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초보 학생부장의 교단일기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초보 학생부장의 교단일기

윤정은 유성중 교사

  • 승인 2024-07-25 17:03
  • 신문게재 2024-07-26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40725102431
윤정은 유성중 교사
'어서 와, 학생부는 처음이지?'

학생부장 임명장을 받은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처럼 교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니면 밝게 웃으며 맞이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감정이 가득했던 첫 교문지도의 기억이다.

학생안전부, 생활지도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학생부는 모든 교사의 기피 업무 1순위다. 나 역시 15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학생부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떤 새로운 업무든 배우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학생부 일만큼은 '잘 할 수 있을까'보다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큰 걱정이 앞섰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교육계의 안타까운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가 곧 교육 현장의 최전선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동시에 900여 명 학생의 생활 지도를 관리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3월 첫 한 달 동안은 매일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며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익혔다. 학생 수가 많아 모두를 알 수는 없었지만, 점차 눈에 익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생활지도가 더 수월해짐을 경험했다. 일관된 학교 규칙의 적용이라도 무조건적인 강요보다는,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대화를 통해 설득하며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리더십 함양 캠프, 친구사랑 주간 체험 부스, 등굣길 맞이 행사 등을 운영하면서 학생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교사의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눈을 조금씩 키워갔다.

학생 간 갈등 지도 상황에서 배움의 경험도 있었다. 방과후 교문 앞에서 본교 학생과 인근 학교 학생이 심한 말다툼을 벌여 타이르며 지도했지만, 아이들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물리적 폭력으로 번질 것 같아 상대 학교 학생부장님께 연락드렸더니 마침 근처에 계셔서 바로 오셨다. 그 학생부장님은 긴 상황 설명도 듣기 전에 학생의 손부터 덥석 잡으셨다. "OO아, 더운데 선생님이 음료수 한잔 사줄게. 이 친구랑 같이 들어가서 시원한 거 먹자"며 자상한 아버지처럼 학생을 이끄셨다. 계속 씩씩대던 학생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감정을 가라앉혔고, 사안은 무탈하게 잘 마무리되었다. 아이가 순식간에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은 무엇보다 선생님이 잡은 손의 온기와 열린 마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고, 결국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사랑임을 깨달았다.

사회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학교의 상황도 우려할 만한 것이 많다. 혹자는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체함에 따라 학교의 붕괴를 예견하기도 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저출산 시대에 본인의 자식만 귀한 학부모, 그러한 가정에서 타인에 대한 포용력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 비상식적인 논리로 무리한 요구를 늘어놓는 민원인들이 점점 많아짐을 피부로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희망은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매일 스스로를 다독인다. 애초에 나는 왜 교사가 되었고, 무엇을 지향하며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지, 내가 가진 최소한의 신념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공동체 내에서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학생부장으로서의 초심이 떠올랐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며, 그러한 자발적 책임감에 대한 인식은 먼저 아이들의 마음이 열려야 가능할 것이다. 충분히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해 주되, 본인의 행동에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교사의 역할을 해낼 것이다.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또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지도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그들에 대한 경계도 잃지 않으면서 남은 학기를 보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기를 다짐하며, 묵묵히 내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새롭게 다진다. 너와 나, 우리의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공동체 속에서 아이들이 내딛는 한 걸음마다 함께하며 응원할 것이다. 윤정은 유성중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대전 갈마동 타이어업체서 화재
  2. 국방부, 대전 문화동 부지 '전면 매각' 추진…터전 잃을 위기 화훼단지
  3. 국립한밭대 동문 윤통섭 비전세미콘 회장, 발전기금 1억원 기부
  4.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5. 대전교원시니어직능클럽 한글아카데미 합창단 정기공연
  1. “피해자 중심 수사로”…대전경찰청 경청회서 피해자 보호 강조
  2. 을지대병원의 을지재단 출범 70년…박준영 회장 "새로운 100년 열어가자"제안
  3. 충남대, 통합 재추진 발표 돌연 연기... 관련 안건은 의결로 불씨 살려
  4. 대전 용두동2구역, 분양가 이견에 사업 표류… 이자 눈덩이
  5. 충남도, 서천 장항 국립휴양공원 지정 본격 추진

헤드라인 뉴스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Merck)가 대전 생산센터 준공을 계기로 추가 투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전 바이오산업의 확장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KAIST와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연구시설 확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대전이 머크의 아시아·태평양 생산거점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열린 머크 대전 생산센터 준공식에서 머크 독일 본사와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대전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건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외국인투자지역 입주에 따..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30일 오전 10시 2분께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타이어 판매점에서 발생한 화재가 4시간 31분 만인 오후 2시 33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짙은 연기와 거센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재발생 직후부터 150건 이상의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으며, 대전소방본부는 대전시와 산림청 헬기 2대와 소방장비 98대, 인력 238명을 투입해 화재 진압과 방수 작업을 벌였다.소방당국은 최초 신고 18분 만인 오전 10시 20분께 관할 소방서의 모든 소방력을 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현장 주변에서는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도 진행됐다.타이어판매점..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한화이글스의 가을을 뜨겁게 달궜던 '대전 예수' 라이언 와이스가 다시 독수리 군단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 재도전에 나섰던 와이스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풀리면서 한화 복귀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와이스에게 걸려 있던 2027시즌 500만 달러 규모의 구단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와이스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와이스에게 올해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시즌이었다. 지난해 한화에서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