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내자녀 내고장 위해 공설운동장 꿈…성금으로 이뤄

[검색에 없는 대전충남史] 내자녀 내고장 위해 공설운동장 꿈…성금으로 이뤄

4. 성금으로 종합공설운동장을 세우다
1958년 추진위 구성해 3천만환 모금 이뤄
육상경기장부터 착공해 '시작이 반' 북돋아
막대한 규모로 충남도 재정사업 전환 요구도
충무체육관까지 주민들 아낌 없는 성원 보내

  • 승인 2021-04-28 16:20
  • 수정 2021-05-15 08:35
  • 신문게재 2021-04-29 10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보문산에서 본 한밭종합운동장_1973--_0
1970년대 대전공설운동장 모습. 종합운동장과 야구장, 충무체육관이 보인다. (사진=대전시 제공)
한국전쟁에서 휴전을 맞은 지 5년 차 충남과 대전은 종합운동장을 갖는 꿈을 꾼다.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육상트랙과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흙으로 쌓은 관중석 그리고 야구와 배구, 농구, 수영까지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종합 스포츠타운 말이다. 대전공설운동장 조성 당시 보도를 보면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을 반복적으로 인용했다. 도민들이 푼푼이 모은 성금을 가지고 공설종합운동장에 착공을 보아 감개무량하면서도 완공 시점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감이 녹아 있다.

▲내자녀 내고장을 위한 운동장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 시계침을 거꾸로 돌려 1959년 7월에 맞춰본다. 중도일보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박고 흙을 쌓아 둥그렇게 원형을 띤 보문산 아래 들판 사진을 게재했다. 공설종합운동장에 주경기장이자 육상트랙으로 지금의 한밭종합운동장 위치다. 기사에서 "작년 11월 일성토건에 의해 착수된 대전종합공설운동장 공사는 초창기에는 워낙이나 광활한 면적을 가져서 그런지 일한 표적이 없었으나 광복절을 앞둔 요즘 광경은 놀랠만큼 진척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1958년 공설운동장설치추진위원회(위원장 서병균)를 꾸려 운동장 조성사업을 시작한 충남도민과 대전시민은 그동안 모은 성금으로 먼저 육상경기장을 착공했고, 1959년 8월 15일 제18회 광복절 행사를 미완의 공설운동장에서 거행했다. 내 자녀, 내 고장을 위한 일이라며 대전시민과 충남도민들이 성금을 모아 1959년 기준 3000만 환을 마련했고, 1957년 10월 제38회 전국체전이 부산에서 열린 것도 자극제가 됐다. 중도일보는 1959년 8월 기사에서 "내 자녀, 내 고장을 위해 최대의 성원"이라며 성금 모금을 촉구했다. 또 1957년 부산 전국체전에 충남도체육회는 24개 종목에 11개 종목에서만 선수를 파견했는데 체육계에 내분 문제가 있었다. 중도일보 1957년 11월 '충남체육계는 건실한가'라는 최만술 씨의 기고문에서 "부산은 8~9개월만에 공설운동장을 마련했는데 대전시는 수년 전부터 기금을 모금한다 부지를 마련한다 야단법석만 떨었지 단 하나의 경기장도 마련하지 못했다"라고 질타하고 "공설운동장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고, 체육계는 인화단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도민 성금으로 운동장 7곳 단지화

당시 공설종합운동장설치추진위원회는 육상경기장뿐만 아니라 여러 구기 종목의 전용 경기장을 계획했는데 지금 한밭종합운동장의 위치와 규모가 일치한다.
1959년08월 서두르는 공설운동장 수정
1959년 8월 대전공설종합운동장 조성현장을 보도한 중도일보 기사(사진 왼쪽)와 같은 해 7월 추진위원회 회의 보도.
1959년 중도일보는 '공사 서두르는 공설운동장' 기사를 통해 운동장 배치도를 신문에 게재했다. "선행돼야 할 것이 자금 문제인데, 아무리 짜고 털고 해도 말과 계획과는 비틀어지는 것 같다"라며 당시 대전시의사당에서 개최된 긴급 회의 소식을 타전했다. 게재한 운동장 배치도에는 주경기장(육상코트), 야구장, 정구장, 보조정구장, 배구장, 농구장, 수영장의 7개 경기장과 본부건물, 정문 매표소가 표시돼 있다. 이때 추산한 운동장 소요 면적은 18만8000㎡로 현재 한밭종합운동장 전체 면적(16만㎡)보다 오히려 넓었다. 1959년 기준 도민 회비 정수액은 3000만 환으로 육상경기장 조성에만 1억7000만 환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고, 나머지 계획한 모든 시설을 조성하는 데에는 5~6억 환이 필요하다고 기사에 담겼다. 1960년 10월 보도에서는 육상경기장(주경기장)을 완성하고 보니 5000만 환의 채무를 지게 됐고, 미완성 야구장을 짓는데 8000만 환이 더 소요될 것을 예상하며서 "추진위를 해체하고 대전시 혹은 충남도 당국이 앞으로 일체의 추진사업을 직접 해야 한다는 여론"이라고 전했다.

▲첫 전국체전 유치 체육에 기틀

충남은 1960년 제41회 전국체전을 유치했고, 대전공설운동장이 주요 무대가 됐다. 1960년 10월 중도일보는 전쟁 후 처음 경험하는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을 1·3면에 걸쳐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공설운동장 사진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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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체육관 1975년 준공당시 모습(사진 왼쪽)과 충무체육관건립비.  (사진=대전시 제공)

주경기장 둘레를 흙으로 쌓아 올린 관중석에 8만여 시민들이 입장했고, 1000명의 한밭여중 학생들이 둥글레 율동, 스페인 옷차림의 대전여고 학생 900명이 마스게임, 1500명의 대전공업고 학생들의 체조, 1200명 대전여중생의 고전무용이 전개됐다고 전했다. 1960년은 대전고와 대전상고 학생들로부터 촉발한 3.8민주의거가 대전을 휩쓸고 마산 3·15의거로 이어져 4·19혁명을 이룩한 때로 대전공설운동장의 전국체전 역시 혁명 직후 새 시대 개막에 대한 기대감이 녹아 있었다. 당시 기사에서는 "제2공화국의 광명과 결의에 찬 순간을 더욱 빛나게 했다"라고 표현했다. '대전체육사'는 이때 전국체전에 전국에서 7626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24개 종목에 7일간 경기를 펼쳤다고 기록했고, 중도일보는 선수들의 숙소 부족 문제, 도난사건, 경기장이 없어 급히 학교 운동장을 대체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다.

▲20원·100원씩 모은 '충무체육관'

공설종합운동장에 대한 충남도민과 대전시민의 아낌 없는 성원은 1970년 준공한 충무체육관 건립공사 때까지 이어졌다. '대전체육사'는 "9인제 배구가 6인제의 국제식 배구로 바뀌면서 선수들이 지면에 전신을 던지면서 수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체육관 필요성이 대두됐다"라며 충무체육관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이때 이웅렬 위원장, 최재영 부위원장, 김보성 부위원장 등 29명의 추진위가 구성돼 건립사업과 모금운동을 동시에 벌였다. 1971년 대전시정백서에 따르면 충무체육관 건립에 도비 5000만 원과 시비 5200만 원, 주민부담 1273만 원이 보태졌는데 대전 시내회원은 100원, 타 시군 회원은 50원, 기업·정치인 찬조회원 1000원, 초등생 10원, 중고생 20원씩 1969년 5월부터 5개월간 모금을 했다고 기록했다. 충무체육관 입구에 1971년 세워진 건립문은 이렇게 말한다. "겨레의 영원한 젊음을 가꾸려는 나라의 뜻과 도민의 정성으로 이 전당을 세우노니 젊은 세대여! 충무공의 거룩한 뜻을 본받아 저마다 슬기로운 겨레의 횃불이 돼라."
임병안 기자 victorylba@

 

2021년04월29일자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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