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모습에 대하여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중겸]모습에 대하여

[월요아침]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02 20면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스리랑카의 어엿한 수도 콜롬보. 맨발의 어린이뿐이어서 놀랐다. 남아프리카 번듯한 영국식 도시 더반. 길가 몸 파는 소녀의 가냘픔이 안쓰러웠다. 루마니아의 고풍스런 수도 부쿠레슈티. 손 내미는 소년의 눈망울을 외면하지 못했다.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세월이 흘러도 곁을 떠나지 않는다. 문득문득 기억창고에서 삐져나온다. 뭔가 뜨거운 뭉치가 가슴을 점령한다. 당시 왜 그리 무심하기만 했는가. 지갑 다 털 걸 하는 회한의 밀물. 물결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모습이다. 그들 부모와 형제자매가 살아가는 현장. 쓰레기더미다. 먹을 음식물 찌꺼기를 담는다. 팔 물건을 캔다. 이렇게 하루 1달러 미만 벌이로 사는 지구인이 13억. 2달러 미만은 30억 명이다. 아이들과 겹쳐지는 모습이다.

우린들 그런 시절 없었나. 공원으로 변모한 한강변 난지도.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청소차가 짐을 푼다. 개미떼처럼 몰려든다. 먹을거리와 돈 될 재활용품을 찾는다. 집은 근처 움막. 사라진 모습이다. 장터 꿀꿀이죽. 가마솥 걸어놓고 미군부대 잔반을 끓였다. 한 그릇에 오십 원이었던가. 소시지와 햄이 들어있으면 횡재. 지금은 존슨탕이나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생존 중이다. 긴 그림자 지닌 모습이다.

지구의 가난은 현재진행형. 한반도 북부에도 존재한다. 남쪽은 과거지사. 과연 그런가. 기초생활수급자 137만. 그 위 236만. 장애인 213만. 정부공식통계는 최소화법칙이 지배한다. 실제 어려운 계층은 7백만 명을 웃돌 터. 함께 사는 이웃모습이다.

실업자가 350만 명을 넘어섰다. 늘어날 뿐 줄 리야 없다. 아침에 아무 일 없는 듯 집 나선다. 갈 곳 없다. 공원체류족과 거리배회족 증가. 해가 지기 시작한다. 머뭇거리며 집으로 발길 돌린다. 뒤에서 얼핏 본 어깨. 축 쳐졌다. 과자 한 봉지 쥐지 못한 빈손. 언제 해고사실을 이실직고할까. 뭐라 직장 잃은 사연을 얘기할까 망설임에 젖었다. 가족이 기다리는 내 왕국으로 가는 아버지 모습이다.

전두환 정권 출범직후다. 공무원을 대거숙청. 다이얼 돌리는 역을 하게 됐다. 연결되면 차관이 통보. 업무지시로만 알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저승사자 하수인임을 직감. 본능이었다. 떨리기 시작했다. 번호구멍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동네에 산 직원이 있었다. 같이 출근했다. 이튿날이었다. 저 만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손가방 든 채 숨듯이 서 있었다. 한 달 가량 계속됐다. 어떤 이유건 목 자르기는 대죄임을 절감했다. 다가갔다. 잔상이 남아 있다. 골목으로 피하던 모습이다.

개인사는 사람수효만큼 다양하다. 볕드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순풍에 순항했다고 호언장담하는 일수는 얼마일까. 비바람과 눈보라 속 비틀거림이 더 많으리라. 역풍으로 뒷걸음치기 일쑤이리라. 그러면서도 타자의 고난을 외면한다. 일상의 내 모습이다.

잘 나간다고 앞쪽만 신경 쓴다. 고치고 화장한다. 그러다가 만인 공통의 붉은 신호등에 걸린다. 그제야 무관심했던 뒤쪽을 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끝내 기름기 번들거리는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진다. 욕심 채우기로 일관한 나날의 모습이다.

어깨에 힘들어가 있을 때 원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주머니에 명함이 있을 때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도 생로병사. 권력과 지위와 명예와 재산도 흥망성쇠. 왜 생(生)이 먼저고 사(死)가 나중인가. 어이하여 흥(興)이 앞에 오고 망(亡)이 뒤에 오는가. 쥐고 있을 때 잘 하는 뜻 아니겠는가.

요즘 거개가 어렵다. 임금 동결과 삭감에 쪼들린다. 아껴서 모으기는커녕 빚 얻는다. 일터 놓치지 않으려고 바동바동. 불안안고 산다. 그래서 나누고 도와야 하지 않을까. 인생일지에 이렇게 쓰는 인생은 어떨까. 앞모습은 온후했노라. 뒷모습은 후덕했노라고. 앞뒤 같은 모습이 좋은 모습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합강동 스마트시티, 'L1블록 643세대' 본격 공급
  2. 과기정통부 '출연연 정책방향' 발표… 과기계 "기대와 우려 동시에"
  3. 장철민 "새 충청은 젊은 리더십 필요"… 대전·충남 첫 통합단체장 도전 의지↑
  4. 최저임금 인상에 급여 줄이려 휴게 시간 확대… 경비노동자들 방지 대책 촉구
  5. 한남대 이진아 교수 연구팀, 세계 저명학술지에 논문 게재
  1. 김태흠 충남지사 "대통령 통합 의지 적극 환영"
  2. 학생들의 헌옷 판매 수익 취약계층 장학금으로…충남대 백마봉사단 눈길
  3. 민주평통 동구협의회,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논의
  4.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 착수… '수산물 유통 중심으로'
  5. 지역대 육성 위해 라이즈 사업에 팔 걷어부친 대전시…전국 최초 조례 제정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추진으로 급물살을 탄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단체장 출마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와 함께 충청의 미래를 위해 역할분담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19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가진 오정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선정 관련 브리핑에서 대전충남행정통합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통합시장을 누가 하고 안 하고는 작은 문제이고, 통합은 유불리를 떠나 충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출마는) 누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도 상의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와는 (이..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