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맨발 걷기 혹은 대지와의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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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맨발 걷기 혹은 대지와의 접촉

이은봉(시인·광주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2-20 08:44
  • 수정 2024-02-06 10:42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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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시인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은 세계와 직접 연결된 채 살아왔다. 나와 세계가 하나인 채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말을 '세계와 나'가 하나라고 말한들 어떠하랴.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주체와 객체가 하나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물심일여(物心一如)라고 하고, 어떤 이는 주객일체(主客一體)라고 한다. 물심일여이든 주객일체이든 물론 이는 세상이 다 하나라는 것을 내포한다.

더러는 이로부터 비롯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체유심조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유심(唯心)이 일체(一切)보다 선행한다고 하더라도 이 말은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어떻게 말하더라도 이들 논의는 '나와 너', '나와 그'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때의 다르지 않다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순환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함유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간이 나날의 삶을 물심일여로, 주객일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의 질문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물(物)과 심(心)이 분리된 채, 주(主)와 객(客)이 어긋난 채 서로 끊임없이 길항(拮抗)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물(物)이나 객(客)의 구체적인 모습은 일단 대지며 자연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금의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대지며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형편없이 분리되고 파괴된 채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도시 서울이나 대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라. 그들의 삶이 지구라는, 대지라는, 자연이라는 생명공동체와 과격하게 격리된 것은 분명하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도시 위에 두꺼운 아스팔트를 깔고, 보도블록을 깔고, 시멘트 콘크리트를 깐 채 지구라는, 대지라는, 자연이라는 생명공동체로부터 근본적으로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삶이, 이들의 몸이 제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철저하게 대지며 자연과 차단된 채 살아가는 이들의 몸이 땅의 정기를, 흙의 활기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아스팔트 위를, 보도블록 위를, 시멘트 콘크리트 위를 거쳐 고층 건물 속에서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살아가는 이들의 몸이 쉽게 찌그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구라는, 대지라는, 자연이라는 생명공동체와 바로 호흡하지 않고 온몸의 혈기가 제대로 순환하기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사람들 사이의 땅이며 흙과 직접 접촉하려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맨발 걷기 운동이 활성화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맨발 걷기 운동은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기보다는 흙이며 땅과의 접촉을 늘리는 운동이다. 지구라는, 대지라는, 자연이라는 생명공동체와 직접 만나 그것의 운기(運氣)에 다소라도 동참하는 일이 맨발 걷기 운동이다.

대전에서는 맨발 걷기 운동이 아주 일찍부터 활성화된 줄로 알고 있다. 이 지방의 주조회사의 회장이 앞장서 계족산 임도에 14.5km에 황톳길을 조성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계족산 임도의 황톳길은 언젠가 나도 아우들과 함께 걸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계족산 임도의 황톳길과 멀리 떨어져 살아 그곳에서 대지이며 자연의 운기를 받아들이고 있지는 못한다.

대전에서 멀잖은 세종에서 사는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조그만 숲 오솔길에서 자주 대지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운동, 흙이며 땅과 하나가 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흙이며 땅과 하나가 되는 운동을 하게 되면 우선 발이 따듯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혈액의 순환이 잘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두세 번의 맨발 걷기만으로도 잠이 잘 오고, 피부가 보들보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어 좋다. 부족하고 모자란 대로 지금으로서는 맨발 걷기도 물심일여를 사는 일, 주객일체를 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은봉(시인·광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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