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로 향하는 대전시립무용단, 0時의 북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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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로 향하는 대전시립무용단, 0時의 북을 울리다

김예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0-06 16:40
  • 수정 2024-02-06 10:41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김예림
김예림 평론가
대전시립무용단의 제74회 정기공연이자 미국 투어 프리뷰 무대인 '0시의 제단- 그 시원으로부터의 시작'이 9월 15일부터 1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2023 외교부 해외 파견 문화예술공연단으로 선정된 대전시립무용단이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미국 시애틀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초청공연을 대전시민에게 미리 선보인 무대다.

'0시의 제단- 그 시원으로부터의 시작'은 제목부터 거대 담론을 내포하고 있다. 한글 시대, 한류 문화 시대, 경제 강국의 시대, 국방 강국 시대로 국운(國運)을 반석에 올려놓은 현재, 대전은 그 출발점을 '대전 0시'로 브랜드화해 대전시민 축제의 주로 삼고 있으니 이에 '0시의 제단'에 우리의 결기와 축의와 희망의 춤사위를 바친다는 의미다. 미국 관객에게 한국의 춤 예술을 선보이며 그 안에 대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기획의도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시조 시인이자 문인화가인 박헌오의 대본과 내레이션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1부 '춘몽(春夢)'과 2부 '천몽(天夢)'으로 나뉘어 전통과 창작 두 편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부는 춘몽(春夢)을 주제로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고향을 그린 창작 작품 '고향의 봄, 낙원의 산촌'을 시작으로 장구춤, 대전 선비춤, 부채춤, 소고춤으로 이어지는 新전통춤의 모둠공연이다.



'고향의 봄, 낙원의 산촌'은 꽃장식이 드리워진 무대에 색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해 따듯하고 화사한 고향의 봄 풍경을 그려냈다. 아리따운 청춘 남녀와 꽃바구니를 든 여성들, 서커스 저먼 휠(German Wheel두 겹의 철제 원형구조물)을 타고 노는 청년들을 다채로운 색감만큼 여러 캐릭터의 조화를 보여줬다. 홀춤으로 추어진 '향, 장구춤'은 군무를 넘어서는 존재감으로 무대를 압도했고, 대전 선비춤인 '장한가'는 국수호류 한량무의 묵직한 멋을 남성 군무로 표현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부채춤'은 점차 단순화되는 최근 부채춤의 아쉬움을 단번에 날리듯 다이내믹한 대형변화와 속도감으로 관객을 압도했고, 1부의 대미를 장식한 '향, 풍류 소고춤'은 타악에 능한 무용가인 김평호 예술감독의 멋스럽고 감칠맛 나는 장단놀이를 한껏 드러냈다. 新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1부의 전통춤들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단조로워지는 최근의 경향을 극복하고 70∼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한국춤의 신명이 무엇인지 그 정수를 보여줬다.

2부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무용극 '단재의 꿈- 천몽(天夢)'(이하 천몽(天夢))이 공연됐다. '천몽(天夢)'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의 중편소설 '꿈하늘(天夢)'을 소재로 그의 사상과 인간적 고뇌, 일대기를 반추상(半抽象)의 춤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반추상이라 말한 것은 서사에 충실한 극무용이 아니라 주요 사건을 이미지화 한 추상적 관점으로 창작된 극무용이기 때문이다.

'천몽(天夢)'은 김평호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자의 취임 후 첫 작품으로 2021년 제70회 정기공연에서 초연됐으며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무대에서 공연된 것을 이번에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 맞게 재단장한 것이다. 초연 때부터 간결한 무대장치로 디자인된 작품이기에 대작임에도 투어에 적합한 몸집을 하고 있으며, 서사의 전달은 입체영상이 돕고 있다. 이로 인해 '천몽'의 무대는 시대 배경과 달리 현대적 인상이다.

판타지 성격을 띤 소설 '꿈하늘'의 내용은 주인공 '한놈'이 한국사의 영웅들을 만나며 역사의식이 고취되는 이야기다. 예술감독 김평호는 신채호의 인간적 고뇌와 소설 속 인물 '천관'을 결합해 단재의 자주독립 의지를 조명하고자 했는데, 이는 현실과 환상, 역사와 소설의 중첩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하게 했다.

신채호와 천관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프롤로그에 이어 제1장 괴로울 고(苦), 2장 옳을 의(義), 3장 싸울 전(戰), 4장 푸를 청(靑), 5장은 가둘 옥(獄), 6장은 꿈 몽(夢)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 '천몽'은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과 신채호의 고뇌, 흰옷과 검은 옷의 대립, 신성한 칼의 춤, 아내와의 애절한 사랑, 옥중 단재의 슬픔과 죽음을 장면별로 표현했다.

신채호의 등에 업힌 천관의 모습으로 단재의 심적 무게를 표현한 장면이 인상적이고, 전통검무로 안무된 동족 간의 싸움과 무궁화를 의인화한 여성 군무가 춤의 볼거리로 다가온다. 그림자로 표현된 일본군의 모습이나 겹겹이 드리워진 액자가 감옥을 상징하는 무대미술은 서사를 돕는 현대적 해석이었다. 다만 한국의 근현대사나 신채호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해외관객을 위해 텍스트 제공은 필수적일 것 같다. 작품 '천몽'은 역사 속 인물을 다루면서 생애의 나열이 아닌 인간 내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 창의적 시도가 돋보였다.

대전시립무용단의 '0시의 제단- 그 시원으로부터의 시작'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 초청된 공연이지만 단순한 해외공연을 넘어 공공무용단의 바람직한 성장과 예술적 확산, 교류의 좋은 예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K-컬처의 놀라운 성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문화외교의 힘은 크다. 그 가운데 지역 예술단체가 국가를 대표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은 한국 문화예술의 깊고 다양한 측면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지향돼야 할 일이다. 두 편의 대작을 들고 성공적인 미국 공연을 마친 대전시립무용단에 큰 박수를 보낸다./ 김예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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