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바다에서 가져온 프로메테우스의 불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바다에서 가져온 프로메테우스의 불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5-11-06 16:21
  • 신문게재 2025-11-07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1106095457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로 주었다. 불은 기술과 문명을 상징하며 잘 활용하면 큰 혜택을 주지만, 반대로 잘못 활용하면 큰 재앙을 불러온다. 인간이 발견한 첫 번째 불은 화학에너지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불은 전자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이다. 그러나 20세기,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은 핵자 간 강한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핵에너지였다. 이를 인류가 처음 보게 된 것은 안타깝게도 핵폭탄이었지만, 그 에너지를 통제해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야기는 바다에서 시작됐다.

상업적 목적으로 전력을 생산한 원자로는 1957년 미국에서 운전을 시작한 시핑포트(Shipping Port) 원자로다. 하지만 이에 앞서 미해군은 릭오버 제독의 지휘하에 원자로를 잠수함에 탑재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1954년 완성된 노틸러스 잠수함은 오늘날 우리나라도 주력 원전으로 활용하는 가압수형원자로(PWR)의 시초가 되었다. 비등수형원자로, 소듐냉각원자로, 납냉각원자로 등 다양한 기술이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개발됐으나, 당시 가장 안정적이고 운용하기 좋은 원자로가 PWR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상업용 원전도 PWR 기술을 많이 채택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핵추진잠수함(핵잠수함)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원자로는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지만, 우리는 반대로 뭍에서 바다로 원자로가 들어가게 된다. 잠수함에 적용될 원자로의 설계는 쉽지 않다. 발전용 원전과 달리 매우 좁은 공간에 많은 부품이 들어가야 한다. 폭발과 같은 강한 충격도 버텨야 하며, 승조원들이 옆방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차폐도 되어야 한다. 또한, 출력 조절이 빨라야 하며, 기울어지거나 심각한 경우 뒤집히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 복잡한 문제를 1950년대 미해군은 3년 만에 해결했다. 많은 투자가 필요하겠지만, 오늘날 조선과 원자력 분야를 선도하는 우리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원자력이 잠수함에 활용된 이유는 산소가 필요 없다는 장점 때문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U보트 잠수함에 수많은 선박을 잃으며 잠수함의 전략적 가치를 체감했다. 하지만 U보트도 큰 약점이 있었다. U보트를 비롯한 디젤엔진 잠수함은 엔진 가동을 위해 수면 위로 빨대를 내밀어 공기를 흡입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배터리에 충전해 전기모터를 돌려 잠항한다. 수면 가까이 올라와 공기를 빨아들여야 하니 적에게 발각되기 쉬운 것이다. 이후 공기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해 잠항시간이 더 길어졌지만, 연료와 산소를 대체하는 물질 모두 잠수함에 탑재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핵잠수함은 애초에 추진용 산소가 필요 없다. 오히려 원자로의 막대한 열과 전기로 바닷물을 분해해 산소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잠항시간은 산소나 연료의 잔량이 아닌 승조원의 식량과 정신적 건강에 의해 제한된다. 결국 핵잠수함의 개발로 잠항시간과 작전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1958년 하와이 항구를 출발한 노틸러스호는 북극을 통과해 그린란드 옆에서 다시 나타났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큰 행사를 열어 소련과 세계에 미국의 기술적 우월함을 자랑했다. 노틸러스호가 얼음 밑을 통과할 때 세계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역사는 그 항해를 잊지 않았다.

오늘날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매력 때문에 해양 선박에 적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세계 물류는 바다의 수많은 선박 덕분에 유지되며, 선박에서 주로 사용하는 벙커씨유는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상업용 선박에 원자로를 탑재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허가를 비롯해 선결과제가 많지만, 이보다 더 유망한 기술도 없다. 최초의 핵잠수함을 건조한 릭오버 제독의 어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저절로 채택되지 않는다. 그것은 용기 있는 조바심을 가지고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다. 그 불을 다시 바다로 보낼 용기, 그 불을 품을 품격이 문명을 가를 것이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르포] "지하 파고, 흙더미 쌓인 트램 공사장"… 폭우 앞둔 대전 도심
  2. 천안법원, 공사대금 명목 대출금 유용한 60대 남성 징역 1년
  3. [2026 제4회 전국 독후감 공모·독서콘서트] 학생부 금상 이소연 양 "앞으로도 책을 애정하는 지혜로운 학생 되고파"
  4. 한기대, STEP으로 기계설비 근로자 직무능력 맞춤형 교육 제공
  5. 허태정 대전시장 "무너진 시정 회복 시급…민생 최우선"
  1. 반도체, 장관인사 이어 차관도 충청 홀대…19개부처 달랑 2명
  2. [문예공론] 이순(耳順)에 서서 예순의 문턱에서 쓰는 자서(自序)
  3. 허태정 시장 "시민의 삶의 무게를 시정의 나침반으로 삼겠다"
  4. "지우고, 살리고…" 수장 바뀐 대전 3개 자치구 전임 정책 대수술
  5. 대전 갈마동 노후 주거지 국토부 정비 지원사업 최종 선정

헤드라인 뉴스


[르포] "지하 파고, 흙더미 쌓인 트램 공사장"… 폭우 앞둔 대전 도심

[르포] "지하 파고, 흙더미 쌓인 트램 공사장"… 폭우 앞둔 대전 도심

7월 3일 금요일 오후 5시 50분, 퇴근 시간이 한창인 대전 중구 오류동 인근. 왕복 도로는 트램 12공구(유천동 버드내아파트~문창동 보문교) 공사로 차로 폭이 줄어든 상태였다. 여기에 퇴근 차량까지 몰리면서 긴 정체가 이어졌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량들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도로 위에는 경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인도에는 '버스정류장 이용 불가. 100m 앞 임시정류장을 이용해 달라'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공사장 외곽은 건설사 이름이 적힌 대형 가림막으로 둘러싸였고 가림막 사이로 들여다본 공사장 내부에는 깊게 파인 굴착..

`금산 신안사 대광전`, 국가 보물 지정 예고 쾌거
'금산 신안사 대광전', 국가 보물 지정 예고 쾌거

충남 금산군 남이면의 '금산 신안사 대광전'이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지정 예고됐다. 5일 도에 따르면 신안사 대광전은 도의 지속적인 보존·관리와 학술 조사를 통해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꾸준히 보존했으며, 이번 보물 지정 예고로 그 가치를 국가적으로도 인정받게 됐다. 신안사 대광전은 197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06년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638년 중창과 1840년 중수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2023년 연륜연대 분석 결과, 건립 시기는 1583년으로 밝혀져 16세기 불전 건축의 원..

국내 최초 농림위성 발사, 농업 혁신의 새 시대 연다
국내 최초 농림위성 발사, 농업 혁신의 새 시대 연다

국내 최초의 농림위성 발사를 앞두고 한반도 전역을 3일 주기로 관측하는 농업 정책의 과학적 전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7일 한국시간 오후 4시 10분경 미국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스페이스엑스사의 팔콘9 발사체로 농림위성을 발사한다고 6일 밝혔다. 농림위성은 한국 최초의 독자 농림특화 위성으로, 해외 위성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공공 관측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개발됐다. 우주항공청과 함께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산림청이 공동 개발에 협업했다. 이 위성은 해상도 5m, 관측폭 120km로 3일 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맛비 내리는 대전 장맛비 내리는 대전

  •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가족사랑 금요장터서 농산물 구입

  •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 ‘개문냉방 안돼요’ ‘개문냉방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