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올 한 올, 옷감 짓던 거리… 한 폭의 추억을 수놓고

  • 문화
  • 여행/축제

한 올 한 올, 옷감 짓던 거리… 한 폭의 추억을 수놓고

[주말여행] 공주 유구 벽화마을 국내 섬유 70% 생산하며 색동직물로 유명한 마을…섬유역사 담은 벽화, 모자이크 타일 작품 등 예술로 새 옷 입어

  • 승인 2017-07-13 18:45
  • 신문게재 2017-07-14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길가 편의점 건물 벽에 미인이 그려져 있다. 3층 건물 높이만큼 키가 큰 미인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은은한 미소를 띤 채다. 유구벽화마을을 찾아 시장을 돌다 발견한 이 벽화는 이정표처럼 반가웠다. 그런데 그녀는 왜 한복을 입었을까.

공주시 유구읍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섬유의 70%를 생산하는 지역이다. 무늬를 넣어 짠 천을 말하는 '자카드' 직물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 만든 유구천이 구한말 고종의 용포 어의를 만드는데 사용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으로 피난 내려온 북한의 직조업자들이 목제직기로 가정에서 우모직을 생산한 것이 이 마을 섬유산업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1950년대에 방적기계가 들어오면서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전성기엔 공장 250여곳, 직기 3000여대에서 직공 3000명이 근무하는 직물 생산지로 명성을 떨쳤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동직물도 이곳에서만 생산됐다고 한다.

아무리 견고하게 짜인 천이라 해도 세월의 칼날은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1990년대 중국에서 들어오는 저렴한 직물에 밀리면서 위축되기 시작한 유구 섬유는 IMF를 맞으며 현재 50곳이 못 되는 공장만 남았다.

빛 바랜 예전의 명성을 되살릴 희망은 예술이었다. 2014년 이강준 작가 등 10명이 참여한 '유구 문화예술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골목은 새 옷을 입기 시작한다. 철커덕 철커덕,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공장 벽을 따라 걸으면 벽화를 보는 것만으로 섬유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만든 '섬유역사의 거리'가 펼쳐진다. 공장에서 만들었을 것 같은 꽃무늬가 그려진 분홍색 벽이 있는가 하면 베를 짜는 여성의 모습, 지역의 옛 모습을 담은 수채화 같은 그림이 가슴 한 구석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실을 만지는 할머니의 얼굴은 그 깊은 주름과 온화한 표정이 보는 이를 탄복하게 한다.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사슴이나 용포를 입고 있는 왕, 소녀가 앉아있는 벤치 등 그림이 아닌 작품도 독특하다. 비단 위에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벽 위에 타일을 하나하나 얹어 만들었을 이 작품들에는 '비단 위에 수를 놓아 모든 것이 꽉 차고 만족스럽다'는 뜻에서 금수만당로라고 이름 지어진 벽화거리의 의미가 담겼다. 페인트로 그린 작품보다 오래 가는 것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새 한 마리가 얹어진 아트벤치가 보였다. 유구에는 임진왜란 당시 황금비둘기 세 마리가 나타나 마을이 안정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마을 이름 유구에도 비둘기 구(鳩)자가 쓰일만큼 비둘기의 존재가 이곳에서는 특별하기 때문에 황금비둘기 모양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작품 옆에 붙어있다. 이 곳의 이름이 '아득히 오래되었다'는 뜻의 유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 옛 영광을 간직한 채 예술을 입고 살아갈 이 마을의 빛남을 그려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2. 가을 제철 수산물 가격 들썩… 꽃게·전어 두 배 급등
  3. 온통대전, 카드 없이 QR코드로 결제한다… 정부 지원율 변화도 관심
  4. 스토킹 피해 신고했던 전 연인 살해 40대 구속
  5. 대전시의회, 이효식 대전도시공사 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1. 대전혁신센터, 스케일업 투자지원 민간운영사 업무협약
  2.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3. '양성자 암치료센터' 건립 나선 세종, 중부권 첨단의료 거점 노린다
  4. '충효예 정신' 충남 교육현장에 본격… ‘사랑의 일기’는 축소 운영
  5. 박수현 충남지사, 'UNDP AI 허브' 충남 유치 사활

헤드라인 뉴스


`세종 행정수도` 11월 중대 기로…법안 심사에 예산 확보전까지

'세종 행정수도' 11월 중대 기로…법안 심사에 예산 확보전까지

세종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입법과 예산 확보 절차가 맞물리면서 중대 분수령을 맞이했다. 11월 국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 심사와 중앙행정기관 추가 이전을 뒷받침할 재원 확보가 시험대에 함께 오르면서다. 여기에 세종시 재정 문제와 얽힌 핵심 법안까지 일몰을 앞두고 마지노선에 봉착하면서 정기국회 내 현안들을 매듭지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내달부터는 내년도 본예산에 대한 상임위원회별 예비심사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당장 이번 예산 심사에선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2차 중앙행정기관 세종 이전 계획안을 다루게..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AI 혁신의 새 장을 열다`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AI 혁신의 새 장을 열다'

대전의 미래 산업과 대한민국 소프트웨어(SW)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거점인 '대전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28일 14시 대전시 서구 월평동서 공식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교육 과정은 AI 활용 인재를 양성하는 네이티브 과정(5개월)과 인공지능 올인원 과정(18개월)으로 운영된다. 대전시와 진흥원은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 개소를 시작으로 지역 AI 및 소프트웨어(SW) 생태계를 이끌어갈 핵심 거점으로 이끄는 한편, 대전시는 대전이노베이션아카데미가 대한민국 ICT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고, 지역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창..

[르포] 합친 지 27년, 도시 이름까지 바꿨다… 단바사사야마의 생존법
[르포] 합친 지 27년, 도시 이름까지 바꿨다… 단바사사야마의 생존법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할 해법으로 추진된 충남·대전 행정통합이 첫 출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출발선에 섰다. 하나의 경제·생활권을 구축하고 지역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주민 동의와 재정·권한 이양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해졌다.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는 것만으로 통합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행정통합을 경험한 일본과 대만 역시 행정 효율화와 재정 기반 강화라는 기대 속에 주민 갈등과 재정 부담, 지역 간 불균형이라는 숙제를 마주했다. 본보는 일본의 헤이세이 대합병과 오사카 행정체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

  •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

  •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