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잔칫집의 난봉꾼들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잔칫집의 난봉꾼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10-30 16:57
  • 신문게재 2024-10-31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김
김홍진 교수.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좀 엉뚱하지만 우리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다. 이런 궁금증은 과거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둘러 앉아 "인문학이라는 건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인문학은 없어도 그만인 부수(附隨)다. 지독한 인문학 폄훼와 다원적 가치를 몰지각한 유물론자의 이분법적 사유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면서 R&D예산은 싹둑 삭감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계적으로 노벨문학상이 갖는 권위와 명성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과거에도 몇몇 문인들 이름이 거론되고 기대를 모았지만 좌절하고 말았던 기억이 아프다.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은 이미 수상자를 배출한 부러움 반 질투심 반에 상심이 큰 터에 여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강은 맨부커상과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익히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수상은 난데없는 게 아니다. 그는 역사와 개인의 문제에 깊이 천착해 왔다. 이를테면 그의 소설은 파행적인 한국 근대사의 폭력적 전개 과정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명과 눈물의 역사에 바치는 헌사다.

한강의 수상은 비단 작가 개인의 경이롭고 경탄할 만한 문학적 성취에만 국한할 수 없다. 일제 강점,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산업화, 민주화라는 파란과 곡절의 파행적 근대사에 착목하면서 역사적 성찰을 통해 이룩한 한국 근대문학의 결실이자 쾌거이며, 한국 문화예술에 선사한 은총이자 축복이다.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 '무정'이 발표된 해가 1917년이니 노벨문학상을 내기까지 백여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던 차에 그의 수상은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해 준다.

그럼에도 보수정권에서는 한강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했고, 또 일각의 극우단체나 문화 보수주의자들은 '채식주의자'를 소위 유해도서로 규정해 학교 도서관 비치를 반대한다. 시대착오적인 이들은 주한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림원이 좌경화되었다 떠들며 수상을 취소하라는 추태를 서슴없이 부렸다. 이보다 더 황당한 점은 작가의 출신 지역을 문제 삼는 고질적인 병적 반응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려 작가와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세계이며, 이 두세계를 구분하는 커튼을 찢어발기는 자들이야말로 범죄자들이다.

수용미학적 입장에서 정치 윤리적 이념을 앞세우는 이들은 '채식주의자'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신비평가들이 신랄하게 비판한 일종의 '영향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도 개인적 취향이 있고, 독립적 자기 세계가 있으며, 주체적인 심미적 가치 판단 능력이 있다. 학생들을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며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유는 독선이며 꼰대들의 아집이다. 세상이 불온하니 너희는 내 통제와 보호 아래 두어야 한다. 이는 마치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고 내 맘대로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살인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선택의 권리와 자유가 있다.

무시로 접근 가능한 감각의 직접성을 자랑하는 각종 미디어의 음란물은 어쩌나. 그런 식이면 스마트폰을 거두고 인터넷을 차단해야 한다. 아니면 에덴으로 돌아가야 한다. 몇 해 전 코바나콘텐츠 주관 예술의전당 특별전, '걷는다는 것' '가리키는 사람'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아내가 버젓이 있음에도 밤마다 사창가를 찾는 일을 평생 반복했다. 이땐 커튼을 찢지 않았다. 잔칫집 난봉꾼은 오랜 서사관습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 행정수도법 논의 물꼬 트나… 28일 소위 유력
  2.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3. 기후부, 전력망 주민참여 확대 개정안 입법예고… 대전서 집회 지속
  4. [2026 국감] 국립대 통합 성패 쟁점…충남대·공주대 재추진, 충북대·교통대는 무산
  5. 대전 도안2-13지구 도시개발(가칭) 추진… 유성구, 주민 공람 진행
  1. '6년 공회전' 대전역세권 개발의 민낯… 500억 손실에도 한화 철수
  2. STN 스포츠, 레쥬와 골프 예능 '골당 TV' 11월 첫 방송
  3. 대전역세권 사업 2027년 재공모 들어간다… 환승센터 등 나눠 공공투자 전환 여지도
  4. 정규직-비정규직,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 격차
  5. 구민 등진 국민의힘…대덕구의회 원구성 또 불발

헤드라인 뉴스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대전의료원 어떻게 지을까… 시공사 공고 앞 주민·의료계 의견 듣는다

지역 최대 숙원 사업 중 하나인 대전의료원 건립과 관련 대전시가 구체적인 기능과 설계 방향을 정립하기 위한 논의에 본격 시동을 건다. 시공사 선정 절차를 앞두고 주민 의견청취와 전문가 포럼을 잇달아 열고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대비한 공론화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22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오는 11월 중 대전의료원 시공사 선정을 위한 기술제안방식 공고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술제안방식은 참여 업체가 의료원의 공간 구성과 시공계획 등을 직접 제안하고 이를 평가해 시공사를 선정하는 절차다. 단순히 정해진 설계에 따라 업체를 선정하는..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대전시가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연지도원을 배치하고 금연구역 내 흡연 과태료를 인상했지만 일부 자치구에서는 수년째 적발 실적이 없어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역 내 금연구역은 5만여 곳에 달하는 반면, 현장 점검과 계도를 담당하는 금연지도원은 35명에 그쳐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대전시에 따르면 지역 내 금연구역은 5만 580곳이다. 자치구별로는 서구가 1만 4881곳으로 가장 많고, 유성구 1만 4721곳, 중구 7327곳, 대덕구 6898곳, 동구 6749곳이다. 시청 소관 금연구역은 4곳이다...

청와대·국회·부처 이전 감안한 청주공항 시설 확충 필요
청와대·국회·부처 이전 감안한 청주공항 시설 확충 필요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정부 부처 이전 등 '행정수도 완성' 계획에 따라 행정수도 관문인 청주국제공항의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공항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넘을 정도로 이용객이 늘어난 데다, 정상외교와 국제회의, 공무출장 등까지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 만큼 민간 전용 활주로 신설과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22일 제공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청주공항의 국제선 여객터미널은 연간 15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2025년 실제 국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