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K-품격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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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K-품격을 생각하다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5-02-03 16:42
  • 신문게재 2025-02-04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새해 벽두 낯선 사진이 올라왔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영결식에 전직 대통령들과 대통령 당선자가 앞뒤로 앉아 환하게 웃으며 환담하는 모습이었다. 앙숙이라는 트럼프와 오바마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스쳤다. 미국의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여유와 통합의 상징과도 같았다.

나라에는 국격이 있고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이를 한마디로 품격品格이라 한다. 여기서 품은 품위, 격은 격조를 뜻하며 수준의 높고 낮음이 있다. 품격이란 국가와 개인의 문화적 소양을 나타내는 수준이므로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시중에서 우스개 소리로 떠도는 '삼질'이라는 게 있다. '자랑질 지적질 라떼질'이다. 이것들은 욕망의 뿌리인 자기 인정의 욕구에서 나오는 중력과도 같아 벗어나기 힘들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인간관계에 거리감이 생기게 한다.

김구 선생은 일찍이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국력과 더불어 밖으로 뻗어나간 K-문화는 지구촌을 달군다. 하지만 정작 내부적으로는 아래위에서 품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선진국에 이르는 사다리를 힘겹게 올랐건만 품격의 기초를 이루는 문화자본과 신뢰자본을 튼튼히 하지 못한 결과다. 빨리빨리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오후에는 운동 삼아 신문이나 책을 보러 커피숍에 자주 간다. 거리를 둘러보면 자극적인 플랜카드가 많고 땅을 보면 보이는 건 담배꽁초다. 걸으면서 피우고, 식당 입구마다 흡연하면서 버려진 결과물이다. 담배꽁초들이 우수관을 막히게 하고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는 사실을 외면하는 듯해 씁쓸하다. 흡연을 금지하는 법규는 없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도 가끔 주위는 안중에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경우와 마주친다.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이처럼 사소한 일이라고 여겨 주위를 배려하지 못하면 품격은 훼손된다. 품격의 수준은 지위나 학력, 소유에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재능을 발휘하여 돈을 벌고 자리에 오르기 위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지 품격을 올리는 일에는 그다지 힘쓰지 않는다. 품격에 대한 가장 좋은 사례는 '논어 위정편'에 나온다. 공자는 말년에 인생을 회고하면서 이(순耳順)과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는 위대한 말을 남겼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없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괜찮더라는 선언이다.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법과 규범 이전에 개인의 도덕적 양심인데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해도 조금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니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품격은 하루아침에 높이지 못한다. 일상에서 행하는 말과 행동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 상대방의 입장 헤아리기와 같이 공감 능력을 길러나가는 데서부터 나아가야 한다. 품격을 올리는 데 가장 필요한 이것들은 우리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황희정승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인 두 사람 간에 다툼이 있어 한 사람이 정승께 이러쿵저러쿵 아뢰니 자네 말이 옳다고 하였다. 잠시 후 또 다른 하인이 와서 억울함을 호소하니 자네 말도 맞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무슨 판결이 그러냐고 어이없다고 말하니 당신 말도 옳다고 한다. 마치 「장자 제물론」에서 시비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양행兩行의 실제 사례인 듯하다. 해학과 여유, 지혜와 관용의 품격이 절로 느껴진다. 이처럼 세상의 시비는 무지의 구름을 벗겨낸 개개인의 밝음에 의해 가려져야 한다.

부디 을사년에는 배려와 함께 해학과 존중이 느껴지는 나지막한 소리가 퍼졌으면 한다. 자신이 내는 소리의 메아리를 듣는 능력을 회복하고 내가 한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자각할 때, 품격있는 문화가 봄을 알리는 매화향처럼 은은히 퍼질 것이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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