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78. 위악(僞惡)은 카타르시스인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염홍철 칼럼] 78. 위악(僞惡)은 카타르시스인가?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4-07-18 12: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얼마 전에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K팝 가부장제와 싸우는 스타 프로듀서, 한국 여성의 흥미를 사로잡다"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기사 제목만 보아도 누구인지 짐작하겠지만, K팝 업계의 거물을 향해 그 회사의 자(子)회사 대표로 있는 어느 여성이 130분간의 기자회견을 통해 "씨X", "X밥" 등 격한 욕설을 섞어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입니다. 모(母)회사 대표에게 '개저씨'라고 일갈했으며, 여론전 대신 "맞다이로 들어와"라는 주장도 하였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개저씨는 개+아저씨를 합친 신조어인데, 이는 특정 조건을 갖춘 4·50대 또는 그 이상의 남성을 가리킵니다. 당연히 부정적인 표현이지요. '맞다이'도 '1대1로 싸워보자'라는 한일(韓日) 합성어입니다. 과거 같으면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젊은 여성에게 '미친 거 아니야?'라고 했을 터인데, 지금은 비판이 아니라 칭찬 일변도였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자신에게 쏠린 부정적인 여론을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 점을 들어 '파이낸셜 타임스'는 위 기사를 썼을 것입니다.

사실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 지수가 OECD 국가 중 12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이 위악인지 솔직함인지 경계는 확실치 않으나, 대부분 솔직하고 화끈한 표현이라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적 평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석상에서 욕설과 상대방에 대한 비하 발언은 위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미국에서도 테슬라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세기의 혁신가'로 칭찬받지만, 여러 기행과 과격한 언행으로 혐오의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2022년에 푸틴에게 개인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면서 "푸틴이 나와의 싸움을 두려워한다면 왼손만 쓰는 핸디캡을 걸고 싸울 의향도 있다"고 조롱하였지요. 그다음에는 메타 CEO인 저커버그에게도 격투기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노이즈마케팅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분이 사용하는 언어도 상당히 거칠어 위악의 범위에 속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실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악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치인의 위악은 타인의 승인 대신 오히려 배제하는 데 능숙합니다. 이들은 '받아들이는 편'과 '받아들이지 않는 편'을 구분하여 '팬덤'을 만드는 것이지요. 정치인 중에는 공공연히 자신은 51퍼센트를 보고 정치를 한다고 공언하면서 49퍼센트에게는 적대적 언사를 서슴없이 날립니다. 이것도 전형적인 위악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대표적으로 트럼프를 꼽을 수 있겠는데, 솔직함을 핑계 삼아 다른 이들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것은 51퍼센트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정치인은 100퍼센트를 대상으로 합리적 메시지를 보내야 하며 그래야 51퍼센트나 그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요.



사실 지금까지는 '위악은 약자의 위장'이라고 주장되는데, 지금은 강자들이 위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사회 규범을 어기는 언어가 지금 시대의 인기 있는 화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를 "위악이 가득한 시대"라고 명명할 정도입니다. 이것을 카타르시스 현상이라고만 이해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큽니다. 과거에는 위선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도덕과 예의가 사라져 위악이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나 성인교육에서 언어의 기본을 다시 가르치고, 언론종사자나 문화 예술인들도 언어의 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경기 프리미엄버스 P9603번 운행개시
  2. [기획] 의정부시, 우리동네 정책로드맵 ‘장암동편’
  3. 유성복합터미널 3개사 공동운영체 출범…터미널·정류소 흡수·통합 본격화
  4. 첫 대전시청사 복원활용 탄력 붙는다
  5. 누리호 4차 발사 D-4… 국민 성공기원 분위기 고조
  1. '세종시=행정수도' 진원지, 국가상징구역...공모작 살펴보니
  2. 충남도 청렴 파트너 '제8기 도민감사관' 출범
  3. 헌법파괴 비윤리적 2025 인구주택총조사 국가데이터처 규탄 기자회견
  4. 홀트대전한부모가족복지상담소, 대전아동기관단체와 협약
  5. 온새미로 봉사단과 함께하는 사랑의 소규모 집수리

헤드라인 뉴스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6대 광역시 중 두번째

대전지역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잇따라 폐업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도소매업의 경우 대출 증가와 폐업률 상승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위한 금융 리스크 관리와 맞춤형 정책 지원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 대전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지역 자영업 현황 및 잠재 리스크 점검'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대전지역 자영업자 수는 15만 3000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이후 감소세를 보인 다른 광역시와 달리 대전의 자영업 규모는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가 차..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대전 유성구파크골프협회가 맹꽁이와 삵이 서식하는 갑천 하천변에서 사전 허가 없이 골프장 조성 공사를 강행하다 경찰에 고발당했다.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나무를 심으려 굴착기를 동원해 임의로 천변을 파내는 중에 경찰이 출동해 공사가 중단됐는데, 협회에서는 이곳이 근린친수구역으로 사전 하천점용허가가 없어도 되고 불법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24일 대전시하천관리사업소와 대전충남녹색연합에 따르면, 유성구 탑립동 용신교 일대의 갑천변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굴착기가 땅을 헤집는 공사가 이뤄졌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 대덕구 상서동으로 넘어..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세종 도시재생 '컨트롤타워' 생긴다… 본보 지적에 후속대책

<속보>=세종시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운영할 '컨트롤타워'가 내년 상반기 내 설립될 예정이다. 국비 지원 중단 등 재정난 속 17개 주민 거점시설에 대한 관리·운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중도일보 보도에 후속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도일보 11월 19일자 4면 보도> 세종시는 24일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주민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보는 10년 차 세종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광역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5곳이 폐쇄한 작금의 현실을 고발하며, 1000억 원에 달하는 혈세 투입..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주렁주렁 ‘감 따기’ 주렁주렁 ‘감 따기’

  •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주택재건축 부지 내 장기 방치 차량 ‘눈살’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