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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식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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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만한 가치라면 엽전 제작비도 못 건지는 현상인 역(逆)시뇨리지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다. 액면가에서 제조와 유통 비용을 뺀 돈, 그러니까 150원을 들여 500원 동전을 만들면 350원의 시뇨리지 효과가 생긴다. 퇴출 후보 1순위인 10원짜리는 개량을 거치고도 20~30원의 비용이 든다. 50원, 100원짜리도 배보다 배꼽이 큰 역시뇨리지다. 이래저래 동전 제조와 유지에 연간 500억~600억원이 든다.
그나마 시중에 풀린 동전 100개에서 25개가 은행에 돌아올까 말까다. 물물교환의 단점을 극복한 발명품인 돈이 금융과 IT의 경계 허물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동전 없는 사회'가 탄력을 받아 100원, 500원으로 확대되면 본의 아니게 물가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 전자지갑 충전이나 소액결제망 입금 방식 등으로 거스름돈은 대신하겠지만 다른 문제도 따른다. 1982년 500원짜리 동전 발행으로 지폐 최소단위가 1000원으로 바뀌어 세뱃돈이 치솟았던 일을 생각해보자. 하잘것없는 동전이 물가 안정의 커튼 구실을 한다.
있어도 안 쓰는 것은 물론 문제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이 5월을 범국민 동전 교환운동의 달로 정했다. 돈은 흘러야 한다. 풍부함, 부를 뜻하는 애플루언스(affluence)는 라틴어 '흐르다(affluere)'에서 유래했고 통화의 다른 말인 커런시(currency) 역시 '흐름'을 내포한다. 원활히 돌아야 돈이다. 동전 쓰기를 꺼리는 아주 작은 이유에는 체면문화의 잔재도 없지 않다. 고도의 의미가 농축된 돈이 위세재(Prestige goods)가 되면서 5만원권쯤은 세고 있어야 위신이 선다고 믿는 것이다. 세계 갑부 워렌 버핏이 우리 돈 12원도 안 되는 1센트를 주워 화제가 된 미국에서도 지금 1센트 코인 생산 중단 논란이 일고 있다.
10원, 100원처럼 1센트를 사라져야 할 화폐로 지목한 것이다. 동전 없는 사회가 실현된다면 틈틈이 유용하게 꺼내 쓰는 동전 지갑 속의 동전<사진>도 추억 속에 머물 것 같다. 신용카드와 IT 기반의 e머니나 e캐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사용과 화폐 발행은 반비례한다. 그걸 알면서도 동전에 대한 비경제적인 로망을 보태자면 1000원, 5000원짜리 동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트렌드 변화에 역행하더라도 끝돈은 동전으로 치르고 싶다. '어림 반 푼어치' 없는 희망사항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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