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비]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황제의 목숨을 노렸다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가비]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황제의 목숨을 노렸다

커피맛에 비친 조선의 비극적 운명… 연기ㆍ의상ㆍ세트ㆍ소품 볼거리 '풍성' 감독:장윤현 출연:김소연, 주진모, 박희순, 유선

  • 승인 2012-03-15 14:24
  • 신문게재 2012-03-16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러시아에서 커피와 금괴를 훔치다 붙잡혀 총살당할 위기를 맞게 된 따냐와 일리치. 이들을 구한 사다코는 고종황제를 살해하기 위한 일명 '가비작전'을 강요한다.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는 커피를 들고 고종에게 접근한다.

프랑스의 외교관 탈레랑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했다. 커피에 대한 소묘다. 조선말 비운의 군주 고종황제도 한 말씀 하셨다. “나는 가비(커피의 고어)의 쓴 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엇을 먹어도 쓴 맛이 났다. 헌데 가비의 쓴 맛은 오히려 달게만 느껴지는구나.” 영화 '가비'에서다.

고종의 대사에선 회한이 묻어난다. 왕후를 비명에 잃고 나라는 벼랑에 놓였는데, 자신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야 하는 처지이니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가비'는 아관파천 시기를 배경으로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와 그녀를 사랑하는 이중간첩 일리치가 고종을 암살하려는 일본 사다코의 모략이 이용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볼거리가 풍성하다. 러시아 르네상스 문물을 재현한 앤티크(Antique)한 세트는 꽤 인상적이다. 꼼꼼히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세트들은 그 자체로 스토리다. 서양식으로 꾸며진 세트엔 조선인이, 지극히 한국적인 조선 왕궁엔 서양인이 등장하는데,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당시의 혼돈을 표현한 것. 이색적인 커피 소품들은 극장 안을 커피향으로 채워 놓는다.

조선 러시아 일본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의상도 눈길을 끈다. 따냐 역의 김소연은 러시아 시절엔 붉은 머리에 보헤미안 스타일로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을, 조선에선 단정한 블라우스와 하이웨스트 스커트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황군제복부터 세련된 정장, 패도라 등으로 치장한 일리치 역의 주진모는 당장 런웨이에 세워도 어울릴 정도다. 조국을 버리고 일본인이 된 사다코 역시 화려한 기모노 등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무엇보다 극을 이끌어가는 4명 배우들의 연기가 볼거리다. 주진모의 깎은 듯한 얼굴선과 강렬한 눈빛은 '순정 마초'와 잘 어울리고, 박희순은 카리스마와 절제를 적절한 수준에서 오가며 강인한 고종을 그려낸다. 모략의 설계자인 사다코 유선의 연기도 안정적이지만, 단연 압권은 김소연이다.

김소연은 따냐의 복합적인 감정을 손에 쥘 듯 표현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고종의 진면목을 발견하며, 조국에 대한 반감을 버리고 점점 애국심을 품게 되는 과정을 과하지 않은 연기로 담아낸다. 일리치를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빛, 증오에서 연민과 존경으로 변해가는 고종을 향한 눈빛은, 19세기 말 조선의 비극적인 운명에 주목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난다.

허나 구슬도 꿰어야 보배. 화려한 볼거리들은 극의 진행에 녹아들지 못하고 따로따로 겉돈다. 너무나 많은 볼거리,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떠안고는 설명은 해주지 않는 드라마의 불친절함 탓에 그냥 눈만 즐겁다. 정서적 울림도, 재미도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하락세다.

따냐 일리치 사다코 모두 조국 조선을 버리고 다른 나라 사람이 된 이방인들이다. 조국에 대한 이들의 애증, 또 일리치의 일편단심 따냐와 따냐가 향하는 고종의 삼각관계, 혹은 사다코까지 포함해 4각 관계를 밀도 있게 그려내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아쉬움이다. '접속'과 '텔 미 썸딩'을 만들었던 장윤현 감독이기에 더 아쉽다. 그림을 제대로 보기엔 병풍이 너무 화려했다.

안순택 기자 sootak@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4.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5.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1.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2. 박정현 "기존 특별법, 죽도 밥도 안돼"… 여권 주도 '충청통합' 추진 의지
  3.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4. [부고]김창세 세무사 빙모상
  5. 대청호 조류경보 발생 139일만에 전부 해제

헤드라인 뉴스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의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간) 통합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실상 전폭 지원사격을 약속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