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84. '무한불성' 없었다면 출간의 기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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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84. '무한불성' 없었다면 출간의 기쁨도 없었다

반드시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터

  • 승인 2018-12-1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신탄진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분설(粉雪)을 보이고 있었다. 올 들어 두 번째 그 존재감을 드러낸 눈은 나에게 있어선 분명 서설(瑞雪)로 보였다.

대저 서설은 상서(祥瑞)롭다 하여 '복(福)되고 길(吉)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고 추론한다. 이윽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4호선을 탄 뒤 세 번째 정류장인 충무로역에서 내렸다.

한국영화의 메카답게 유명 영화인들의 사진과 지난 시절 영화 포스터들이 충무로 역사 벽을 환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한국영화 '성난 황소'를 봤다. 따라서 나 또한 우리 영화의 중흥(中興)에 있어 조금은 밀알 역할을 했지 않았나 싶어 어깨가 뿌듯했다.

충무로역을 나와 서울특별시 중구청까지 걸어간 뒤 그 부근에서 모 출판사 편집국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오셨군요! 제가 곧 나가겠습니다." 잠시 후 만난 국장님의 뒤를 따라 모 출판사 사무실에 들어섰다.

차를 한 잔 얻어 마신 뒤 드디어 대망의 출판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어선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48년 전통까지 자랑한다는 맛난 부산 숯불 불고기와 술까지 얻어먹는 융숭한 대접까지 받았다.

늘 그렇게 을(乙)의 '처량한' 신세로 살았던 터였기에 모처럼 맞은 갑(甲)이란 위치로의 '격상'은 새삼 많은 걸 음미하게 만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어떤 로망(roman)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저서를 출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출판의 길은 실로 험산준령이다. 우선 작심하고 글을 쓰자면 한 권의 책 분량을 도량(度量)해야 한다. 또한 그에 맞추자면 최소한 몇 달은 집필에 공을 들여야 된다.

이어선 수정과 교정 작업이 요구된다. 잠시 전 고쳤던 글과 문자, 단어가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흡사 솟아난 못처럼 불쑥불쑥 돌출된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고통의 나날을 거친 다음의 난관은 출판사를 만나는 것이다.

한데 그 길은 유명작가가 아닌 경우엔 무수리가 임금의 눈에 띌 가능성처럼 매우 희박한 게 현실이다. 가뜩이나 출판계의 불황이 먹구름처럼 여전한지라 출판사에선 흥행의 가능성부터 따지고 드는 때문이다.

'이걸 책으로 내면 과연 팔릴까?'와 '요즘 독자들의 트렌드에 맞을까?' 등을 또렷한 자로 재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도무지 함흥차사였음이 이 같은 주장의 명료한 방증이다.

어쨌든 그러한 숱한 난관을 돌파하고 마침내 제2의 출간을 도모하게 되었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성공은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은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 내가 잘하는 거라곤 글을 좀 쓸 줄 안다는 것이다. 잘하는 것 중엔 사자성어 또한 많이 알고 있다. 지인 기자가 이르길 나를 일컬어 "홍 작가가 쓴 글을 보자면 유독 사자성어가 많이 등장하던데 그래서 얘긴데 홍 작가는 사자성어의 달인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음이 이의 방증이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자(漢字) 네 자(四字)로 이루어진 성어(成語)이다. 또한 '사자성어'는 어떠한 교훈이나 유래를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 알게 모르게 이 사자성어를 무시로 사용하게 된다.

예컨대 "나는 정말이지 고진감래(苦盡甘來)와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야 비로소 오늘날의 자수성가(自手成家)를 이뤘습니다"라는 성공한 인사의 강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사랑한다. 먼저 '우공이산'은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필명을 날리고 있음은 나름 '우공이산'의 힘이라고 믿는 터다.

'명불허전'은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내년에 출간하는 제2의 저서는 반드시 베스트셀러로의 등극을 목표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길 작정이다.

글자 하나하나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정성까지 담을 요량이다. 얼마 전 취재 차 '추사서화예술원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대전시 중구문화원을 찾았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을 기리며 모인 명불허전의 회원님들 작품이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모든 작품들이 소유욕을 발동시켰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구(文句)는 단연 무한불성(無汗不成)이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정말이지 이처럼 멋지고 타당한 글이 또 있을까?

출판계약에 의거하여 원고의 최종 마감은 내년 1월 말일까지다. 추사 선생의 모토였던 '무한불성'의 각오와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까지를 가득 담아 서설(瑞雪)의 느낌과 같은 진짜 멋진 책을 만들고 싶다. 끝으로, 만약에 평소 나에게 '무한불성'의 의지가 없었다면 출간의 기쁨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었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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