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팔불출과 신불출(申不出)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팔불출과 신불출(申不出)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5-2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유년기 어른들 대화에서 팔불출이라 운운하는 것을 종종 들었다. 팔푼이, 푼수라고도 한다. 생각이 모자라 몹시 어리석다는 놀림조 또는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대놓고 그렇게 불리는 사람도 있었는데, 정말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스개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이 남달라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행위나 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팔불출은 팔불용(八不用) 또는 팔불취(八不取)라고도 한다. 본래 열 달 못 채우고 여덟 달만에 나와 뭔가 모자란다는 의미다. 한자로 보면, 여기서 팔은 여덟 가지라기보다 강조의 의미로, 반드시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언어 역시 진화한다. 의미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확장되다보니, 내세워서는 안 될 여덟 가지가 들춰지기도 한다. 교양 없이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 자랑하지 말 것이다. ① 자기 자랑 ② 아내(배우자) 자랑 ③ 자식 자랑 ④ 학벌 자랑 ⑤ 가문 자랑 ⑥ 재산 자랑 ⑦ 형제 자랑 ⑧ 친구 자랑이다. 듣는 사람이 불편해 할 수 있어 삼가야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물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팔불출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자랑하려해도 자랑할 것이 없지만, 어쩌다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자랑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뜬금없이 팔불출이 나타나 인구에 회자되자, 언어의 마술사라 할 만담가 신불출(申不出, 1907 ~ 1969?, 극작가, 배우, 만담가)이 떠오른다.

수사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유난히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 웅변과 연설 같은 논리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탄사 하나로 울고 웃기도 하고, 감동하지 않는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아, 서양에서는 조크, 유모어, 코미디, 개그, 우리는 재담 또는 우스개, 익살이라 한다. 그 중에는 언어도 있고 연기도 있다. 언어는 말이나 문자를 소재로 하는 '언어유희'이다. 말장난이라고도 한다. 말이나 글자를 재치 있게 사용하여 다양한 의미를 구현한다. 예술기법의 하나로 장르불문 모든 분야에 등장한다. 부질없는 장난이 아니다. 다의적 표현, 강조, 심화, 풍자가 이루어지고, 웃음과 눈물이 유발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일제강점기에 만담(漫談)이 등장한다. 나라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시 연극은 인정극(人情劇) 또는 비극(悲劇)이 주류였다. 희극 공연은 분위기에 맞지 않았지만,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막간의 코믹한 촌극(寸劇)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만담가 신불출이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름은 익숙할 만큼 들었다. 불세출의 예인으로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이리라. 본명은 신영일, 신홍식, 신상학 등 분명치가 않다. 예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연기 생활이 고되었던 모양이다. 단역배우로 출연할 때는 예명을 '난다(難多)'라고 하였다. 어려움이 많다는 의미지만, 성과 합하면 '신난다'가 되어 주위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불출(不出)'이라 지은 것은 치욕의 일제 강점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사고 후 연극에 다시 안 나온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설도 있다.

처음부터 만담을 하였던 것은 아니다. 공연 막간에 인사말을 하곤 하였는데, 화술이 뛰어나 박수갈채를 많이 받았다.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 <동방이 밝아온다> 막간에 "새벽을 맞아 우리 모두 잠에서 깨어납시다. 여러분, 삼천리강산에 우리들이 연극할 무대는 전부 일본 사람 것이고, 조선인 극장은 한두 곳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 동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였다. 보고 있던 일본 경관이 호각을 불며 중지시키고 연행하였다. 단성사 사장 박승필이 보증서고, 연극계 은퇴를 서약함으로서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때부터 만담가로 나섰다 한다.

창씨 개명을 강요하자 '에하라노하라(江原野原)'라 하기도 하였다. 민요의 후렴구이기도 하려니와 '될 대로 되라'는 뜻의 항의표시였다. 경찰이 난색을 표하자 '구로다규이치(玄田牛一)'로 하였는데 검을 현 밑에 밭 전자가 있으면 축(畜)이요, 소우 자 밑에 한 일자를 그으면 생(生)이 된다. 일본어로 '칙쇼(畜生)'가 되는데, 우리말 '×새끼'에 해당하는 욕설이다.

그의 이름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사회비판, 정치풍자와 풍성한 해학의 만담가임이 드러난다. 우리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신민요 <노들강변> 작사가이기도 하다. 뛰어난 예인이었음도 분명하다. 무정부주의였던 그가 1947년 월북, 인민배우로 공훈배우가 되지만, 비판적 시각이 변치 않아 1960년대 후반 숙청되었다는 것이 탈북자의 증언이다.

성현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술가 포함, 특별한 사람은 창의적 언어를 구사한다. 새롭게 만들거나 선택하여 사용한다. 만인의 귀감이 된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0시 축제 기간, 시내버스 29개 노선 우회 운행한다
  2. [날씨] 주말까지 찜통더위…강한 소나기 내리는 곳도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의 문화예술,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
  4. 세종-청주 광역버스 8월 3일부터 운행 시작
  5. 굿네이버스 충남지부, 2024년 좋은이웃 후원회 위촉식 진행
  1. '벼랑 끝 승부'…대전하나시티즌, 27일 대구FC와 격돌
  2. 농진청, 대규모 논콩 생산단지 재배 안정화 도모
  3. 순천향대천안병원,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 1등급 획득
  4. 대전 신탄진변전소 화재… 1만 3242세대 정전 불편
  5. 연암대, (사)스마트치유산업포럼과 MOU

헤드라인 뉴스


대전 0시 축제 기간, 시내버스 29개 노선 우회 운행한다

대전 0시 축제 기간, 시내버스 29개 노선 우회 운행한다

대전시는 8월 7일부터 '대전 0시 축제' 행사 관계로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 구간 중앙로와 대종로 일부 구간의 차량 통행이 전면 통제됨에 따라 이 구간을 통과하는 시내버스 노선을 우회 운행 조치한다고 26일 밝혔다. 우회하는 버스는 급행1·2·4번, 101번, 103번 등 통제 구간을 경유하는 29개 노선 365대다. 이들 버스는 오는 8월 7일 첫차부터 17일 막차까지 대흥로·우암로 등으로 우회하게 된다. 시는 버스 우회로 인한 이용객 불편을 줄이기 위해 노선별 임시 승강장을 별도로 마련하고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를 통해 버..

윤석열 대통령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저출생 극복의 길”
윤석열 대통령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저출생 극복의 길”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저출생 극복의 길”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방에 과감한 권한 이양과 재정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며, 특히 외국인의 정착과 경제활동을 위한 지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충남 내포신도시에 있는 충남도청에서 제7차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인구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도전 중 가장 큰 도전”이라며 “저출생 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현상이 맞물리면서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청년들은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도 꿈꾸기..

대전 기성동, 부여·금산, 보령 주산·미산면, 옥천 등 11곳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전 기성동, 부여·금산, 보령 주산·미산면, 옥천 등 11곳 특별재난지역 선포

집중 호우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충남 금산군과 부여군, 충북 옥천군과 전북 익산, 경북 안동 등 11곳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됐다. 대전 서구 기성동과 충남 보령시 주산면·미산면, 전북 군산시 성산면·나포면, 전북 무주군 무주읍·설천면·부남면, 경북 김천시 봉산면, 경북 영양군 청기면 등 10개 읍면동도 포함됐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25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부처의 전수 정밀조사 결과를 반영해 11곳을 추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고 전했다. 앞서 7월 15일 충남 논산시와 서천군, 충북 영동군, 전북 완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모처럼 맑은 하늘 모처럼 맑은 하늘

  • ‘여름 휴가는 대전으로’…대전 0시 축제 자원봉사 발대식 ‘여름 휴가는 대전으로’…대전 0시 축제 자원봉사 발대식

  • ‘새소리와 함께 책 속으로’…숲속의 문고 개장 ‘새소리와 함께 책 속으로’…숲속의 문고 개장

  • ‘여름이 즐겁다’…도심 속 물놀이장 속속 오픈 ‘여름이 즐겁다’…도심 속 물놀이장 속속 오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