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다 이루었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다 이루었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 승인 2025-04-21 10:50
  • 신문게재 2025-04-22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풍경소리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4월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서초동 자택으로 복귀하면서 측근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발언은 며칠 뒤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남긴 마지막 말인 '다 이루었다(τετ?λεσται)'에 비유됐다. 그러나 그 발언의 진정한 의도는 헌정질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계몽령'의 마무리를 뜻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통령실, 합동참모본부, 법무부 등 12개 주요 기관에 계엄사령부의 명령이 동시에 하달됐으며, 보도에 따르면 같은 날 밤 계엄군 120명이 과천 중앙 선관위 청사에, 130명이 수원 선관위 연수원에 각각 배치되는 이례적인 조치도 이어졌다.



12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계엄령의 사유로 "선관위 전산시스템 붕괴", "부정선거 정황", "국회의 기능 상실" 등을 제시했다. 이어 1월 15일 자필 편지에서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는 국정 최고 책임자가 가질만한 부정선거의 증거를 공개한 적이 없으며, 이에 따라 그의 주장은 망상이거나 유튜브에 확산한 음모론을 수집한 루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단순한 음모론에 기대어 중대한 국가 결정을 내렸다고 단정짓는 것 역시 섣부르다. 매체에 따르면 작년 12월 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미국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의장 맷 슐렙(Matt Schlapp)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방문한 사실이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선거 시스템을 중국 화웨이가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주장했다. 최근 모 매체에서는 수원 선관위 연수원 간첩 사건에 대해 윤 대통령이 "그걸 공개하면 한·중 간에 전쟁이 난다"고 밝혔다고 한다.



탄핵 정국 속에서 1월 15일, 과천 정부청사 인근에서 한 5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해 치료 중 사망했고, 3월 7일 7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한 뒤 19일 만에 숨졌다. '서부지법 사태' 등과 관련해 62명이 구속 기소됐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20대, 30대 청년세대였다는 점은 윤 전 대통령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3년 이후 총 5건의 형사 재판에 기소됐으며, 64차례 불출석을 반복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있었고, 해당 판결은 빠르면 올해 중반에 내려질 예정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왜 그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해 이재명 후보를 정치적으로 부활시켰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200여 명이 구속됐고, 최소 5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조기 대선 이후 이재명과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내란수괴'로 지목되고, 탄핵에 반대했던 수많은 국민들이 또다시 '신(新)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숙청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8년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를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17년 특검 수사팀을 이끌었기 때문에 그 참혹한 결과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헌정질서를 회복한 것도,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도 아닌 지금, 윤 전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윤 전 대통령의 긴 침묵으로 12월 3일의 그 사태는 '계엄'보다 점점 '개그'에 가깝게 되었다. 이제 자연인 윤석열이 국민 앞에 답해야 할 때다. 자신이 진실로 옳았다고 믿는다면, (부정선거) 판단의 근거가 된 모든 정보와 정황을 투명하게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다.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그렇게 자기를 완전히 비운 자가 할 수 있는 말이다. /강병호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4.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