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누군가의 심연을 건너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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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누군가의 심연을 건너간다는 것은

  • 승인 2017-09-07 14:13
  • 신문게재 2017-09-08 9면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 문학동네 / 2015년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여백 위 활자들에 마음이 동요한다. 문학의 존재 이유가 오로지 심미적 감동에 있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마음을 사로잡으며 글은 시작된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은 소설 곳곳에서 마음을 일렁이고 멈칫하게 한다. 그리고 심장이 덜컹한다. 마음을 흔든 그 문장은 달콤한 사랑 고백이 아니라, 헤어진 뒤로 단 하루도 잊은 적 없었던 애절한 모정이다.

소설은 생후 6개월 만에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카밀라 포트만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총 3부의 구성으로, 1인칭과 3인칭으로 시점의 변화를 일으키며 글이 진행된다. 1부는 ‘카밀라’, 2부는 카밀라의 친모 ‘지은’, 3부는 카밀라와 지은을 둘러싼 ‘우리’가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카밀라의 출생과 관계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자신의 진짜 집과 엄마를 찾기 위해 고향 한국 진남에 온 카밀라, 진남여고 재학 중 열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카밀라를 낳고 바다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정지은, 지은과 부적절한 사제관계라는 소문으로 얽혔던 과거 진남여고 교사 최성식, 최성식의 아내이자 현재 진남여고의 교장으로 지은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하며 카밀라를 남매 사이의 부정한 아이로 만든 신혜숙, 조선소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 중 투신자살한 지은의 아버지, 지은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지은을 미워하며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던 김미옥, 조선소 사장의 아들로 진남에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역사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진남 이야기 박물관바람의 말 아카이브를 개관한 정희재 등의 이야기다. 여러 가지 단서를 종합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처럼,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각각의 조각이 되어 카밀라의 출생에 관한 퍼즐을 맞추게 한다.

카밀라의 친모 지은의 존재는 일찍 드러난다. 반면, 친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은 소설 끝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드는 한 요소가 되는데,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끝이 난다. 막상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카밀라의 친아버지가 누구이고 그녀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의 문제는 실상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진부한 드라마는 아니다.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는 심연이 있다. 심연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타인의 본심에 닿을 수 없게 한다. 날개만이 심연을 건너가게 하지만, 날개는 꿈이요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으니 결국 타인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다. 카밀라는 처음에 자신의 출생과정에 대해 과거 친모 지은을 둘러싼 진남 사람들의 말에 의지해 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과거 지은의 절망과 외로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녀를 오해하고 오히려 비난했다. 오해로 얼룩진 증언에 진실은 감추어졌다.

하지만 작품 속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짙은 어둠 속 숨어있는 작은 빛, 희망을 느끼게 한다. 카밀라는 지은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 한 사람은, 나 자신은 그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고. 참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희망은 날개를 달고 심연을 건너간다. 지은은 카밀라 곧 희재라는 행복한 날개를 품은 사람이었다.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진실은 아름답다.

누군가의 심연을 건너간다는 것은, 본심에 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지 모른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심연을 건너 가 닿고 싶기에, 하지만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기에,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결국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음미해야 할 문장들이, 따라오는 생각들이, 쉬 가시지 않는 여운들이 긴 호흡으로 소설을 읽어나가게 한다.

작가는 부디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하고 말한다. 우리의 삶도 소설 같다. 부디 삶을 지어내는 무수한 이들의 심연에 닿기를, 신비를 체험할 수 있기를.

조영미(용운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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