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다문화] 스무 살 시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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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다문화] 스무 살 시어머니

  • 승인 2024-12-04 15:44
  • 신문게재 2024-12-05 9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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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작가(추억의 뜰 대표)
크리스티나는 지난 어버이날에 스무 살의 시어머니와 만났다. 시어머님이 책 한 권을 건네주시면서 "이게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책 표지에는 시어머니의 스무 살 앳된 사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통통한 뺨이 너무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호기심에 책장을 넘겼더니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시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저 빛바랜 사진 몇 장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 표지에는 '무명천에 핀 목단꽃' 최숙자 자서전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필자가 제작한 최숙자 어머니 자서전은 가족에게 희생과 양보를 미덕으로 삼았던 세대의 돋보이는 유산이다.

크리스티나가 받은 선물은 바로 시어머니 자서전이었다. 시누이가 작가에게 부탁해서 어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만들었다. 어버이날 하나밖에 없는 선물이 탄생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지만, 한국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크리스티나는 시어머니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으면서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었다.

자서전 속 42페이지 글을 잠시 빌려오면, (책 속 문장 인용)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아버지 고등학교까지만 보내주세요"라고 애원했더니 "여자가 배워서 어디 쓸데가 있어? 안 돼"라고 호통 치시는 바람에 더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도 한 때는 꿈이 있었고 고등학교에 가고 싶던 분이다. 크리스티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던 어머니의 심정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크리스티나의 어머님은 시골 할머니지만 매일 책 한 장 이라도 꼭 읽는 분이다. 시집와서 8년간 대화 나누고 알고 지낸 어머니는 60대의 어머니였는데 책 속에서 여섯 살의 어머니, 스무 살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

었다. 책에서 만난 시어머니는 안쓰럽고 소중한 분이었다.

시어머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스무 살 꽃다운 신부였다. 시아버님이 작년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남아 쓸쓸하신 틈에 시누이가 책을 만들어드렸다. 어머님이 처음에는 시골 할머니가 무슨 책이냐며 손사레를 쳤는데 막상 책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책 속에 담긴 가족의 사진, 그들의 이야기가 어머니의 그리움을 불러왔다. 인생에 상 받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피력하신 시어머니. 유치원 다니는 큰아이가 할머니 이야기를 읽어드렸더니 감격하셔서 눈물을 흘리셨다. 고생했던 기억이 차올라 감정을 추스르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 집에 가시는 어머니 손에 책 두 권이 들려있었다. "가난하게 살던 이야기 창피해서 안 보여줄거야." 하시더니 어느새 마음이 변하셨나 몰래 갖고 나가시는 뒷모습에 콧등이 시큰했다. 아이들의 일기 속에도 삶의 흔적이 묻어 있듯이 어른들의 삶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성까지 담겨있다. 우리가 평범한 개인의 삶에 관심가져야 할 이유다. 시어머니 책은 자녀들에게 귀한 유산이 되고 가족을 이해하는데 더 깊은 통로가 된다. 삶을 기록하고 나누는 과정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크리스티나는 틈틈이 책 속에서 시어머니를 만나면서 더 친밀해지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삶을 기록한다는 건 서로에게 책임감이 부여되는 아름다운 유산이다.



-추억의 뜰 대표 김경희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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