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삶의 양식이 되는 민주주의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삶의 양식이 되는 민주주의

최영민 전 대전여성단체연합대표

  • 승인 2022-11-27 09:02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최영민 대전여성단체연합
최영민 전 대전여성단체연합대표
최근 교육부가 행정예고한 2022 개정교육과정에 제주 4·3이 모든 교과 집필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학습 요소'가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교과서 검정 기준에 주요 역사적 사건을 포함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고교 한국사 성취기준에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고 서술돼 있어 4·3에 대한 교육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제주 4·3은 1947년 삼일절 기념대회를 위해 모인 사람 중 한 어린이가 경찰이 타고 있던 말발굽에 차이고, 이에 항의하는 민간인들에게 경찰이 발포해 사망자가 발행하면서 이후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확대된 슬픈 역사다.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남북분단으로 얻어진 반쪽짜리 해방에 대한 불만과 통일정부를 바라는 민족의 염원, 이념과 사상의 탈을 쓴 광기와 분노가 응축되어 나타난 폭력의 도가니와 같았던 제주 4·3의 피해와 가해의 역사는 오랫동안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였다. 뒤늦게 김대중 정부에서 4·3의 참상이 드러났고, 2001년 발표된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 중10,955명(78.1%)이 토벌대에 의해, 1,764명(12.6%)은 무장대에 의해 살해됐다. 수많은 '순이 삼촌'으로 남은 유족들의 고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가 제주 4·3을 지우고 고교 교과서 성취기준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 탐색'을 굳이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 탐색'이라고 바꿔 기술한 것을 보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합해놓은 의미 이상의 함의가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배제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이 기시감은 뭘까.

원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냉전시기 서구 입헌민주주의를 공산국가의 인민민주주의에 대비시켜 부르는 말이었고 사회민주주의와 다른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시장논리에 따른 자본주의에 방점이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자유민주주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2009년 개정 교육과정 중·고교 교과서 집필기준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했던 이명박 정부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실상 교과서를 사용할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4·3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분단과 이념, 국가권력과 폭력에 대해서 논쟁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바라지 않을까. 4·3을 생각하면 식민 지배와 해방, 미군정, 분단, 이념, 통일, 경찰, 민중, 저항, 서북청년단, 토벌, 학살, 순이삼촌 등이 연관검색어처럼 줄줄이 떠오른다.

4·3은 단순하지 않다. 해방공간에서 발생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어두운 폭력의 역사지만 그럴수록 더 들여다보고 성찰해야 한다. 독일이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정치교육이란 이름으로 나치 범죄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성이 공유되고 지속되는 것처럼 우리도 권력을 가진 정부, 권력을 위임한 국민 모두 4·3의 비극을 기억하며 4·3의 역사에서 배우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맹목적인 따름이나 강요, 혐오와 폭력에 반대할 수 있는 능력과 실천에 초점을 맞춘 민주시민교육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기본법> 제2조에 명시된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함양하는 첫걸음은 역사적인 사건을 외우거나 단순히 정부 형태와 정권의 눈높이 따라 달라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와 태도를 일상생활에서, 자기 삶에서 내면화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5년 독일 연방과 주협의회가 주최한 '민주주의 배우기와 살아가기'라는 프로그램에 채택된 민주주의 교육을 위한 <마그데부르크 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체 열 개로 정리된 선언 중에 "민주주의를 지키고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헌법이나 선언이나 정부의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형식이자 삶의 양식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두 번째 항은 현 정부가 꼭 새겨들었으면 한다. 역사를 배울 게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게 하자. 우리 미래에게! /최영민 전 대전여성단체연합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