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태풍 그리고 학교 안에서의 일탈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태풍 그리고 학교 안에서의 일탈

영화 '태풍클럽'

  • 승인 2024-08-01 16:58
  • 신문게재 2024-08-02 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ㅇㅇ
영화 '태풍클럽' 포스터.
<태풍클럽>은 1985년 작품을 4K UHD로 복원한 영화입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진 시점이 1998년이니 발표 당시 우리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감독인 소마이 신지(1948-2001)는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등 스튜디오 시스템의 거장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흐름을 이끈 감독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영화의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 작품에 대해 극찬하는 등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영화는 40년 전 일본의 시골 중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토요일에도 수업을 하던 시절 대형 태풍이 밀려오고 학교는 학생들을 서둘러 귀가시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예닐곱의 학생들이 귀가하지 못한 채 학교에 갇혀 버립니다. 비바람에 거세어 누구도 와서 이들을 꺼내주지 못합니다. 중3 남녀 학생들은 가지각색입니다. 공부를 잘해 수도인 도쿄로 고등학교를 가려는 미카미를 비롯해 여학생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 미카미를 두고 삼각관계인 리에와 미치코, 미치코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상처를 입히는 켄, 공부도 생활도 그저그런 평범한 남학생 아키라가 그들입니다.

태풍 속 토요일 밤 학교에 남은 그들은 놀라운 일을 벌입니다. 학교의 기물들을 제멋대로 옮겨 놓거나, 교무실, 교장실, 복도 등을 질주하며 추격전을 벌입니다. 체육관에서 마이크를 켜 노래를 부르며 옷을 벗어 던지고, 빗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나체가 됩니다. 원래부터 그런 학생들이어서가 아닙니다. 학교 제도 속에, 교복 속에, 어른들의 훈육 아래 눌리고 감춰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일시에 분출됩니다. 그날 밤 학교는 일종의 해방구가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도 그들 안에 그런 욕망이 잠재돼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영화는 이런 그들의 행동을 롱테이크와 롱숏으로 보여줍니다. 2차대전 후 이탈리아의 피폐한 현실을 보여준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이른바 롱테이크 앤드 딥포커스와는 결이 다릅니다.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도록 오랜 시간 여실히 보여주는 것과 달리 소마이 신지 감독은 프레임 속 인물들이 누구의 시선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따라 마음껏 행동하도록 기다려 줍니다.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는 장면 속에서 우리는 위험하고 위태로운 질풍노도기 청춘의 분출과 발산을 핍진하게 목도합니다. 모든 걸작은 막 어제 만든 것 같다는 말처럼 이 영화는 대단히 뛰어납니다.



김대중 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법원, 유튜브 후원금 횡령 혐의 40대 여성 선고유예
  2. 캄보디아서 구금 중 송환된 한국인 70%, 충남경찰청 수사 받는다
  3. 천안시, 직원 대상 청렴·반부패 추가교육 실시
  4. 대한전문건설협회 대전시회, '중대재해 근절 성실·안전시공 결의식' 개최
  5. 대만 노동부 노동력발전서, 한기대 STEP 벤치마킹
  1. 천안시, '정신건강의 날 기념' 마음건강 회복의 장 마련
  2. 천안시의회 이병하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 운영' 등 2건 상임위 통과
  3. 천안동남소방서, 현장대응활동 토론회 개최
  4. 한화이글스의 가을…만원 관중으로 시작
  5. 천안시 보건소, '영양플러스 유아 간식 교실' 운영

헤드라인 뉴스


일단 입학만 시키자?…충청권 대학 외국인 유학생 중도탈락률 급증

일단 입학만 시키자?…충청권 대학 외국인 유학생 중도탈락률 급증

국내 학령인구감소에 충청권 대학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들어오는 만큼 중간에 나가는 유학생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학위과정 외국인 유학생 중도 탈락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충청권 4개 시도별 외국인 유학생 수는 늘고 있지만, 그만큼 중도탈락률도 급증했다. 대전의 경우, 들어오는 만큼 나가는 유학생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대전권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20년 5810명, 2021명 6419명, 2022년 6988..

국감서 혹독한 평가 우주항공청, 대전에 연구개발 역량 집중해야
국감서 혹독한 평가 우주항공청, 대전에 연구개발 역량 집중해야

개청한지 1년 반이 지난 우주항공청이 국정감사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는 가운데 '우주항공 5대 강국 도약'을 위해선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우주항공청의 운영 체계와 인력 구성 등 조직 안정성과 정책 추진력 모두 미흡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의 구조적 한계로 '예산 부족'을 꼽는다. 올해 우주항공청 예산은 약 9650억원으로,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든 분야를 포괄하기엔 역부족인 규모다. 여기에 입지 문제도 크다. 우주청..

대전창작센터, 원로 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
대전창작센터, 원로 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

대전 미술의 창작 공간이던 대전창작센터가 20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 원로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된다. 19일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창작센터는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로 故배한구(1917~2000) 선생이 설계한 것으로 등록문화재 1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한국 근대건축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대전시립미술관은 한남대 건축학과 한필원 교수와 협력한 프로젝트 전시 <산책-건축과 미술>을 통해 문화시설로서의 재생 기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 2008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관리전환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