) 등으로 호칭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표현대로 나라의 건국과 부침이 변화무쌍했다. 그래서 주나라는 그 존속의 역사가 300여 년, 한나라는 200여 년에 불과했으며 당나라는 300여 년, 원나라는 고작 160여 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705년 역사(기원전37~668)를 시작으로 백제는 678년(기원전18~660), 고려는 474년(918~1392)의 연속성을 자랑했다. 더욱이 신라는 1000년에서 고작 8년이 모자라는 992년(기원전57~935)을 존속한 국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했다.

신라보다 역사가 긴 국가는 1058년(395~1453)을 존속한 동로마(비잔틴)제국 뿐이라고 한다. 여기에선 조선만을 다루겠다.

그렇다면 조선은 대체 어떠한 신통방통한 방법이 있었기에 그처럼 무려 500년 동안이나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조선왕조는 어떤 국가보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발달한 나라였다.

조선왕조는 대간과 감찰, 그리고 암행어사를 두어서 부정한 관리를 솎아냈다. 대간은 국가권력이 독주하는 것 자체를 제어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감찰은 곳곳에 파견되어 일반관료들의 비리를 적발하였으며 그것만으로 부족하여 '암행(어사)'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감사방법을 개발하여 지방수령의 비리를 막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거론한 것처럼, 폭염이 시작되면 심지어 감옥에 갇힌 죄인들까지를 걱정했던 임금의 백성사랑이 그 바탕에 녹아있었다. 때문에 조선왕조는 50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그 기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치밀하게 마련되어 있어야만 민생을 보장할 수 있다. 더불어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책이라야만 민심의 이반을 진정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필자의 이 기획시리즈 '[만약에] 60화. 얼마나 더 쓰러져야 전기료 누진제 폐지할 텐가'에서도 거론했듯 대부분의 국민들이 걱정하는 건 폭염보다 무서운 '누진제 폭탄'이라는 전기료다.

전기요금을 일컬어 지금도 '전기세'라고 호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전기료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때문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기료 부담의 걱정이 만연하고 전기 사용량의 급증으로 단전사태까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30명이 넘는 국민들까지 일사병 등으로 사망하자 급기야 가정용 전기료에 대한 징벌적 누진제를 아예 폐지하자는 여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징벌적' 누진제가 말이 안 되는 까닭은 또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징벌(懲罰)이라 함은 '옳지 아니한 일을 하거나 죄를 지은 데 대하여 벌을 줌'을 의미한다. 날씨가 미치도록 더워서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이 과연 옳지 아니한 일을 한 것이며, 또한 죄를 지은 것인가!

뉴스에 따르면 누진제가 적용되는 바람에 일반가정에서 지난 10년 동안 부담한 전기료는 무려 15조원이나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서민한테서 전기료를 더 거둬 기업이나 상가 등의 전기료를 보전해준다는 불만까지 팽배해 있는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찌 보면 과거의 왕이나 임금보다 더욱 권한까지 막강한 제왕적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한데 그 엄청난 힘은 당연히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옳다. 만약에 임금이 백성과 유리(遊離)된 정책을 고집하였더라면 조선왕조 500년 지탱은 가능했을까?

가천대 김창섭 교수의 주장처럼 전기료 누진제는 경제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국민이 용인(容認)해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용인도 이제는 시한(時限)이 다 됐다. 전기료 누진제는 이제라도 당장에 폐기가 옳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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