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71화. 미투 운동 없었다면 '장자연 사건' 톺아보기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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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71화. 미투 운동 없었다면 '장자연 사건' 톺아보기 가능했을까

펭귄은 하늘로 날아야 한다

  • 승인 2018-10-0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평소 자연 다큐멘터리 방송을 애청한다. 바다와 연관된 프로그램이라면 더 좋다. 바다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이 펭귄이다. 펭귄(penguin)은 펭귄과의 바다새지만 하늘을 날지 못 한다. 대신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새에선 웃음과 함께 안타까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그럼 왜 펭귄은 하늘을 날지 못하고 물속을 택한 것일까? 또한 바다표범과 범고래 외에도 펭귄의 새끼를 노리는 도둑갈매기 따위의 천적에도 항상 노심초사해야만 하는가?



<펭귄 날다 - 미투에서 평등까지> (저자 송문희 / 출간 행복에너지)는 '미투(me too) 운동'은 그동안 묻혀졌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마침내 표출된 것이며, 또한 미투 운동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저술한 책이다.

주지하듯 유력 대권주자였던 모 정치인의 이른바 '성폭행 파문'으로 말미암아 정국과 전국이 동시에 들끓었다. 평소 인권과 사람다운 세상, 진보를 강조하던 그의 위선적인 행태에 지지자들까지 멘붕에 빠져버렸다.



또한 그 사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양지로 감히 나설 수 없는 사회적 약자인 성폭행 피해 여성들의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단초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했다. 마치 봇물 터지듯 일어났던 미투 운동으로 인해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문인과 연예계 인사는 물론이요, 검찰과 학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망라되어 한국 사회는 일순 블랙홀인 양 술렁거렸다.

지난 2009년 "죽어서라도 복수하겠다!"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한 배우 장자연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피해자는 있는 반면 가해자는 없는 어불성설의 이에 대한 수사 발표를 보자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억대 수표를 입금한 남성 20여 명의 내역을 경찰이 확보했다지만 그들은 이를 "김밥 값으로 줬다"고 했단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선 성매수 대상의 여성이 고작 김밥 값밖에 안 된다는 더티하고 치졸한 논리(?)를 관철한 셈이다.

미투 운동이 마치 신드롬처럼 번지자 요즘엔 만원의 시내버스를 타도 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안절부절 못하는 남성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 우리사회에서 미투 운동은 왜 이처럼 뒤늦게야 발동한 것일까?

이는 그동안 성폭력이든 성폭행 역시 가해자인 남성보다 피해자인 여성에게 다 가혹한 책임을 묻는 말도 안 되는 '그릇된 관습' 또한 큰 몫을 한 때문이다. 예컨대 용기를 내서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나 수사 과정에서 돌아오는 건 "둘이 좋아서 사귄 거 아니냐", "당신이 먼저 꼬리를 친 거 아니냐"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도돌이표 질문의 남발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 시스템에서 양산된 이런 '피해자 때리기' 문화는 성폭력의 원인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돌리고, 가해자를 무고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작동기제로 활용된다. 따라서 피해자는 폭로를 결심한 순간부터 세상의 차가운 편견과 통념들을 헤치고 나가야 할 힘든 과제까지 떠안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에 대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도 시원스레 일갈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평등 옴부즈맨'이라는 특별 행정감찰관 제도가 있다. 여기에선 여성, 남성, 장애인, 아동, 난민 등 모든 종류의 차별 행위를 감시한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이를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다. 늦었지만 미투 운동의 확산은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성폭력 문제를 혁명적으로 반전시키는 계기로까지 발전했다.

<펭귄 날다 - 미투에서 평등까지>에서는 또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생소한 단어까지 소개하고 있어 유익했다. 이는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든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한 가스라이팅은 남편이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아냐. 당신이 잘못 본 거야"라며 아내를 세뇌시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내는 결국 자신마저 믿지 못 하게 된다. 그러니까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이다.

또한 이는 정서적 폭력이며 정신적 학대의 일종이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의 덫에 빠진 피해자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인지능력과 판단력까지 믿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자존감까지 상실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가해자의 말 한마디에 따라 자책감과 죄의식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상습적으로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은 "네가 날 무시하니까 내가 화나서 널 때리는 거야. 결론적으로 날 자극하는 네가 나쁜 거야"라며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매를 맞는 아내는 "맞아, 내가 정말 잘못해서 맞는 걸 거야"라며 인정하기에까지 이른다. 참으로 무섭고 심각한 증상이 아닐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의 촉발을 알아볼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운동'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해시태그 운동( Hashtag activism)은 단순히 홍보 수단이나 가벼운 주제를 묶어 보여주는 역할에서 확대되어 정치·사회 이슈를 만들어내는 해시태그의 사회운동 역할을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2011년 세계 금융 시장의 핵심인 월 가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시작된 '#occupywallstreet(월 가를 점거하라)'가 돋보인다. 이 시위는 본래 수만 명을 목표로 했으나 9월 17일 시위 당일엔 고작 1,000여 명이 모이는 데 그쳤다고 한다.

그러나 9월 24일 이들에 대한 미국 경찰의 강제진압 사실이 알려졌고 시위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점차 참여 인원이 늘어 시위가 커졌으며, 세계 각국에서도 시위가 열리게 된다.

미국 뉴욕 시립 대학교 언론학과 교수인 제프 자비스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월가 점령 시위를 이렇게 규정했다. "해시태그는 주인도, 계급도, 규율이나 신념도 없다. 이것은 누군가가 좌절, 불평, 요구, 소원 등으로 채워 나가야 하는 빈 공간이다."

타임지는 이 시위를 아랍의 봄과 함께 '시위자'로 명명해 '2011년 타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2017년에는 해시태그 '#MeToo(나도 당했다)'를 달아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나아가 전 세계에서 여성들이 성폭력 경험을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고발하는 캠페인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6년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그런데 최순실은?'이 대표적이다. 국정 농단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자는 뜻에서 이뤄진 시도가 SNS상에서 순식간에 퍼져갔고, 결국 오프라인 운동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1월 29일엔 현직 검사인 서지현 씨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 운동을 더욱 촉발시켰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장자연 사건'의 톺아보기가 가능했을까?

결론적으로 미투 운동은 수십 년 동안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성폭력 문제(여기엔 소위 '갑질'도 포함된다고 보는 시각이다)를 혁명적으로 반전시킨 계기로도 작용했다.

따라서 이제 국가가 할 일은 미투 운동이 성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인식까지 전복시키는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인지하여 여성의 인권이 더욱 보호되고 신장되는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철옹성처럼 튼튼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다.

펭귄이 하늘 대신 물속을 택한 것은 그동안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가냘프지만 절박한 목소리를 사회가 외면하거나 듣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우리의 딸과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인간이기에 당연히 평등하고 존중받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펭귄은 이제 물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야 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인물-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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