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맑은 날의 홍수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맑은 날의 홍수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 승인 2026-09-20 11:52
  • 신문게재 2026-09-21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신동철
신동철 변호사
2026년 8월 26일 아침, 히말라야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홍수가 났다. 네팔 랑탕 리룽 봉우리의 거대한 빙하와 암반이 무너져 내렸고, 얼음과 바위와 토사가 뒤섞인 격류는 시속 180킬로미터에 이르는 속도로 계곡을 쓸어내리며 국경의 마을들을 덮쳤다. 사망자는 1,400명을 넘어섰고, 수천 명의 실종자가 생겼다.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우리 국민 아홉 명도 연락이 끊겼다. 한마디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홍수 영상을 처음 본 사람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날 통과된 법안 가운데 하나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이었다.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던 바로 그날, 우리 국회는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처음으로 법률에 새겨 넣었다.

이 개정의 출발점에는 한 소송이 있었다. 2020년 3월, 청소년들이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보다 앞선 2018년에 시작된 청소년기후행동의 아이들이었고, 뒤이어 시민들이 합류했다. 이 소송을 이끈 변호사는 이를 '우리 아들, 딸들이 엄마, 아빠 모두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소송'이라고 칭했다.

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병합된 네 사건에 대하여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의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법이 2030년의 감축 목표만 정해 놓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목표는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저버려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위험상황'이라는 헌법적 사실로 인정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의 헌법적 의무로 선언한,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승소 판결이었다.

헌재가 정한 입법개선 시한은 2026년 2월 28일이었다. 국회는 그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문제의 조항은 효력을 잃은 채 반년의 입법 공백이 이어졌다. 시민 공론조사에서 참여자의 약 78퍼센트가 감축을 앞당기는 조기감축 경로를 택했지만, 여야의 공방 끝에 8월 26일 통과된 개정법은 2035년 53~61퍼센트 감축을 비롯한 범위형 목표를 두면서도 그 하한을 완만한 선형 경로에 묶었다. 감축의 부담을 미래로 미루지 말라던 헌재 결정의 취지에 비추어 아쉬움이 남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도 2050년 탄소중립까지의 중간 이정표가 처음으로 법률에 새겨졌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탄소중립이란 거창한 말이 아니다. 내뿜는 온실가스와 거두어들이는 온실가스의 양을 맞추어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것, 말하자면 지구와의 이산화탄소 수지타산을 맞추자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리수거와 텀블러가 먼저 떠오르지만, 전체 배출량에서 폐기물 부문이 차지하는 몫은 2퍼센트 남짓에 불과하다. 배출의 3분의 2는 전력과 산업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실천도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일상이다. 안 쓰는 플러그를 뽑고, 냉난방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물건을 사기 전에 꼭 필요한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일. 다른 하나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역할이다. 전력과 산업의 배출을 줄이는 것은 결국 법과 제도의 문제이므로 감축 목표가 제대로 세워지고 이행되는지 지켜보고, 공론의 자리에 참여하고, 정책에 따라 투표로 답하는 일이다. 앞의 기후소송이 증명했듯, 평범한 시민들의 서명 한 줄이 헌법재판소를 움직이고 국회를 움직였다.

'엄마, 아빠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구해 달라'고 호소하는 아이들에게 이제 어른들이 답해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 마주할 지구의 온도는, 지금 우리가 켜고 끄는 스위치와 우리가 던지는 한 표에 달려 있다. 맑은 날에도 홍수가 날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한 법을 고치는 일도, 오늘의 작은 불편을 견디는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무너지던 날 태어난 그 법이 미완의 숙제로 남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의 호소에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답일 것이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신계룡~신천안 345kV 경과지 결정… '주민 반발' 속 향후 진통 예고
  2. 트램부터 대통령 공약까지… 대전시 11월 현안추진 분수령
  3. 홍성군민 700명 '송전탑 백지화 촉구' 총궐기대회… "주민 없는 입지선정위는 요식행위"
  4. 대전 삼성동 정비사업 속도 양극화… 일부 구역은 사실상 사업 멈춰
  5. '지각·중도 퇴장·불참' 어수선했던 충남도 국회의원 초청 설명회
  1. 대전 '스토킹 신고' 전 연인 살해 피의자 신상 공개 결정
  2. “행정수도 완성 넘어 자족도시로” 세종형 성장동력 확보 과제 부상
  3. “평생 꽃 팔며 살았는데”...갈 곳 잃을 위기 놓인 꽃마을 상인들
  4. 중도일보 중부권 언론사 최초 50억 규모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 주목
  5. 허태정 "공공기관 유치 위해 시청사도 내줄 수 있다"… 대전 이전 희망기관도 잇따라

헤드라인 뉴스


`지각·중도 퇴장·불참` 어수선했던 충남도 국회의원 초청 설명회

'지각·중도 퇴장·불참' 어수선했던 충남도 국회의원 초청 설명회

3일 충남도가 충남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마련한 정책설명회. 2027년 정부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충남의 주요사업과 충남 발전을 위한 현안사업을 설명하고 국회의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설명회 장소인 서울 여의도 캔싱턴호텔에 오전 10시 제시간에 도착한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정문(천안시병)·황명선(논산·계룡·금산) 의원 2명. 뒤를 이어 5분 늦게 같은 당 문진석(천안시갑)·전은수(아산시을) 의원이 도착했고, 3분 뒤엔 국민의힘 성일종(서산·태안) 의원이 착석했다. 10시 10분이 지나면서 황명선 의원이 먼저 시작하자고 제..

허태정 "공공기관 유치 위해 시청사도 내줄 수 있다"… 대전 이전 희망기관도 잇따라
허태정 "공공기관 유치 위해 시청사도 내줄 수 있다"… 대전 이전 희망기관도 잇따라

허태정 대전시장이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대전시청사까지 내어줄 수 있다며 강력한 유치 의지를 드러냈다. 수도권 공공기관들의 대전 이전 희망 움직임도 잇따르는 가운데 대전시는 전국적인 교통 접근성과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앞세워 유치 경쟁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3일 대전시에 따르면 허 시장은 이날 11월 확대간부회의에서 공공기관 유치를 위해서라면 시청사 제공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공기관 유치전에 뛰어든 만큼 기존의 유치..

세종 중앙행정기관 2차 이전 절차 본격화…정부 공청회 개최
세종 중앙행정기관 2차 이전 절차 본격화…정부 공청회 개최

중앙행정기관의 2차 세종 이전이 공청회를 시작으로 법정 계획 반영을 위한 절차에 돌입하며 본격화됐다. 공청회에선 성공적인 이전을 위해 국정 운영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통합 관리체계를 마련하고, 이전 기관 종사자의 이주 대책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행정안전부는 3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대강당에서 2차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변경(안)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발표한 44개 중앙행정기관 2차 이전 계획을 법정 계획에 반영하기 위한 절차로, 이후 관계기관 협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관보에 고시되면 효력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국가철도공단 사랑의 연탄 나눔 국가철도공단 사랑의 연탄 나눔

  • 미래 전장 누빌 다양한 무인차량 미래 전장 누빌 다양한 무인차량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